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갯벌세상의 생물들처럼

영광도서 0 1,407

모세의 기적을 아시지요? 이스라엘인들이 애급을 탈출할 때 일어난 기적입니다. 애급에서 박해를 당하던 이스라엘인들이 모세를 따라 애급에서 나옵니다. 그 뒤를 애급군이 추격합니다. 애급군은 점차 까까이 다가옵니다. 공교롭게도 그들 앞엔 바닷물이 출렁입니다. 진퇴양난입니다. 돌아가자니 지긋지긋한 노동이 눈에 선합니다. 앞으로 가자니 바닷물이 가로막습니다. 급박한 상황, 모세가 지팡이를 듭니다. 지팡이로 바닷물을 내리칩니다. 지팡이가 바다수면에 닿자마자 물이 양쪽으로쫘 갈라집니다. 바닥이 드러나고 양옆으로는 물이 벽을 이룹니다. 그 길로 이스라엘인들이 서둘러 건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그때의 기적을 모세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 기적에 필적할 만하지는 않지만 나도 바닷길을 건너갔다 왔습니다. 매월 한 번 목포에 다녀옵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마리아회고교에서 그리스신화를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우리 삶과 연결하여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를 강의합니다. 다음날 토요일엔 전남지역 교사들과 고전읽기를 합니다. 지정한 명작소설을 읽고 각자 소감을 발표한 다음, 정리겸 강의를 합니다. 벌써 2년 가까워 옵니다. 참여하는 교사들 역시 즐겁게 임하니, 매번 반갑고 좋습니다. 모임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곤 간단한 후 타임을 갖습니다. 특별한 동네를 구경하기도 하고 주변 산책을 하거나 합니다.

 

이번 달엔 무안의 작은 바닷가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당에서 이름 없는 작은 무인도 하나가 보였습니다. 바다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 집 하나 지을 만한 작은 섬의 초록식물들이 바다를 수놓아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그 섬으로 길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양쪽으로 바닷물이 자부자분 물러나고 있겠지요.  처음 보는 장면이었어요. 물론 썰물은 본 적이 있지요. 그러나 이렇게 바닷물과 바닷물 사이로 길이 드러나는 장면은 처음 봤어요. 모세의 기적처럼 장관을 이룰 만큼 파격적이라든가 갑자기 물이 양쪽으로 쩍 갈라지는 것은 아니었고요. 건너편 작은 섬까지 걸어갔다 올 수 있더라니까요. 함께한 교사들과 그 길을 걸어봤어요. 기분이 새로웠지요.

 

길을 걸으며 보니 점차 넓어지는 갯벌엔 다슬기라고 하나요. 바닥에 엄청 많았어요. 그냥 걷다가 너무 많으니까 줍고 싶다는 생각을 교사들이 동시에 한 겁니다. 발길이 닿는 곳에서 각자 주웠어요. 분명 살아 있는 놈들이지만 움직이니 않고 있으니 줍는다는 표현이 맞을 테지요. 수많은 놈들 중에서 잡히는 놈은 재수 없는 놈들이지요. 각자 흩어져서 금세 제법 많은 다슬기들을 체포했습니다. 언제까지 머물 수는 없기에 섬에서 돌아나오면서 보니 뭍쪽에 있는 놈들이 훨씬 굵었습니다. 욕심이 생겨 그 놈들을 좀 더 잡았습니다. 밤나무 아래서 밤알 줍는 것처럼 재미있었습니다.

 

재미로 잡긴 했으나, 이놈들은 저녁이나 내일 밥상에 오를 놈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인간의 재미로 잡혀서 갑자기 죽음을 맞고 세상을 떠날 놈들 생각을 하니, 내가 잔인하다는 생각보다 놈들의 운명이 잔혹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놈들을 잡아 사형을 집행하듯이 신도 우리 인간을 그렇게 데려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어떤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걸음을 움직이다 눈에 띄는 놈 중에서, 또는 돌아가다가 발길에 채여서 보이는 놈들 중에서 잡힌 놈들이 그 대상입니다. 운 좋은 놈들은 내 눈을 피해 살아남듯이, 눈에 띄는 놈들이 내 손에 잡히듯이 아주 평범하게 섞여 있으면 잡히지 않듯이, 신과 인간의 관계도 그런 것은 아닐까 쓰잘데없는 생각 한 번 해봤답니다.

 

하여 튀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야 신의 손을 피해 요리 조리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그렇게 산들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면, 그 삶이 살맛이나 날까 그 생각과 함께요. 바닷길을 걸었습니다. 다슬기를 잡았습니다. 인간의 운명에 관한 생각도 함께 잡았습니다. 기적의 길을 걷가다 인간과 생물, 인간과 신의 관계를 장난 아닌 진지한 관계로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도 그곳 무안의 바다는 밀물로 바다세상을 만들고, 썰물로 갯벌세상을 만들겟지요. 그 세상에선 나처럼 생명을 가진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 움직일 테고요. 일단 오늘은 튀지 않고 소박한 하루를 살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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