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살아 있는 가이아

영광도서 0 1,394

자연은 신비롭습니다. 신비롭다, 이 말은 아름답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두렵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모두는 하나의 얼굴만 있지 않고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게 보아 적어도 두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약함 속에 강함을 담고 있거나 약함 속에 강함을, 웃음 속에 슬픔을, 슬픔 속에 웃음을, 고요 속에 진동을, 진동 속에 고요를, 침묵 속에 분노를, 분노 속에 침묵을, 이처럼 크게 보아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면 두 가지 속성뿐인데 그걸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알 수 없음이 곧 신비롭다이니, 이 말은 단순히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라는 걸 알겠지요.

 

자연은 아름답다는 말은, 신비롭다는 말은 그만큼 자연은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두려운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자연에, 생물체가 아님이 분명한 것 같은데 이것을 존재라고 지칭하는 것, 애ㄴ ㅣ미즘입니다. 일찌기 그리스인들은 자연은 모두 살아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지구는 가이아라고 이름 붙이고 모든 자연의 어머니로 보았고, 하늘은 자연의 아버지로 우라노스라 불렀습니다. 이 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별들의 부모가, 태양과 달의 부모가 탄생하는 걸로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하늘의 목소리 천둥을 브론테스, 아버지의 임재 번개를 스테로페스, 아버지의 분노를 벼락으로 보았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이처럼 그들은 자연 자체를 신으로,  유기체로 보았습니다. 이중에서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가이아라고 불렀습니다. 이 가이아는 물론 살아 있는 존재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 존재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구를  "가이아(Gaia), 혹은 게(Ge)"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여신이 된 것입니다. 단순한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았습니다. 지구가 단순히 무생물이라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요 그것도 신이라고 보았던 그리스인들, 그러니까 그들은 땅에 대한 신비를 믿었고, 그것을 신으로 생각했고, 경외심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비단 고대 그리스인들만 지구를 살아 있는 여신으로 본 것만은 아닙니다. 허무맹랑한 것 같은 신화에서만 지구를 유기체로 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명증하게 증명해내는 학문의 대가인 학자도 지구를 유기체로 보았으니, 바로 제임스 러브록입니다. 화학자인 그는 1972년 가이아 이론을 발표합니다. 수많은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미생물들이 서로 서로 지구의 바다와 흙 그리고 공기를 변화시켜 자신들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환경으로 만들며, 이렇게 변화된 지구의 환경은 다시 생물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구는 생물로서 진화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이아에는 많은 생물들과 미생물이 살면서, 살아 남기 위해 대기 성분은 물론 바닷물의 염분 농도, 지표면의 온도를 적당한 조건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가이아, 또한 가이아에서 가이아를 파 먹고 살고 있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 이 생명체들의 행태가 가이아인 지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중에 가이아 여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생명체가 있다면 당연히 자연의 파괴자 인간일 테고요. 일찌기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삼림의 벌목과 온실가스 배출이 가이아인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지게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가이아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할 테고요. 가이아의 환경을 파괴하면서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살아남기 위한 가이아의 몸부림은 지진이나 해일로 나타나겠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정화하면서, 저신의 균형을 회복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는 뜻이겠지요. 그렇게 가이아가 몸부림 칠 때마다 인간은 다시 두려움으로, 경외심으로 가이아를 다시 생각하겠지요. 자연은 살아 있으며 신비롭다 라고요.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신비롭습니다. 그와 동시에 두렵습니다. 자연의 대명사 가이아, 즉 지구는 이처럼 신비로우면서 두려운 존재입니다.

 

어제 포항에서 지진이 나서 온 나라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제임스 러브록의 이론대로라면 우리가 너무 가이아를 괴롭혀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테지요. 평소에도 보다 자연을 경외심으로 바라보며 파괴를 최소화해야겠지요. 자연을 단순히 무생물이나 무기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유기물 또는 유기체로 생각하면서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여긴다면 자연재해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침묵하는 사람, 늘 빙긋이 미소만 짓는 사람이라도 생존의 문제가 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모릅니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한 진정성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분노거나 자연의 분노가 속히 진정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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