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일을 할 수 있음의 축복

영광도서 0 1,417

평소보다 도시가 빈 느낌입니다. 외출하면서 도로가를 보니, 휴가중이란 문구를 붙여 놓고 문 닫은 식당, 부동산이 더러 눈에 띕니다. 모름지기 여름휴가철입니다. 일정한 곳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무척 반가운 휴가를 누릴 수 있는 때입니다. 그렇지 않고 소위 자유직이랄 수 있는 나에겐 언제가 휴가라고 쉴 수 없습니다.  그냥 쉴 수 있는 날이 휴가요 피서인 셈입니다. 하여 기간을 정하지 못하고 틈틈이 짜투리 시간을 휴가 삼아 보냅니다. 많은 이들이 휴가를 떠난 요즘, 나는 새학기를 맞을 준비 절차도 밟아야 하고, 준비할 것들도 꽤 있습니다. 남들이 휴가를 가는 때에도 할 일이 있음이 지극히 고맙습니다.

 

어제는 새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학교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학생들 시험을 치루면 채점을 하고, 성적을 내고, 성적을 전산으로 입력하고, 시험지와 답안지는 학교에 그대로 봉인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제출 일자가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 봉인하여 보관하고 있다가 제출할 겸, 볼일도 볼 겸 다녀왔습니다. 역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 올라가는 길 무척 더웠습니다. 역과 학교 중간쯤에 있는 소공원에 들어섰습니다.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나올 만큼 더웠습니다. 햇살이 뒤통수를 긁어대는 것처럼 따가왔습니다. 그런 더위, 따가운 더위, 습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꽤 있었습니다.

 

그늘이 시답잖아서 쉬기에 어려운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기 저기 누워서 잠든 이들입니다. 먹다 남은 빵 부스러기를 엎에 두고 번데기처럼 구부정하게 누운 사람, 빈 소주 병을 옆에 두구 어디서 구했는지 길게 찢은 종이박스를 깔고 누운 사람, 검은 비닐봉지를 옆에 두고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잠든 사람, 반에 반쯤 남은 먹걸리 병을 옆에 두고 신문지를 아무렇게나 깔고 누운 사람, 모두 모로 누워 잠들어 있습니다. 제대로 깔개 하나 깐 사람이 없습니다. 전철에서 가끔 팔곤 하는 싸지만 쓸 만한 돗자리라도 저들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들을 보며 내 삶은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일이 있다는 것, 일이 많다는 것, 그게 얼마나 행운인지 생각했습니다. 만일 나에게 일이 없다면 저들과 내가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단지 운이 좋았을 뿐, 나도 저들처럼 노숙자가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돌아보니 일 때문에 더위를 감수하고 걸어가는 일이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공원을 지나 천변으로 덜어서 걷는 길,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평소엔 제법 행인들이 있던 그곳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도 행운아란 생각을 했습니다. 일을 가진 행운아 말입니다.

 

언뜻언뜻 새들어 오는 나무 그늘, 나뭇잎들의 거뭇거뭇한 그림자를 덮고 누운 노숙자들, 그들의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쫒겨난 이후, 인간에게 일은 의무일 겁니다. 그 일을 얻으려 해도 얻지 못하면 어떤 권리도 얻지 못합니다. 일을 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으니 무슨 일이든 해야 하고, 그 일을 기꺼운 마음으로 해야겠지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일을 가진다는 것,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일을 가지려 해도 일이 없으면 얼마나 불행하겠어요. 조금 덥고 힘들어도 일을 하고 있으니, 일 때문에 긴 휴가를 떠나지 못하지만, 일이 있음은 참 대행입니다. 하여 오늘도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새학기 강의준비를 할 참입니다. 당신보다는 아니지만 나 일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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