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고창고인돌마라톤 페이스메이커

영광도서 0 1,615

"한 쪽 끝이 다른 한 쪽을 낳고, 그 한 쪽이 다시 다른 한 쪽을 낳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테베의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스핑크스는 묻습니다. 다름 아닌 낮과 밤을 이릅니다. 이를 달리 고통과 쾌락에 적용하면, 극한 고통의 끝은 쾌락이요, 쾌락의 끝은 고통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이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만상을 찡그리고 결승점을 들어오는 사람들, 그리곤 이내 그들의 얼굴엔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보다 더 유쾌한 표정으로 바뀝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는 것 같습니다.

 

그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뛴 것은 아닙니다. 고창고인돌마라톤에 참가하는 친구들이 있어 거기 묻어 갔다 왔습니다. 다른 이들이 마라톤을 하는 동안 나는 방장산 산행을 했습니다. 산행은 일찌감치 마치고, 결승점인 고창종합운동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무료로 제공하는 떡국 한 그릇을 먹고, 풀코스 주자들이 출발한 지 세 시간이 되어가니까 혹시나 친구들 모습을 볼까 싶어 운동장으로 오르는 언덕에 마중나갔습니다. 달리는 모습을 한 컷 담을 생각이었습니다.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이 언덕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달리는 사람보다는 걷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풀코스 도전자는 느리더리도 뛰었고, 오히려 하프코스 도전자들은 더 힘들게 애써 걸었습니다.

 

언덕에서 서성거리며 달리는 이들을 지켜보다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 입구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경사가 제법 되는 그 마의 언덕을 올라야 운동장 안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운동장 입구 문에서 달려오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달려오는 이들을 바로 앞에서 마주볼 수 있습니다. 응원 나온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습니다. 그러다 응원하는 선수가 들어오면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곤 결승점으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결승점으로 들어오는 문 앞엔 다양하게 응원하는 사람들이 오갑니다. 도전자에 따라 응원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가족도 있고 동료도 있고 친구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응원하는 이들이 바뀔 때마다 하나의 사연들이 생기는 겁니다. 200회 완주를 하는 사람, 3시간 40분대 주파 축하 프랭카드로 응원 받는 사람, 남성들이 주류인 마라톤에서 여성부 1위로 들어온 사람, 완전히 죽상이 되어 쓰러질 듯 들어오는 사람, 들어오는 사람 모두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저렇게 힘들면서 왜 달려야 하나 하는 생각마적 듭니다. 심지어 여성부 2위를 차지한 사람 역시도 고통인지 쾌락인지 모를 신음 소리를 내면서 달립니다. 그만큼 마라톤은 고통을 맛보야야만 하는 경기입니다.  즐거운 표정보다는 고통스러운 표정, 즐거운 환희의 외침보다는 고통스러운 단발마와 같은 외침을 듣기 쉬운 현장을 지킵니다.

 

출발 시간 세 시간 반이 지나자 결승점 문 앞을 지키는 사람도 서서히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내가 기다리는 친구들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상상합니다. 어떤 표정으로 들어올지, 분명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고통을 뿜어내며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들어오면, 결승점에 들어오면 차가운 날씨에 어떻게 맞아주어야 하나 그 생각을 먼저 합니다, 내 겉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 주어야 하나 아니면 부축해야 하나 그런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3시간 27분쯤 색다른 복장을 한 마라토너가 들어섭니다. 노란 풍선을 등에 달아 공중에서 하늘거리고, 등 뒤에 페이스 메이커 3:30, 그리고 이름이 달려 있습니다. 이 분은 전혀 힘들지 않은 모습입니다. 오히려 여유 있게 옆에서 한 사람을 응원하며 힘내 힘내라며 힘을 돋우어 줍니다. 그 모습을 보니 참 아름답기도 하고 멋져 보입니다.

 

페에스메이커란 사람이 저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등판에 붙은 대로 정확히 세 시간 삼십 분에 한 사람을 이끌어 결승점을 통과합니다. 그와 함께 현장 아나운서의 소개와 축하의 박수를 유도하는 멘트가 이어집니다.  멋지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지키지만 아직 친구 소식이 없습니다. 드디어 세 시간 사십 분이 지났을 무렵 다시 페이스메이커 복장의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이번엔 네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그들 역시 힘이 안 들어 보입니다. 멋지다 다시 한 번 마음으로 되뇌이며 친구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낯익은 단어가 들립니다. 광화문팀이 그 단어입니다. 이어서 익숙한 이름이 들립니다. 배상욱, 김용욱! 급히 결승점으로 달려갑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모습,  기대하지 못한 모습, 아주 당당하고 멋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뭐랄까 존경그럽다고나 할까, 아니 그냥 아주 최고로 멋져 보였습니다. 스마일 그림이 그려진 풍선을 등에 단 모습, 페이스메이커를 등에 단 모습, 경쾌한 복장, 참 멋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 기록을 포기하고 해당 기록을 얻으려는 이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합니다. 그들이 무난히 기록을 세울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페이스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그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이들이 이 역할을 맡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끝까지 자기 페이스보다 오히려 쉽게 달리는 거였습니다.

 

함께 버스를 타고 움직인 이들, 이들 세 친구가 같은 페이스메이커로 출전한 겁니다. 그걸 몰라 제대로 응원을 못했지만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그들에게 많은 걸 배웠습니다. 인생을 배웠습니다. 함게 고통스러운 운동을 해서일 테지요.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진하게 이해하며 우정을 나누는 그야말로 광화문팀 16기의 전우애가 부러웠습니다. 가족보다 더 끈끈하게 매여져셔 후일담을 나누는 이들 옆에서 전해져 오는 쾌감이든 행복감이든 그 에너지를 나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통을 쾌락으로 바꾸는 이들, 오히려 다른 이들의 고통을 쾌감으로 바꿔주는 이들, 이들의 모습이 진한 인간애를 가르쳐주었습니다. 한 편의 유익한 책보다 진정한 감동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멋진 친구들,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나를 조금 깎아내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 페이스메이커는 참 멋집니다. 또한 고통스러운 일임에도 기꺼이 자원봉사의 정신으로 그 일을 자처하는 이들의 정신, 그 마음은 더 아름답습니다. 마라톤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여러 분야에 진정한 이런 페이스메이커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광화문팀! 배상욱, 김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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