▣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그러니까 나도 당신도 시인처럼

영광도서 0 1,509

바람도 숨고르기를 합니다.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날엔 지친 바람도 잠시 쉽니다. 모든 것을 녹여낼 듯 모두가 숨죽인 한낮, 턱턱 숨이 막힐 듯합니다. 그럼에도 앞다투어 핀 연꽃들은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골라 서로 제가 곱다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고운 빛에 반한 걸까,  야실야실한 자태에 반한 걸까, 만지면 녹아내릴 듯 뇌쇄적인 연분홍 꽃잎에 반한 걸까, 깊은 잠에 취한 듯 기척마저 없던 바람이 비실거리며 일어납니다. 연꽃 향에 취한 건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지만 이따금 한낮의 정적을 깨우며 바람이 일어납니다.

 

게으름을 피우던 바람, 바람도 분위기를 타는지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여느 곳에서와는 달리 연꽃 가득 핀 연못에선 바람도 숨죽여 일어나 숨을 죽이며 조용히 불어지납니다. 아니 분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조심조심 붑니다. 연꽃들이 잠에서 깰까 봐인지, 뜨거운 햇살이 꽃잎 사이 사이를 헤집어 빛살을 투과시키듯, 바람도 꽃잎 사이 사이를 세심하게 드나듭니다. 아니 연꽃향에 취한 건지도 모르지요.  바람도 햇살도 사람도 연꽃에 취합니다. 그렇게 반할 만큼 연꽃은 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벙근 꽃망울, 막 피어나려 몸을 연 봉우리, 방금 꽃잎 떨군 황금빛 씨방, 모두 아름답습니다. 하여 간신히 일어난 바람도 이내 다시 잠듭니다.

 

바람도 혼미하게 취하여 분위기 파악을 하는 곳, 연꽃세상, 간간이 보이는 연못엔 온통 ㄱ구리밥이라고도 하고 부평초라고고도 하는 연초록 식물들이 흐린 물을 덮어주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흐린 물을 마시면서도 연꽃들은 저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맑은 물을 마셔서 저리 맑고 고운 꽃을 피운 게 아니라 더러워 보이는 물을 마시고, 흐린 세상에 살면서도 저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상황이나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식물들과 달리 지저분한 세상에서 오히려 더 아름답습니다. 그러면서도 연꽃들은 초연합니다.  

 

사람은요? 사람은 깨끗한 것, 신선한 것, 맑은 것만 골라 먹습니다. 깨끗한 곳을 찾아 다닙니다. 그렇게 온갖 깨끗한 척 요란을 떨지만, 그렇게 깨끗하고 신선한 것만 골라 먹지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 더럽습니다. 신선한 것이든 깨끗한 것이든 사람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모두 더럽습니다. 악취를 풍깁니다. 음식만 그런 게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역겨운 냄새를 풍깁니다. 땀 냄새도 그러하고, 사람 손을 타면 모두 오염됩니다. 가장 깨끗한 척 하는 인간은 맑은 세상 마저 더럽히는 존재입니다.  

 

내 속에 들어갔다 나가는 모든 것은 더럽습니다. 연꽃은 지저분한 연못에서도 은근한 매력을 풍기며, 은은한 향을 퍼뜨리는데, 깨끗한 척 씻고 또 씻으면서도 나는 세상을 오염시킵니다. 아! 그ㅡ렇군요. 그래도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해맑은 향을 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연꽃들의 고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순간 저리 조신한 바람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단 이 아름다운 세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마음은 더럽지만 슬그머니 감추고 내가 누린 아름다움들을, 내가 바람에게서 훔친 은근한 , 매혹적인 향들을, 내가 들은 달달한 소리들을, 이 아름답고 고운 세상의 멋과 맛을 고스란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는 곱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내게서 나올 수 있는 아름다움은 표현이군요. 비록 속마음은 감추고라도 나는 아름답게 쓸 수 있습니다. 곱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그나마 기여할 수 있는 것이란 그런 표현이군요. 그러니까 당신도 표현해 보는 건 어때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