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어린왕자와 길들임의 미학
"너희들은 아름다워. 하지만 너희들은 비어 있어.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나의 꽃인 내 장미도 멋모르는 행인은 너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내겐 그 꽃 하나만으로도 너희들 전부보다 더 소중해. 내가 물을 준 것은 그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유리덮개를 씌워준 건 그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준 건 그 꽃이기 때문이야. (나비가 되라고 두세 마리는 남겨놓았지만). 내가 불평을 들어주고, 허풍을 들어주고, 때로는 심지어 침묵까지 들어준 내 꽃이기 때문이야. 나의 장미이기 때문이야."
-최복현 역 <어린왕자> 중에서-
어린왕자, 지난 일요일엔 성동구립도서관에서 어린왕자로 아이들과 만났습니다. <어린왕자>는 제목은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내용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어려운 내용의 책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어린이용 책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을 보든 그림을 보든 얼핏 보기엔 동화 같지만, 내용은 어른들 중에서도 책을 깊이 읽을 줄 아는 어른들이나 이해할 만한 책입니다.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단어들이라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쉬우나 한 문장 한 문장에, 한 단어 한 단어에 깊은 내면의 성찰을 담고 있어서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아동을 위한 책 같은지라 초중고 학생은 물론 성인에게 추천하는 책으로도 빠지는 법이 얿을 만큼, 특히 아동을 위한 권장도서로 추천을 받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을 위해 <어린왕자>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도 가끔 옵니다. 그럴 때면 조금은 당혹스럽습니다. 어린을 위해 <어린왕자> 강의를 해달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응할 수 있는데, 아이들 대상이라면, 그것도 초등학생이 대상이라면 좀 망설입니다. 요청은 고마우나 어떻게 아이들에게 어린왕자를 설명하고 의미 있는 강의를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럽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들이라지만 독서회 멤버라니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겠다는 생각으로 초청에 응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어린왕자에 담긴 의미를 전달할까를 고민했습니다. 하여 어른들을 대상으로 할 때처럼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역할극을 시키기로 했습니다. 강의 이틀 전에 어린왕자와 장미의 만남, 그리고 어린왕자와 여우의 만남, 이 두 가지로 대본을 짰습니다. 대본이야 <어린왕자>에 나오는 문장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연극을 위한 대본으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한 아이는 장미, 다른 아이는 어린왕자, 또 한 아이는 여우, 아이들이 즉석에서 연극이라기보다는 낭독을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산만할 아이들이 귀를 솔깃하고 내용을 음미하는 모습들, 진지한 모습들이 참 귀여웠습니다. 그 다음엔 거기에 담긴 내용들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대답을 찾게 시켰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아이들에겐 길 수도 있는 시간이 지루해하지 않고 순식간에 지나간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어린왕자로 만나면서 가졌던 선입견을 버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산만하고 떠들고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형식적인 강의를 하는 때우기식으로 끝날 것이라는 선입견,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들도 나름 깊이 생각할 수 있고, 어른들 못지 않은 깊은 생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데 무시했던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꽤 오랜만에 아이들과 <어린왕자>를 가지고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새삼스럽게 하나 또 배웁니다. 때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 참 좋다, 효과적이다는 걸, 생산적이다는 걸 배웁니다. 어른들에게 하듯이 많은 이야기를 하려기보다, 아이들이 소화할 만큼의 내용만 골라서 주니까 아이들과 무난한 소통이 되듯, 강의에도 욕심을 비울 필요가 있음을 배웁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여 허공으로 날리는 담배연기처럼 공허한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비록 적은 내용이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에 자분자분 젖어들어 조금이라도 울림으로 배이는 말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스스로 얻습니다. 길들임도 그런 것 아니겠어요.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는 것,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것, 그래서 서로에게 조금씩 젖어드는 것처럼 말이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지 않으면 그 만남은 공허한 만남에 불과하겠지요. 서로의 말들이 서로의 가슴에 이슬비처럼 슬며시 젖어들어야 서로 이해를 하듯이 강의도 그런 소통 아니겠어요. 그러니 길들임에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어린왕자는 나에게 이렇게 조언하겠지요. '많은 말이 주요한 건 아니에요. 마음을 자분자분 적셔주는 한 마디가 더 중요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