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68회 - " 영원한 ‘젊은 그대’ - 김수철 "

영광도서 0 744
서편제의 주제음악 ‘천년학’의 작곡가
1993년 봄, 초조해 하고 있는 한 음악가가 있었다. 작은 키에 안경을 쓴 남자였다.
‘어떻게 한다...? 시간은 다가오는데, 악상은 잡히지가 않고... 지난번에는 어쩔 수 없이 녹음을 취소했지만, 연기했다가 다시 오신 분들을 돌아가시라고 할 수도 없고... 영화녹음도 가까워 오는데... 어떻게 하지?’
이제 마지막이라고 데드라인을 걸어놓은 날이었다. 내로라하는 국악인들이 스튜디오로 모여들어 바로 녹음에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이 음악가는 도무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택시를 타고 녹음을 할 스튜디오로 가는 도중, 갑자기 머릿속에서 멜로디가 마구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차안에서 러프하게나마 멜로디를 오선지 위에 그려나갔다.
녹음실에 도착하자 이미 연주가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들,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부지런히 악보를 그려 나갔다. 그리고 30분 후 녹음실로 뛰어들어온 이 음악가는 대금 연주가인 박용호씨에게 악보를 내밀며 비로소 말했다.
“형님들, 이겁니다!!”

이렇게 태어난 음악이 영화 서편제의 타이틀곡인 ‘천년학’ 이다. 무겁고 장중한 분위기 속에 대금이 흐느끼면서 슬픈 비극응로 끝날 음악인의 인생을 예고한다. 또 이 때 함께 만들어진 ‘소리길’이란 곡은 소금이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주로 인물들이 갈등하거나 심적으로 복선이 깔릴 때 연주되어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영화 ‘서편제’에서 김수철의 음악은 주인공은 아니다.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소리’ , 곧 판소리이다. 그러나 김수철의 ‘천년학’ 과 ‘소리길’ 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판소리 아닌 음악’ 으로서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이곡의 작곡가가 누구인가? 바로 김수철이다.

본질적인 소리를 세계를 찾다
대중가수로 시작해 ‘못다 핀 꽃 한 송이’, ‘젊은 그대’, ‘내일’, ‘나도야 간다’, ‘별리’, ‘왜 모르시나’, ‘정신차려’, ‘정녕 그대를’ 등등 모두 한 가락씩 하는 명곡을 남긴 김수철은 이제 더 이상 대중가수만이 아니다. 그는 작곡가이다.

가수로서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그는 이미 ‘고래 사냥’, ‘칠수와 만수’ 의 영화음악, ‘0의 세계’ 라는 무용음악, 88년 서울 올림픽에서의 현대무용 음악, 고전무용 음악, 제11회 대한민국무용제의 대상 작품 ‘불림소리’의 무용음악 등 수많은 곡을 작곡한 작곡가이다.
그런 그가 2002년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개막식 음악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얼마 전에는 기타를 마치 가야금처럼 자유자재로 연주하면서 전통음악의 산조 형식을 연주하는 ‘기타 산조’ 라는 명음반은 선보였다.
그는 노래를 덜 부르면서 작곡을 통해 보다 본질적인 소리를 찾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음악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출발했지만 국악과 양악의 만남, 그리고 클래식과의 만남까지 아우르는 새 장르요, 새 운동장이며, 새 그림책이다. 그 속에 들어가 볼수록, 그 페이지를 넘길수록 거기에는 너무나 다채로운 꺼리들이 있다.
그가 작곡한 영화 서편제의 주제음악은 이미 방송국의 국악 시간에 정규 국악 작품으로 대접받으며 방송되고 있다. 유엔 총회장에서의 공연은 사람들은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이것은 그의 음악이 한국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경지로 올라섰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무대에 안주하지 않고 깡충깡충 뛰던 그 모습 그대로 김수철은 끊임없이 음악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영원한 ‘젊은 그대’ 로서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완전히 피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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