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설악산의 으뜸 풍경 천불동계곡

영광도서 0 1,403

남한 제일의 명산 설악산, 설악산 하면 가장 보편적으로 천불동계곡을 듭니다. 공룡능선은 산행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이들만 간다면, 천불동계곡은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십이선녀탕계곡이나 백담사계곡도 아름답지만, 그 계곡들 중 천불동계곡이 으뜸입니다. 천당폭, 양폭, 와련폭이 우아한 물줄기와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뿐만 아니라 너무 맑아 파롬한 이호담과 문주담의 명경지수를 만나는가 하면, 귀면암, 비선대 등의 아주 웅장하면서도 멋진 바위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덤으로 요즘엔 말끔하게 세수한 듯 무척이나 예쁜 단풍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공룡능선을 돌고 희운각 채 못미쳐서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갑니다. 곱게 물든 단풍들을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는 이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옵니다. 그만큼 해맑은 단풍들, 빨간 단풍들이 정오를 넘어 열기를 맘껏 발하는 햇살을 은근히 받아들여 더없이 곱습니다. 만지면 빨간색이 한움큼 묻어날 듯 잘 물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터트리는 환성, 혹여 쌓여 있을지도 모를 세상살이의 스트레스가 있다면 말끔히 한방에 날아갈 듯 싶습니다. 몸의 아픔이 있다면 몸도, 마음이 아리다면 마음도 말끔히 치유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단풍이 더 곱습니다.

 

봄은 남쪽에서 먼저 오고, 산이라면 산아래서 먼저 와서 위로 봄을 입혀간다면, 가을은 북쪽에서 먼저 오기 시작하고, 산 정상에서 점차 아래로 물을 들입니다. 산 정상엔 가을물이 점차 빠져서 쓸쓸해질 무렵, 천불동 계곡은 가을이 한창 축제를 벌입니다. 기기묘묘한 바위 틈새에서 살아남은 나무들, 곱게 물든 뭇잎들이 거대한 바위덩이를 사이 사이 장식하면 그 어떤 동양화보다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천불동 계곡 장면입니다. 눈을 둘 곳이 어딘지 모를 만큼 사방에서 눈을 돌리라 유혹합니다. 

 

단풍이 아름답다 환한 마음으로 내려가노라면, 단풍에 빼앗긴 내 마음을 한꺼번에 사로잡는 게 있습니다. 새하얀 광목천처럼 하아얀 물줄기가 계곡을 수놓습니다. 천당폭을 만납니다. 넋 놓고 바라보다 걸음을 옮깁니다. 다시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만납니다. 양폭입니다. 길을 벗어나 폭포 앞으로 접근합니다. 엊그제 내린 비로 불어난 물줄기는 힘차게 요동치며 내려옵니다. 마치 동화속에나 살던 선녀가 실제로 나와서 하얀 치마를 입고 사뿐사뿐 날아내려오는 듯합니다. 영롱한 햇살을 받아들인 수많은 물방울들은 폭포에 뿌리를 박은 무지개를 그립니다.

 

폭포수를 받아 작은 연못을 이룬 맑은 물, 햇살을 받아 파롬한 옥구술을 수없이 수면에 띄웁니다. 사뿐사뿐 내려오는 해맑은 청초롬한 물속으로 합류하면서 다시 파롬한 보석들을 만들어 아롱집니다. 폭포를 안아 들인 청결한 물은 마치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이라도 할 듯 싶습니다. 충분히 넘쳐 흐르는 아주 맑은 물, 말끔히 목욕한 가을 햇살, 햇살을 살며시 훔쳐서 보석으로 빛나는 파롬한 물, 깊어서 파롬한 게 아니라 너무 맑아 파롬한 물, 나 또한 저 폭포수 아래 탕 속에 몸을 푹 담갔다 나오고 싶습니다. 그러면 내 안에 쌓인 오욕들도 말끔히 사라질 듯 싶어서입니다.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것들, 와선대나 비선대가 있다만 잠시 더 여기 머물고 싶습니다. 파롬한 물에 발을 잠시 담그고 눈을 감습니다. 아름다운 상상이 내 마음에 아주 아름다운 이미지를 살려냅니다. 이내 폭포 소리는 고답스러운 하늘찬가로 바뀌어 들립니다. 감은 눈에 더는 폭포는 보이지 않는 대신 환상적인 동화의 나라가 내 마음에 펼쳐집니다. 세상의 오욕들은 사라집니다. 그 자리를 환상적인 그림이 대신합니다. 이 시간만큼은 내 마음은 아주 깨끗합니다. 지금 바로 내 삶의 종말이라면 나는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아름다운 천상으로 올라갈 것 같습니다.

 

자연, 마음을 즐겁게 하여 치우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자연은 누릴만 합니다. 아름다움 속에 있으면 나 역시 아름다운 듯하고,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마음도 아름다운 물이 들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에 나가 다시 오염되더라도 이 순간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깨끗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 훨씬 씻긴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설악산 풍경을 물감 삼아 마음을 곱게 물들이고 설악산을 나섭니다. 이 여운이 가능한한 오래 유지되기를 바라면서요. 이 기운을 만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묻혀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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