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불곡산이 텅 빈 이유

영광도서 0 1,272

추석 연휴 중 양주 불곡산에 다녀왔습니다. 연속되는 공휴일 중 하루였으나 생각보다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평일보다는 많았으나 여느 공휴일보다는 적은 편이었습니다. 불곡산은 서울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찾습니다.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니어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산입니다. 의적 임꺽정의 주 활동무대이었던 산인 만큼 바위산이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는 산행하기 어렵긴 하지만, 그 대신에 제법 아름다운 산입니다. 단지 높이가 낮고 산행거리가 짧아서 산을 잘 타는 사람은 잘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긴 산행을 하고 싶다면 정상에만 후딱 갔다 오지 않고 양주시청에서 출발해서 정상을 넘고 넘어 반대쪽 광백저수지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산행을 하면 족히 15키로는 가능합니다.

 

 

양주역에서 내려 걸었습니다. 양주시청에서 산으로 접어들어 정상으로 향합니다. 제일 먼저 만나는 정상은 상봉입니다. 상봉 500여 미터 전까지는 그냥 숲길입니다. 이 정도 지점에서부터 드디어 불곡산 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물개바위며 어머니 가슴바위 등 진기한 바위를 볼 수 있고,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바위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과 달리 아전시설 설치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습니다. 양주역부터 걸었다 치면 상봉까지 5키로미터 정도 될 겁니다. 상봉에 올라섭니다. 워낙 날씨가 좋아 서울의 뒷산 도봉산과 북한산을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는 에펠탑이 어디서든 보이듯이, 롯데타워 역시 그렇습니다. 가깝게 롯데월드를 볼 수 있습니다. 

  

 

산에 오르느는 맛이 이 맛 아니겠어요. 상봉에서부터 사방을 휘휘 둘러보며 걷는 재미를 만끽하며, 바위를 타고 오르내리는 즐거움을 맛보며, 조금의 오르락내리락을 하다 보면 어느덧 두번째 봉우리 상투봉입니다. 봉우리란 이름을 가졌으니 당연히 주욱 내려갔다가 다시 오릅니다. 산신령이라도 된 듯, 신선이라도 된 듯, 세상을 굽어보는 재미와 세상을 걱정하는 염려를 동시에 하면서 산을 즐깁니다. 혼자의 산행이라 거칠 것도 없고 쉴 일도 없습니다. 그냥 걷습니다. 육산이 아닌 악산을 타는 재미를 느낍니다. 높지는 않지만 악산이 갖출 건 다 갖춘 어여쁜 산이라 느끼며 다시 또 하나의 봉우리에 오릅니다. 이 산의 마지막 봉 임꺽정봉입니다. 꾸준히 걸으니 세 봉우리를 다 넘어도 한 시간 넘짓밖에 안 걸립니다.

 

 

이쯤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광백저수지를 옆에 끼고 낭만스러운 점심을 하기로 합니다. 부흥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양주시청쪼에서는 반대쪽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방향입니다. 한참을 냐려갔다 싶을 즈음 샘내고개로 방향을 살짝 바꿉니다. 길가에 밤알들이 여기저기 구릅니다. 벌레가 좀 먹은 탓인지 그대로 구릅니다. 윤기나는 놈들로 줍다 보니 금방 두어 되박이 모입니다. 그쯤만 주워 챙기고 길을 재촉합니다. 공원묘지를 만납니다. 조금의 오르막, 그리고 다시 내리막 신작로를 따라 걷다가 좌측 소로를 따라 산길로 잡습니다. 점심 먹을 장소 광백저수지입니다.

  

 

작년에 왔을 때는 물이 거의 없어 삭막했던 저수지에 올해는 물이 그득합니다. 마침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에 물결이 사르락사르락 소리를 냅니다. 자글자글 무늬져 운치를 맘껏 보여주는 저수지를 앞에 두고 신선 다운 식사를 시작합니다. 바삭거리는 건빵을 먹으며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립니다. 그 사이에 모처럼 준비한 막걸리 한 잔 쫘악 비웁니다. 텅빈 공간, 마음은 넉넉합니다. 분위기에 취해 점심을 먹습니다. 큼 맘 먹고 막럴리 석 잔, 여전히 정신은 멀쩡합니다. 몸짓도 멀쩡하냐고요. 그건 상상에 맡깁니다. 분명한 건 마음은 물결에 취하여 자글자글 감상적으로 변하고, 낭만을 즐깁니다. 

  

 

이런 저런 자아성찰을 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아무도 없는 숲길, 별 특징 없는 숲길을 따라 양주역까지 걸으려 합니다. 특징이 있다면 자작나무들이 자라는 숲, 수년 후엔 제법 괜찮은 숲이 되겠다 싶습니다. 또 하나, 숲길을 잘 조성해 놓았다만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중간 중간에 나무 의자, 나무 탁자도 설치해 놓았다만 누리는 사람이 없으니, 낭비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 나의 길을 걷습니다. 양주관아터를 지나면서 도로를 건넙니다. 양주역으로 가는 길, 노랗게 익어가는 논에서 벼를 베는 농부를 보니, 농사짓던 날들이 즐겁게 떠오릅니다.  걷고 걸어 족히 16키로미터쯤 걸은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꽤 오랜 시간을 걸은 셈입니다. 돌아오는 길엔 사람을 별로 만나지 못했으나 오르면서는 많은 사람과 스쳤습니다. 그런데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돌아보니 말 한 마디 안한 산행입니다. 쉬고 먹는 시간까지 다섯 시간 동안 어쩌다 콧노래를 부른 걸 제외하면 말 한 마디 안한 겁니다. 그래서 산행이 좋을 수도 있잖아요. 사람을 만난들 길들인 이들이 아니니 말 걸을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비어 있고요. 텅빈 사이지요. 말 걸을 사람 없으니 내가 나에게 속으로 말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마음으로 대답합니다. 내가 나에게 말 걸고 내가 나에게 대답하기,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그 물음에 답하기, 자아성찰에 좋은 곳이 산 아니겠어요. 길들인 사람이 없어서 텅빈 불곡산, 말 걸을 사람이 없는 산이어서 자아성찰을 하면서 제법 많은 깨달음을 얻고, 뿌듯한 마음으로 서울로 가는 전철에 오릅니다. 살폿 뿌듯한 미소가 피어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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