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너무 짧아요?
너무 짧아요. 너무, 강도부사에 해당하는 이 말, 정해진 정도나 지나치게를 의미하는 부사입니다. 전에는 부정적인 의미, 즉 지나쳐서 안 좋은 의미로 썼는데,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를 강조할 때도 씁니다. 아주 좋은 의미의 뜻으로요. 그러니까 너무 짧다는 의미는 짧아서 안 좋다는 의미와 짧아서 아쉽다는 의미, 둘 다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한 마디만으로는 좋다는 것인지 안 좋다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맥락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맥락이든 상황이든, 그걸 알아야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겠지요.
너무 짧아요. 이 말을 남긴 이들이 총총이 멀어져갑니다. 그 뒷모습들이 아름답습니다. 마치 도를 닦으러 왔다가 아쉬운 대로 작은 도 하나를 깨닫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마음으로 세상으로 내려가는 모습이랄까, 무겁지만은 않은 발걸음으로 뒷모습을 보이며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너무 짧다는 말이 주는 아쉬움, 아쉬움보다 고마움을 느낍니다. 떠나는 이들이 남긴 아쉬움이 내겐 고마움으로 다가옵니다.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요. 8주간의 시창작 수업,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길 수도 있을 시창작 시간들, 짧아서 아쉽다면 내 강의를 괜찮게, 좋게 받아들였다는 의미니까 고맙지요.
어제 저녁 동대문도서관에서의 시창작 강의가 끝났습니다. 8주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실제 창작 시간에는 즉석에서 배운 대로 시를 써 본 이들, 빨갛게 울긋불긋한 첨삭지를 받아들고는 얼굴이 발그라하게 변하는 이들, 무엇에 무척이나 호기심이 가득한 순진한 아이들처럼 귀를 쫑긋 기울이며 열심히 강의를 듣던 이들, 사뭇진지한 모습들을 교실 가득 허공에 채워놓은 채 8주간의 수업을 끝낸 이들이 강의실 밖으로 모두 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의실을 나서면서, 그들처럼 아쉬움도 없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했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한 강의였으니까요.
명강의는 못하더라도 좋은 강의는 해야 한다는 일관된 생각으로 매주 새로운 강의를 구상했고, 나름 창의적인 강의를 했으니까요. 새로운 설명이 그분들에게 새롭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더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강의 자체가 글 한 편일 수 있다면, 일관된 주제 하나 세워놓고, 거기에 맞는 내용으로 채워서, 시작과 마무리가 잘 들어맞는 강의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언제까지 강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언젠가는 어떤 강의를 하든 첫마디와 마무리 마지막 마디가 잘 어울리는 쌍일 수 있는 강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실험 아닌 실험을 하며 8주간을 그런 대로 잘 보냈습니다.
너무 짧아요. 8주간에 어떻게 시를 다 배울 수 있겠어요. 아쉬움이 남아도 많이 남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래도 이 말은 이제야 시를 좀 알것 같은데 하는 그분들의 말로 의미를 알겠지요. 적어도 이젠 시의 재미를 안다, 시를 쓰고 싶다는 의미니까, 시창작 수업은 보람을 준 셈이지요. 시란 무엇인지의 정의와, 시를 제대로 쓰려면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적어도 시라는 꼴을 갖추려면 어떤 조건일지 정도는 배우고 떠나는 이들입니디. 그걸 알고 나니 시가 참 재미있다, 시쓰기는 즐겁다는 느낌에 젖어 강의실을 나가려니, 아쉽다는 겁니다. 당장 다음주부터 강의가 없으니 벌써 쓸쓸하다고요.
어떻게 만났든 8주간,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눈을 맞추었다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걸 생각하니 섭섭하다는 이들의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좀 더 길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표하는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더구나 시창작 수업은 아니라도 다른 강의는 어디서 계속하는지 묻는 이들의 눈빛에서 어떤 강의든 내 강의를 듣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더 없이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80에 가까운 할머니까지 아주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떠나는 이들의 표정에서도 아쉬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아쉬운 마음과 그 분들을 향한 내 고마운 마음을 교환하면서 시창작 수업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만날 것을, 설령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말로 위안을 삼으며, 아쉬움을 달래며 8주간 쌓인 정을 가슴에 고이 추억으로 남깁니다. 너무 짧아요, 한 문장을 괜찮은 문장, 보람이 있는 문장의 의미로 남기고 아름다운 이별을 합니다. 만남의 시간들이 모두 이처럼 항상 너무 짧았으면 좋겠다, 그 생각을 하면서 뒤에서 닫히는 강의실 문을 나 역시 떠납니다. 우리의 모두는 너무 짧아야 좋은 것은 아닐까요. 너무 짧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