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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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제42회 - " 모기의 입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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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4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는 말이 있다. 처서(處暑)가 되면 더위가 꺾이어 파리나 모기의 성화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질 정도로 아침, 저녁의 찬 공기가 느껴지고, 모기나 파리도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뜻이다.
올해는 지난 목요일(23일)이 처서였다. 그날 아침 산책 때( 맨발에 가벼운 슬러퍼 차림으로 산책을 하느라) 발바닥에 느껴지는 시원함을 의식하고는 “과연 옛 말이 틀린 것이 없군!”하며 마음속으로 반가움의 호들갑을 떨었지만 불과 이틀이 지나며 요즈음 옛 말이 어디 맞느냐고 다시 나의 경망스러움을 탓하게 되었다. 그것은 물론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미련을 떨고 있는 여름무더위 때문이다.
대체 올해 무더위는 왜 우리나라를 빨리 떠나려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가? 우리 상식으로는 대충 굳이 처서가 아니라도 8월15일 광복절을 지나며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바람이 대신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갈수록 더 덥다. “참 이상하군”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이상현상을 기상당국도 알았는지 8월 하순의 평균 낮 최고 기온이 중순 뿐 아니라 초순을 웃도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즉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지역의 평균 낮 최고기온은 31.7도로 초순인 1일부터 10일까지 평균 낮 최고기온인 28.9도 뿐 아니라 중순(30.6도)을 크게 웃돌았다는 것이다. 그런 고온현상이 어제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볼 때 과거 1971년부터 2000년까지 8월의 서울지역 낮 최고기온 평년치가 초순(30.2도)이 제일 높고 중순(30.0도), 하순(28.3도) 등의 순이었던 것을 확실하게 뒤집었다고 하겠다.
그 이유야 기상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경험한 바대로 이달 초순에는 집중호우 등 비가 자주 내렸고 흐린 날씨가 계속되면서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지 않았는데, 최근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한 세력을 보이면서 맑은 날씨 탓에 초순과 중순보다 일조량이 많아진 점이 그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8월 중순이 지나면 당연히 더위가 가는 것에 익숙해 있던 우리의 몸은, 더욱 더 지친다. 몸뿐이 아니라 정신도 역시 그렇다. 그러기에 늦 무더위(늦더위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에 배운 글귀로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란 말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는데, "찌는 듯한 늦더위에 머리에는 관을 쓰고 허리에는 띠를 매고 점잖게 예복을 갖추고 앉았노라니 더위를 참다 못해 미칠 것만 같아서 큰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뜻으로서 바로 요즈음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낸 명 귀절이다. 그래서인가?
‘유월무례(六月無禮)’
이웃나라 일본에는 ‘유월무례(六月無禮)’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때의 유월은 음력이어서 8월에 해당하며 이렇게 더위가 한창일 때에는 복장이 흐트러져도 너그럽게 봐준다는 뜻이란다. 이미 알려진대로 일본에서는 올해 '쿨비즈'라는 "무례한 옷차림"이 이미 관청가에 등장해서 성업중인데, 무더위에 냉방기의 전력을 아끼기 위해 공무원들이 사무실에서 넥타이를 풀고 일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총리나 장관들, 각 공무원들이 모두 노타이 차림인데 이러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노타이차림으로 국회에 출석해 답변을 하는 각료들을 보고 기분이 상했던지 국회답변에서만은 넥타이를 매자고 제의를 했다가 보기좋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일본에야말로 '유월무례'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올해 음력 6월은 양력으로는 8월전반부에 해당하는데, 8월 후반부가 더 더워 예의를 차릴 수 없을 지경이 되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일본식으로 ‘칠월무례(七月無禮)’라는 말을 응용해서 조금 복장에 대해 너그럽게 봐주면 안될까?
그러나 저러나 이번 주에도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대체로 구름이 많은 가운데 더위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예전같으면 처서를 지나서도 더위가 계속되면 이를 늦더위, 혹은 ‘잔서(殘暑)’라고 했는데, 올해는 역시 ‘늦’이란 표현을 마음대로 써도 괜찮을 것인지에 의구심이 생기며 그저 계속 기승을 부릴지도 모를 ‘더위님’께 선처를 빌 뿐이다. 다시 옛 말을 하나 더 인용한다면 우리나라에도
“유월(六月) 저승을 지나면 팔월(八月) 신선이 돌아온다”
는 말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올해는 음력 6월이 곧 양력 8월 초반이었고 음력 8월은 9월 11일부터 시작되어 9월25일에는 추석이 되니 곧 9월 중순 이후에는 어김없이 신선처럼 좋은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추석을 기다리며 모름지기 오늘의 이 저승 같은 무더위를 참아낼 일이다.
사족)그러나 아무리 무덥다고 제대로 옷을 갖추지 않으면 망신을 당하는 수가 있다. 다음의 이야기는 실화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예전 조선시대 왕궁에서 한여름의 어전회의는 상당히 괴로운 일이였음에 틀림이 없다. 임금 앞에서의 회의이니 아무리 더워도 복식을 모두 갖추고 그 위에 관복까지 입고 관모를 쓰고 있어야 했으니 '속대발광욕대규'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이항복이 재미있는 정보를 얻었단다. 그의 장인인 도원수 권율이 속된 말로 잔머리를 굴려서 관복안에 제대로 옷을 입지 않고 다닌다는 정보를 얻은 것이다. 장난끼가 발동한 이항복은 어느 무더운 날 어전회의 중에 긴급 제안을 한다. "날이 너무 더워 정신마저 혼미해지니 이래서는 제대로 회의 진행이 어렵습니다. 관복과 관모라도 좀 벗고 회의를 진행했으면 하오니 윤허해주소서." 높은 용상에 앉아 있지만 덥기야 마찬가지였을 선조가 이를 가장 반기며 못이기는 체 이를 윤허한다. 선조부터 옷을 벗으며 대신들에게도 관모와 관복을 벗을 것을 권했고 다들 더위에 지쳤던 터라 모두 반기며 관복과 관모를 벗었다. 그런데 단 한사람 권율만이 관복을 벗지 못한체 얼굴을 붉히고 있었던 것이다. 선조가 보기에 임금인 자신까지 용포를 벗었건만 도원수만이 옷을 벗지 않고 있으니 의아해 하며 "임금이 벗으랬는데 어째서 벗지 않는가? 어명을 거역하는가?"하고 채근하니 어쩔 수 없이 벗어야 하는 판국이였다. 그런데 그날 따라 관복 안에 옷을 제대로 입지 않고 요즘에 비유하면 팬티 러닝셔츠 차림이였으니 권율이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을 붉히고 서있을 수 밖에. 선조와 대신들도 모두 엄청나게 당황했다고 한다. 이때 이항복이 재치있게 결정타를 날린다.
"전하! 도원수가 워낙 청빈하여 집안 살림이 넉넉치 못하여 옷도 제대로 못해 입고 다닌다 하옵니다. 도원수의 딱한 처지를 어여삐 여겨주소서"이제서야 이항복의 장난끼임을 깨달은 선조는 파안대소 하며 "일국의 도원수가 옷도 못입고 다니다니 말이 아니구려, 내 비단과 무명을 하사하니 옷은 제대로 맞춰입고 다니시오" 라고 말해 일순간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날 이후 권율은 아무리 찌는 삼복더위에도 의복을 다 갖춰입고 다녔다는 것이다.
는 말이 있다. 처서(處暑)가 되면 더위가 꺾이어 파리나 모기의 성화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질 정도로 아침, 저녁의 찬 공기가 느껴지고, 모기나 파리도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뜻이다.
올해는 지난 목요일(23일)이 처서였다. 그날 아침 산책 때( 맨발에 가벼운 슬러퍼 차림으로 산책을 하느라) 발바닥에 느껴지는 시원함을 의식하고는 “과연 옛 말이 틀린 것이 없군!”하며 마음속으로 반가움의 호들갑을 떨었지만 불과 이틀이 지나며 요즈음 옛 말이 어디 맞느냐고 다시 나의 경망스러움을 탓하게 되었다. 그것은 물론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미련을 떨고 있는 여름무더위 때문이다.
대체 올해 무더위는 왜 우리나라를 빨리 떠나려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가? 우리 상식으로는 대충 굳이 처서가 아니라도 8월15일 광복절을 지나며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바람이 대신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갈수록 더 덥다. “참 이상하군”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이상현상을 기상당국도 알았는지 8월 하순의 평균 낮 최고 기온이 중순 뿐 아니라 초순을 웃도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즉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지역의 평균 낮 최고기온은 31.7도로 초순인 1일부터 10일까지 평균 낮 최고기온인 28.9도 뿐 아니라 중순(30.6도)을 크게 웃돌았다는 것이다. 그런 고온현상이 어제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볼 때 과거 1971년부터 2000년까지 8월의 서울지역 낮 최고기온 평년치가 초순(30.2도)이 제일 높고 중순(30.0도), 하순(28.3도) 등의 순이었던 것을 확실하게 뒤집었다고 하겠다.
그 이유야 기상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경험한 바대로 이달 초순에는 집중호우 등 비가 자주 내렸고 흐린 날씨가 계속되면서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지 않았는데, 최근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한 세력을 보이면서 맑은 날씨 탓에 초순과 중순보다 일조량이 많아진 점이 그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8월 중순이 지나면 당연히 더위가 가는 것에 익숙해 있던 우리의 몸은, 더욱 더 지친다. 몸뿐이 아니라 정신도 역시 그렇다. 그러기에 늦 무더위(늦더위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에 배운 글귀로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란 말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는데, "찌는 듯한 늦더위에 머리에는 관을 쓰고 허리에는 띠를 매고 점잖게 예복을 갖추고 앉았노라니 더위를 참다 못해 미칠 것만 같아서 큰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뜻으로서 바로 요즈음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낸 명 귀절이다. 그래서인가?
‘유월무례(六月無禮)’
이웃나라 일본에는 ‘유월무례(六月無禮)’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때의 유월은 음력이어서 8월에 해당하며 이렇게 더위가 한창일 때에는 복장이 흐트러져도 너그럽게 봐준다는 뜻이란다. 이미 알려진대로 일본에서는 올해 '쿨비즈'라는 "무례한 옷차림"이 이미 관청가에 등장해서 성업중인데, 무더위에 냉방기의 전력을 아끼기 위해 공무원들이 사무실에서 넥타이를 풀고 일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총리나 장관들, 각 공무원들이 모두 노타이 차림인데 이러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노타이차림으로 국회에 출석해 답변을 하는 각료들을 보고 기분이 상했던지 국회답변에서만은 넥타이를 매자고 제의를 했다가 보기좋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일본에야말로 '유월무례'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올해 음력 6월은 양력으로는 8월전반부에 해당하는데, 8월 후반부가 더 더워 예의를 차릴 수 없을 지경이 되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일본식으로 ‘칠월무례(七月無禮)’라는 말을 응용해서 조금 복장에 대해 너그럽게 봐주면 안될까?
그러나 저러나 이번 주에도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대체로 구름이 많은 가운데 더위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예전같으면 처서를 지나서도 더위가 계속되면 이를 늦더위, 혹은 ‘잔서(殘暑)’라고 했는데, 올해는 역시 ‘늦’이란 표현을 마음대로 써도 괜찮을 것인지에 의구심이 생기며 그저 계속 기승을 부릴지도 모를 ‘더위님’께 선처를 빌 뿐이다. 다시 옛 말을 하나 더 인용한다면 우리나라에도
“유월(六月) 저승을 지나면 팔월(八月) 신선이 돌아온다”
는 말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올해는 음력 6월이 곧 양력 8월 초반이었고 음력 8월은 9월 11일부터 시작되어 9월25일에는 추석이 되니 곧 9월 중순 이후에는 어김없이 신선처럼 좋은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추석을 기다리며 모름지기 오늘의 이 저승 같은 무더위를 참아낼 일이다.
사족)그러나 아무리 무덥다고 제대로 옷을 갖추지 않으면 망신을 당하는 수가 있다. 다음의 이야기는 실화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예전 조선시대 왕궁에서 한여름의 어전회의는 상당히 괴로운 일이였음에 틀림이 없다. 임금 앞에서의 회의이니 아무리 더워도 복식을 모두 갖추고 그 위에 관복까지 입고 관모를 쓰고 있어야 했으니 '속대발광욕대규'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이항복이 재미있는 정보를 얻었단다. 그의 장인인 도원수 권율이 속된 말로 잔머리를 굴려서 관복안에 제대로 옷을 입지 않고 다닌다는 정보를 얻은 것이다. 장난끼가 발동한 이항복은 어느 무더운 날 어전회의 중에 긴급 제안을 한다. "날이 너무 더워 정신마저 혼미해지니 이래서는 제대로 회의 진행이 어렵습니다. 관복과 관모라도 좀 벗고 회의를 진행했으면 하오니 윤허해주소서." 높은 용상에 앉아 있지만 덥기야 마찬가지였을 선조가 이를 가장 반기며 못이기는 체 이를 윤허한다. 선조부터 옷을 벗으며 대신들에게도 관모와 관복을 벗을 것을 권했고 다들 더위에 지쳤던 터라 모두 반기며 관복과 관모를 벗었다. 그런데 단 한사람 권율만이 관복을 벗지 못한체 얼굴을 붉히고 있었던 것이다. 선조가 보기에 임금인 자신까지 용포를 벗었건만 도원수만이 옷을 벗지 않고 있으니 의아해 하며 "임금이 벗으랬는데 어째서 벗지 않는가? 어명을 거역하는가?"하고 채근하니 어쩔 수 없이 벗어야 하는 판국이였다. 그런데 그날 따라 관복 안에 옷을 제대로 입지 않고 요즘에 비유하면 팬티 러닝셔츠 차림이였으니 권율이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을 붉히고 서있을 수 밖에. 선조와 대신들도 모두 엄청나게 당황했다고 한다. 이때 이항복이 재치있게 결정타를 날린다.
"전하! 도원수가 워낙 청빈하여 집안 살림이 넉넉치 못하여 옷도 제대로 못해 입고 다닌다 하옵니다. 도원수의 딱한 처지를 어여삐 여겨주소서"이제서야 이항복의 장난끼임을 깨달은 선조는 파안대소 하며 "일국의 도원수가 옷도 못입고 다니다니 말이 아니구려, 내 비단과 무명을 하사하니 옷은 제대로 맞춰입고 다니시오" 라고 말해 일순간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날 이후 권율은 아무리 찌는 삼복더위에도 의복을 다 갖춰입고 다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