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계양산에서 실존을 생각하다
'오늘만, 지금만, 현재만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 수 있는 시간, 이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 이것이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실존철학에 비추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나의 시간이 아니고, 미래 또한 내가 누리리란 보장이 없으니 내 시간이 아니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도 저도 말고 지금이라는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좀 더 쉽게 지금 나는 무엇을 할까, 여기에 집중하거나 여기에 신경 쓰면서 살면 그뿐이 아니겠어요.
한 달 일정표를 짜 놓고 보면 마음이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 대로 제법 소화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 세상이 나에게 일을 준다고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진 축복이냐고요.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아침이면 이렇게 글을 씁니다. 낮이면, 때로는 저녁에도 강의를 합니다. 틈 나는 대로 산에 갑니다. 때로는 축구를 합니다. 이런 일들을 하려면 준비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합니다. 고전읽기 강의도 매 월 서너 번 나갑니다. 그러고 보면 하는 일이 많은 셈입니다. 그럼에도 매면 책 두세 권은 출간합니다. 그러니까 주변에서는 언제 그 일을 다하느냐고 이상하다고 합니다.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프리랜서란 종일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 봐야 일주일에 한번 정도나 종일 강의할 뿐, 니머지는 하루에 네 시간 또는 두 시간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나의 시간입니다. 당연히 이동시간을 따지면 종일일 때도 많습니다. 요는 실제 강의 시간보다 많이 드는 이동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문제일 뿐입니다. 그 이동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 그 이동시간은 죽은 시간이 아니라 내게서 살아 있는 시간이요 유용한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남들 못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고, 남들만큼 공부할 수 있고, 남들만큼 여유 있게 하고픈 일을 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엊그제는 인천 계산여고 교사 연수 강의를 다녀왔습니다. 강의하기 두 시간 전에 근처에 도착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습니다. 계양산 산행이었습니다. 계산역에서 내려 임학공원으로 올라갔습니다. 등산차림을 할 수는 없고, 땀을 덜 흘려야 하고, 구두를 신은 채로 올랐는데 정상까지는 40분 걸려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계단이 많았습니다. 여름에는 수목이 울창하지 않아 좀 안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걸 빼면 나름 매력이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보니 북한산이 도시의 빌딩들의 바다 저편에 있는 작은 섬처럼 선명히 보였습니다. 그만큼 우뚝선 산이라 조망이 멋졌습니다.
인천에서는 아마도 제일 높은 산이라, 해돋이를 보거나 해넘이를 보기엔 딱이겠다 싶었습니다. 인천시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상에는 정자를 짓고 있느라 출입금지라 바로 밑 마당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다시 올라간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정상 바로 밑에서 시작되는 648계단을 내려와야 했는데, 하느재까지 계단 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공원관리소까지도 계단과 계단으로 이루어져 산의 높이에 비해서 계단이 무척 많은 산이었습니다. 그만큼 경사가 급한 대신 전망은 소위 끝내준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산이었습니다.
한번쯤 올라보리라 마음먹었었는데, 주변에서 강의를 하는 덕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산을 내려와 여유 있게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조금만 시간을 계산해서 쓰면 얼마든 하고 싶은 일 많이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죽이는 시간 없이 효율적으로 시간을 즐겁게 쓰면 남보다 바쁠 이유가 없습니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종일을 업무로 보내야 하지만, 돌아다니며 강의하는 나는 강의시간 말고는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으니까요.
그저 현재라는 시간을 잘 보내면 그뿐입니다. 시간 시간을 즐겁고 효율성 있게 하고 싶은 일하며, 주어진 일은 즐기며 살면 그런 대로 잘 사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즐겁게 일하는 시간, 내가 즐겁게 누리는 시간, 그 시간만 나의 시간이요, 그 시간만 나에겐 살아 있는 시간입니다. 고로 나는 행복합니다. 인생이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