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고운 단풍과 엄마 생각

영광도서 0 1,457

야! 참 곱다. 올해는 유난히 단풍이 예쁘네!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올해는 단풍이 참 곱습니다. 엊그제 설악산 단풍 소식이 들리더니 북한산에도 여기저기 단풍이 소담스럽게 박혀 있습니다. 아직 온 산이 불그레 물들지는 않았으나 산행로에 딱 붙어 곱게 물든 단풍나무들을 제법 볼 수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고운 단풍, 게다가 파란 하늘이 배경으로 나서주니 저리도 곱습니다. 산행하던 이들의 발길을 잡아 노고 쉽게 보내지 않습니다. 연신 폰카가 눈을 번득입니다. 그럴 때마다 기분 좋은 포착음이 아름다운 아침 분위기를 더 돋웁니다. 

 

지난주 토요일 북한산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점점이 박힌 단풍들이  유난히 고왔습니다. 곱기도 하려니와 티하나 없이 깨끗습니다. 마침 간밤에 내린, 양은 많지 않으나 살짝 적셔준 비 덕분에 말끔히 목욕한 산처녀처럼 신선하고 깨끗했습니다. 방금 목욕하고 선보인 듯 너무 밝았습니다. 빗물이 자났지요. 하늘이 저리 곱지요, 선들선들 가을 바람이 스치지요, 주변 나무들은 아직 녹색이지요, 그러니 얼마나 돋보이겠어요. 다른 단풍들 다 물들고, 아니 다른 나무들도 이렇게 저렇게 이런 저런 색으로 울긋불긋 물든 날에는 저리 돋보이지 않을 텐데 부지런을 떨어 돋보이게 곱다 그리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리 물들었으니 빨리 떨어지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니 철없이 제 자태를 드러내는 단풍보다 내 마음이 먼저 서러웠습니다. 하기야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색깔 한 번 자아내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달려온 찬 바람에 하룻밤 사이에 낙엽으로 변하는 불행한 잎새들, 준비 없이 낙엽이 되고 마는 운 더러운 나뭇잎들도 왜 없을까마는, 단풍 색깔의 고운 만큼 내 마음은 더 서글픔의 색깔로 젖어들었습니다. 아름다움의 끝엔 서러움이 열리고, 서러움의 끝엔 새 희망이 피어나는 것 아니겠어요. 이 마음이었을 거예요. 작년에 이런 시를 썼드랬습니다.  

 

 

단풍나무/ 최복현

 

 

꼼꼼하고 세심하게 

 

하나 하나 챙겨주며

 

봄내내 여름내내

 

정성 다해 품어 살다

 

 

보내야 하느니

 

떠나보내야 하느니

 

가장 고운 색깔 골라

 

가장 예쁜 옷 입혀

 

보내려다 보내려다

 

 

 

멈칫멈칫  손 못 놓고

 

떨켜만 파르르 떠는

 

아리고 쓰린 마음

 

엄마의 그 마음

 

 

 

그랬드랬습니다. 아름다운데, 정말 고운데, 그러면 마음이 즐거워야만 하는데 서러움이 왈칵 솟는 뜻은, 단풍을 보니 문득 인생이 설운 것이었습니다. 엄마 생각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90을 넘긴 어머니, 제법 많은 자식들, 그 한 자식 한 자식에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갔을까, 얼마나 많은 근심을 부었을까, 얼마나 많은 애절한 사랑을 쏟았을까, 얼마나 많은 아픔을 슬픔을 대신 마셨을까, 그 생각을 하려니 보이지 않는 울음이 가슴을 탁 치고 나와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고심으로, 그런 굳은살로 최대한 상채기 나지 않게 길러서 세상으로 내 보낼 때 엄마 마음이 저 단풍나무의 마음 아니었을까요?

 

단단하고 듬직한 단풍나무처럼 굳건했던 울 엄마, 지금은 저리 파르르 떠는 단풍잎들처럼 야랏야릿 힘 없으십니다. 아름다움을 보면 마음엔 기쁨이 샘처럼 솟아서 야! 참 곱다, 야! 참 멋지다, 야! 참 아름답다, 감탄사가 나와야 하는데 감탄사 대신 탄식이 삐죽거리며 내 마음의 틈새를 찾아 나오려는 건, 나도 나이 들어간다는 신호겠지요. 미안해요. 이 아름다운 아침에 서글픈 마음 들게 해서요. 하지만 그런 거 아니겠어요. 물이 뜨거운 물도 되고 아주 찬물도 되듯,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면 결국 같은 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말이에요.  

 

그럼에도 저리 고운 단풍의 삶은 참 아름답지요. 색깔 잘 골랐잖아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란 노랫말처럼 삶의 순간순간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설움이든 환희든 의미를 넘나들며 가치를 부여하며, 생각하며 산다는 건 철들어 철에 맞는 색깔로 곱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일 아니겠어요. 그러면 슬픔도 설움도 감사의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겠지요.  

 

"엄마, 쑥스러워 업어드리진 못해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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