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
이동식 |
*제64회 - " 이타미 준, 유동룡, 그의 공간 "
영광도서
0
608
2016.12.01 03:44
포도호텔을 아시나요?
“제주도에 있는 포도호텔을 아세요?”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대답은 당연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평소 자주 가지도 못하는 제주도에 있는 호텔까지 내가 어떻게 알랴? 모른다고 하니까 다소 맥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일동포 건축가인 이타미 준이 설계한 것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하나의 거대한 포도송이처럼 생겼는데, 방 22개짜리의 단층 호텔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잔디밭이 연결돼 있고 전망이 기가 막힌데, 방의 개수가 적은 만큼 호텔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인 수입이 되게끔 방 값은 조금 비싸다는 것이다.
그 애기를 듣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진과 함께 설명이 올라 있다. 과연 단층의 호텔 건물이 푸른 자연속에 놓여 있다. 그런데 호텔이 위치한 곳이 핀크스 골프장이라고, 지난해 한일 여자 프로골프대회가 열린 골프장 안에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했다.
사진으로 보는 외형은 제주 고유의 시골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아담하고 고즈넉하다. 호텔 앞에는 제주 전통의 밭이 조성되어 있어 봄에는 유채와 보리가 자라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라산자락 아래 자리한,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듯하지만 호텔 어느 룸에서건 테라스를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연스럽게 열려 있는 공간. 건축가인 이타미 준은 제주도의 자연 속에 남몰래 존재하는 또 하나의 제주를 만들려고 한 것인가?
이타미 준!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설계한 온양 민속박물관이 1978년 개관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이름이 일본식이다 보니, 왜 일본인에게 민속박물관 설계를 맡겼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이타미 준이란 이름은 예명이고 본명은 유동룡, 재일교포2세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필자에게 이타미 준의 이름은 다른 경로로 다가왔다. ‘우리 민족과 백색의 의미’ 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도중에 이타미 준이 ‘한국인에게 있어서 백색의 의미’를 일본에서 여러번 말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이타미를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심심치 않게 우리나라에 세워지고 있었다. 온양 민속박물관 외에도 방배동 아틀리에 각인의 탑, 부산 국립 해양박물관,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경기도의 게스트 하우스 올드 앤 뉴, 제주도의 핀크스 골프 클럽 하우스와 게스트 하우스 포도호텔, 선천고등학교 그리고 인사동 학고재 미술관도 그의 작품이란다. 일본에서는 시즈오카의 시미즈 주택, 도쿄의 인디아 잉크 하우스, 훗카이도 토마코마이의 석채의 교회와 나무의 교회, 도쿄의 M 빌딩, 도쿄 시부야의 작업실 헤리티지 오브 잉크 등 셀 수가 없다.
인사동 학고재 미술과닝 완공되던 2003년은 이타미에게 가장 좋은 해였음에 틀림없다. 그해 7월말부터 9월말까지 두 달 동안 프랑스 파리의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에서 그의 건축 작품에 대한 회고전을 열어준 것이다. 회고전의 타이틀도 눈에 띈다.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 더구나 기메 미술관 개관 이래 현존하는 인물에게 헌정되는 최초의 전시라고 한다. 이 뜻깊은 기회가 한국인 건축가에게 돌아갔다는 사실, 그가 활동한 일본도 아니고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그의 회고전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이 당시 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 충격을 주었다.
한국의 전통 위에 세운 건축
기메 미술관은 왜 그를 선택한 것인가?
“일본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예술가 이타미 준의 작품을, 작가가 오랜 세월 수집해 온 아름다운 한국 고미술품과 함께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의 전통 명품들과 건축 사이의 대화는 우리에게 이타미 준의 창조성을 보여주며, 나아가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이타미 준은 예술가로서, 동시에 수집가로서 고려나 조선의 미술품에서 받은 인상을 깊이 명상함으로써 전통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시공을 초월한 독창성과 현대성을 지닌 예술 작품을 창조해왔습니다.”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의 장 프랑수아 자리게 관장의 말은 함축적이다. 프랑스 측은 그의 전축 작품 전시회에 그가 수집한 한국의 미술품들을 같이 전시함으로써 그의 건축세계가 어떻게 형성돼왔는가를 보여준다. 전시회이 제목이 말해주듯 오랫동안 일본에 살았으되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이타미 준의 정서는 어떤 것이며,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 안에 어떻게 구현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과 전통 미술, 언뜻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두 분야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비교해 가면 현대적으로 보였던 건축에서 한국의 전통이 발견되고, 동시에 낡은 것으로 보였던 옛 미술품이 이타미를 통해 현대적 가치로 되살아나는 것을 발견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타미 준은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니까 이제 70이 넘었다. 그는 자연 그대로의 재료, 자연스러우면서도 절제된 선을 써서 한국의 전통을 현대 건축에 접목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러면서도 ‘토속주의와 지역주의가 모더니즘의 반대 명제라고 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아시아를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하겠다. 돌과 나무와 대나무 등의 소재를 사용한 것은 지역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건축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그의 글처럼, 동양과 전통에 대한 깊은 사유의 힘으로 편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이나 이국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동양적 가치를 건축으로 드러내 보여 왔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결국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2005년 10월 5일 일본 도쿄에 있는 주일 프랑스 대사관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이타미 준, 아니 한국인 유동룡 씨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말했다.
“이 상은 내가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 뒤에 오는 한국의 젊은 건축가를 위해 내는 길입니다.”
이 훈장은 어떤 훈장인가? 2003년 파리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을 평가한 프랑스 문하성이 한국 건축가에게 처음 주는 훈장이다. 사실 활약은 많이 했지만 그는 일본 건축계에서는 주류가 아닌 아웃사이더였던 모양이다. 모 일가지 기자에게 전하는 그의 속내가 새삼스럽다.
“나를 외부인이나 주변인으로 보던 일본 건축계가 충격을 받고 있어요. 건축 전문지 <신건축> 2006년 1월호가 제 최근 작품으로 특집을 꾸지고 있습니다. 남이 날 뭐라 부르든 나는 한국인이란 애기를 하고 싶어요.”
“이타미 건축의 미학이 있다면 그건 지역성입니다. 집이 들어설 곳의 자연 풍토와 전통, 추억을 아우른 건축이 제 독창성입니다. 그 땅에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이의 삶과 융합한 집을 짓는 것이 제 꿈이고 철학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그가 늘 애기하던 대로 한국인의 백색에 대한 미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흰색이 비애의 색이 아니라 자연의 산물임을 주장했다. 그러한 흰색의 원형을 그는 백자에서 본다.
“조선백자는 새 건축을 창조하기 위한 내 교과서입니다. 항아리가 품고 있는 색이나 선을 보고 있을 때 항상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백자 같은 집을 짓고 싶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외칩니다. 도자기를 보면 영감을 떠오르고, 보고 있으면 스케치가 절로 나옵니다. 내 건축 세계의 독창성의 근본은 백자에 있습니다. 그건 생명, 사랑, 따뜻함 같은 것을 뭉뚱그린 무엇이지요.”
기메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는 이타미 준을 미래를 위한 새로운 모험의 발판이라고 규정한다.
“과거의 유산은 그거 이어받기만 하면 될 재산이나 ‘잊혀져서는 안 될 기억’ 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환경, 생각의 방식, 느낌의 방식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우리에게 이타미준은 한국과 일본을 프랑스와 겸허하게 이어주는 작가입니다. 인간적인 공간, 즉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삶을 즐깁니다. 따라서 건축 역시 살아 있는 환경입니다. 건축 디자인은 곳곳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때문에 삶에 다양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축 디자인으로부터 미술관의 소장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섬세하고 완벽한 논리에 따라 구성했습니다. 건축이든 미술이든 아름다움, 자유, 신중함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술사는 어떤 순간에도 차가운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문화적인 과학’ 인 겁니다. 거기에는 개인적 취향과 선택이 들어갈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을 통해 각자의 시선으로 과거를 재구성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단지 과거를 재구성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에게 새로운 모험을 향한 발판을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 피에르 캄봉,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프랑스 문화훈장을 받음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그의 미의식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전통이 없었다면 과연 현재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의 작품들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타미 준은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세계화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제주도에 있는 포도호텔을 아세요?”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대답은 당연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평소 자주 가지도 못하는 제주도에 있는 호텔까지 내가 어떻게 알랴? 모른다고 하니까 다소 맥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일동포 건축가인 이타미 준이 설계한 것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하나의 거대한 포도송이처럼 생겼는데, 방 22개짜리의 단층 호텔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잔디밭이 연결돼 있고 전망이 기가 막힌데, 방의 개수가 적은 만큼 호텔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인 수입이 되게끔 방 값은 조금 비싸다는 것이다.
그 애기를 듣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진과 함께 설명이 올라 있다. 과연 단층의 호텔 건물이 푸른 자연속에 놓여 있다. 그런데 호텔이 위치한 곳이 핀크스 골프장이라고, 지난해 한일 여자 프로골프대회가 열린 골프장 안에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했다.
사진으로 보는 외형은 제주 고유의 시골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아담하고 고즈넉하다. 호텔 앞에는 제주 전통의 밭이 조성되어 있어 봄에는 유채와 보리가 자라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라산자락 아래 자리한,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듯하지만 호텔 어느 룸에서건 테라스를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연스럽게 열려 있는 공간. 건축가인 이타미 준은 제주도의 자연 속에 남몰래 존재하는 또 하나의 제주를 만들려고 한 것인가?
이타미 준!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설계한 온양 민속박물관이 1978년 개관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이름이 일본식이다 보니, 왜 일본인에게 민속박물관 설계를 맡겼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이타미 준이란 이름은 예명이고 본명은 유동룡, 재일교포2세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필자에게 이타미 준의 이름은 다른 경로로 다가왔다. ‘우리 민족과 백색의 의미’ 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도중에 이타미 준이 ‘한국인에게 있어서 백색의 의미’를 일본에서 여러번 말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이타미를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심심치 않게 우리나라에 세워지고 있었다. 온양 민속박물관 외에도 방배동 아틀리에 각인의 탑, 부산 국립 해양박물관,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경기도의 게스트 하우스 올드 앤 뉴, 제주도의 핀크스 골프 클럽 하우스와 게스트 하우스 포도호텔, 선천고등학교 그리고 인사동 학고재 미술관도 그의 작품이란다. 일본에서는 시즈오카의 시미즈 주택, 도쿄의 인디아 잉크 하우스, 훗카이도 토마코마이의 석채의 교회와 나무의 교회, 도쿄의 M 빌딩, 도쿄 시부야의 작업실 헤리티지 오브 잉크 등 셀 수가 없다.
인사동 학고재 미술과닝 완공되던 2003년은 이타미에게 가장 좋은 해였음에 틀림없다. 그해 7월말부터 9월말까지 두 달 동안 프랑스 파리의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에서 그의 건축 작품에 대한 회고전을 열어준 것이다. 회고전의 타이틀도 눈에 띈다.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 더구나 기메 미술관 개관 이래 현존하는 인물에게 헌정되는 최초의 전시라고 한다. 이 뜻깊은 기회가 한국인 건축가에게 돌아갔다는 사실, 그가 활동한 일본도 아니고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그의 회고전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이 당시 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 충격을 주었다.
한국의 전통 위에 세운 건축
기메 미술관은 왜 그를 선택한 것인가?
“일본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예술가 이타미 준의 작품을, 작가가 오랜 세월 수집해 온 아름다운 한국 고미술품과 함께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의 전통 명품들과 건축 사이의 대화는 우리에게 이타미 준의 창조성을 보여주며, 나아가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이타미 준은 예술가로서, 동시에 수집가로서 고려나 조선의 미술품에서 받은 인상을 깊이 명상함으로써 전통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시공을 초월한 독창성과 현대성을 지닌 예술 작품을 창조해왔습니다.”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의 장 프랑수아 자리게 관장의 말은 함축적이다. 프랑스 측은 그의 전축 작품 전시회에 그가 수집한 한국의 미술품들을 같이 전시함으로써 그의 건축세계가 어떻게 형성돼왔는가를 보여준다. 전시회이 제목이 말해주듯 오랫동안 일본에 살았으되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이타미 준의 정서는 어떤 것이며,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 안에 어떻게 구현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과 전통 미술, 언뜻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두 분야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비교해 가면 현대적으로 보였던 건축에서 한국의 전통이 발견되고, 동시에 낡은 것으로 보였던 옛 미술품이 이타미를 통해 현대적 가치로 되살아나는 것을 발견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타미 준은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니까 이제 70이 넘었다. 그는 자연 그대로의 재료, 자연스러우면서도 절제된 선을 써서 한국의 전통을 현대 건축에 접목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러면서도 ‘토속주의와 지역주의가 모더니즘의 반대 명제라고 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아시아를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하겠다. 돌과 나무와 대나무 등의 소재를 사용한 것은 지역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건축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그의 글처럼, 동양과 전통에 대한 깊은 사유의 힘으로 편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이나 이국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동양적 가치를 건축으로 드러내 보여 왔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결국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2005년 10월 5일 일본 도쿄에 있는 주일 프랑스 대사관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이타미 준, 아니 한국인 유동룡 씨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말했다.
“이 상은 내가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 뒤에 오는 한국의 젊은 건축가를 위해 내는 길입니다.”
이 훈장은 어떤 훈장인가? 2003년 파리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을 평가한 프랑스 문하성이 한국 건축가에게 처음 주는 훈장이다. 사실 활약은 많이 했지만 그는 일본 건축계에서는 주류가 아닌 아웃사이더였던 모양이다. 모 일가지 기자에게 전하는 그의 속내가 새삼스럽다.
“나를 외부인이나 주변인으로 보던 일본 건축계가 충격을 받고 있어요. 건축 전문지 <신건축> 2006년 1월호가 제 최근 작품으로 특집을 꾸지고 있습니다. 남이 날 뭐라 부르든 나는 한국인이란 애기를 하고 싶어요.”
“이타미 건축의 미학이 있다면 그건 지역성입니다. 집이 들어설 곳의 자연 풍토와 전통, 추억을 아우른 건축이 제 독창성입니다. 그 땅에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이의 삶과 융합한 집을 짓는 것이 제 꿈이고 철학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그가 늘 애기하던 대로 한국인의 백색에 대한 미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흰색이 비애의 색이 아니라 자연의 산물임을 주장했다. 그러한 흰색의 원형을 그는 백자에서 본다.
“조선백자는 새 건축을 창조하기 위한 내 교과서입니다. 항아리가 품고 있는 색이나 선을 보고 있을 때 항상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백자 같은 집을 짓고 싶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외칩니다. 도자기를 보면 영감을 떠오르고, 보고 있으면 스케치가 절로 나옵니다. 내 건축 세계의 독창성의 근본은 백자에 있습니다. 그건 생명, 사랑, 따뜻함 같은 것을 뭉뚱그린 무엇이지요.”
기메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는 이타미 준을 미래를 위한 새로운 모험의 발판이라고 규정한다.
“과거의 유산은 그거 이어받기만 하면 될 재산이나 ‘잊혀져서는 안 될 기억’ 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환경, 생각의 방식, 느낌의 방식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우리에게 이타미준은 한국과 일본을 프랑스와 겸허하게 이어주는 작가입니다. 인간적인 공간, 즉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삶을 즐깁니다. 따라서 건축 역시 살아 있는 환경입니다. 건축 디자인은 곳곳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때문에 삶에 다양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축 디자인으로부터 미술관의 소장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섬세하고 완벽한 논리에 따라 구성했습니다. 건축이든 미술이든 아름다움, 자유, 신중함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술사는 어떤 순간에도 차가운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문화적인 과학’ 인 겁니다. 거기에는 개인적 취향과 선택이 들어갈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을 통해 각자의 시선으로 과거를 재구성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단지 과거를 재구성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에게 새로운 모험을 향한 발판을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 피에르 캄봉,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프랑스 문화훈장을 받음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그의 미의식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전통이 없었다면 과연 현재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의 작품들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타미 준은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세계화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