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49회 - " 추리소설 "

영광도서 0 647
일본이란 나라, 일본인이란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왜놈’이라는 비칭으로 대변되듯 우리들에게 일본인들은 키가 작고 그만큼 속도 좁은, 어딘가 등급이 좀 낮은 인간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진 경향이 있고, 일본인들이 하는 행동도 하나하나도 그런 측면에서 맘에 들지 않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간혹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보아도 일본 사회에 질린다는 말을 하는 사례가 꽤나 있는 것으로 보면 우리들이 일본인들을 뭐 백제의 후손이 아니냐고 생각하고 싶은 속내와는 별도로, 다른 한 쪽에서는 되도록 우리와는 죽이 잘 맞지 않는 족속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 사회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면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된다.

우리가 일본문화를 들여다볼 때 조금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웬 귀신같은 형상을 한 놈들이 길거리 곳곳에서 그리 많이 보이느냐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만화의 주인공이나 가게의 선전그림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일본의 추리소설도 그런 요괴현상의 하나다. 예를 들어, <샤바케>에서는 주인공을 돌보는 인물로 요괴가 등장하고, <망량(??)의 상자>나 <우부메의 여름>과 같은 소설들에서는 요괴를 함께 데리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러 요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또한 거리의, 가게의 색깔이 그리 요란한가? 무슨 잡화점을 가던, 만화가게를 가던, 옷가게를 가던, 모든 곳의 색은 너무도 현란하고 요란하고 정신이 없다. 절에 가도 새빨간 단청을 한 기둥에다가 노란 지붕 등 원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래서 그것이 싫다고 말하는 한국인이 많다.

그러나 이것을 뒤집어 보면 그만큼 우리의 색감이 그들에 비해서 단조롭고, 우리의 인물관이 조금은 굳어 있기에 다양한 표정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보게 되는 것이 일본의 추리소설이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추리소설 장르일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우리나라는 추리소설 작가로서 대중에 널리 알려진 분이 많지 않은데 일본의 경우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원조가 에도가와 란포(江?川亂步 1894~1965)라고 하는 사람이다.

에도가와 라고 하면 어딘가 연상되는 것이 없는가? 그렇다. 바로 추리문학의 대가인 미국의 에드가 앨런 포(Edgar Alan Poe 1809~1849)이다. ‘에드가 앨런 포’도 필명이지만, 이 ‘에도가와 란포’도 필명이다. ‘에드가’란 영어이름을 일본식으로 하면 ‘에도가’가 되는데 여기에 강을 뜻하는 가와(川)를 붙여 자연스럽게 성(姓)으로 취한 것이다. 란포라고 하는 이름도 한자로는 亂步인데 아무데도 구애받지 않고 활보한다는 뜻이 되니 에드가 앨런 포의 포라는 이름을 적절히 따서 쓰면서도 그와 같이 추리소설을 경계의 구별 없이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 된다. 일찍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자 약 90년 전 문학의 선배를 존경하고 본따겠다는 것이리라.

과연 그 이름 그대로 에도가와는 일본의 추리소설을 반석위에 올려놓는다. 29살이 되던 1923년 처녀작인 《二錢銅貨(2전짜리 동전)》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일약 혜성으로 떠 올랐다. 그는 그 당시까지 이러한 소설을 부르던 ‘탐정소설’이란 이름 대신에 추리소설이란 이름을 만들어 스스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름 그대로 단순히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소설 차원을 넘어서서 고도의 추리력으로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이지적(理智的)인 문학의 세계를 열어갔다. 그의 작품 활동도 왕성하기 이를 데 없어서 첫 해인 1923년에 세 편을 발효한 데 이어 그 이듬해에 2편, 그 이듬해에는 무려 17편을 발표하는 등 잠시도 쉬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세상을 뜨기 5년 전인 1960년까지 무려 97편의 작품을 쓰는, 그야말로 최대의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도 4편이 번역, 소개되었는데, 1928년 발표한 《음울한 짐승》, 1929년의 《외딴섬 악마》 등이 그것이다.
이 추리소설의 주인공은 아케치 코고로(明智小五郞). 세련된 젊은 신사의 인상이 강하지만 처음 등장할 땐 부석거리는 머리에 지저분한 모습으로 담배가게 2층의 좁은 방에서 살고 있다. 물증보다 인간 심리를 중시하며, 범죄 수사에 심리학을 응용하여 사건의 진상을 밝혀가는 것이 바로 그만의 방법이며 그런 수사를 위해서 자주 멋지게 변장을 한다. 그가 다루는 사건에는 항상 괴기와 환상의 분위기가 감도는데, 기괴, 음울, 찝찝, 에로틱, 공포.....그러면서도 가끔 느껴지는 유머 등으로 이게 과연 추리소설인지 미심쩍을 정도라는 반응과 함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과 심리 묘사가 일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런 에도가와와 동연배의 작가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노무라 코도(野村胡堂, 1882~1963)이다. 에도가와보다는 12살이 많지만 사망한 연도는 2년 차이밖에 안되니 동년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토쿄제국대학을 중퇴하고 호치(報知)신문에 들어가 기자로 활동하던 노무라는 오십을 바라보는 늦은 나이인 1931년에 잡지 <분게이슌슈(文藝春秋)>에 《제니가타 헤이지의 사건수첩 》이란 제목으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에도(江戶)시대(1603~1867)에 제니가타 헤이지(?形平次)라는 이름의 탐정이 범인을 잡는 이야기인데, 그 뒤 26년 동안 383편이나 이어지면서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활약상을 묘사한 것이다. 물론 이 주인공은 탐정소설작가 코난 도일이 창조한 유명한 주인공인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이 중에 30여 편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였다고 한다.

노무라 코도가 창조한 제니가타라는 탐정은 허름한 집에서 부인과 둘이 함께 살고 있다. 담배를 매우 좋아하며 한가할 때는 마루에 앉아 장기를 둔다. 그의 특기는 바로 '엽전 던지기'. 악당을 향해 내던지는 동전은 백발백중, 대단한 위력의 기술이다. 가난한 서민의 편에 서서 부정한 돈은 받지 않는 탓에 집세가 두 달이나 밀릴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는 ‘행위는 처벌해도 그 동기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근대법의 정신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사건의 동기까지 파고들어 위선과 불의를 처벌하도록 하는 인간적인 탐정이다. 그는 쉽게 죄인을 만들지 않고 서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활약을 펼쳐 서민들의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러나 이렇게 오랫동안 일본 추리소설이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음으로서 일본의 두뇌는 좀 더 치밀하고 분석적이고 조직적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면 너무나 피상적이고 견강부회가 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일본의 추리문학세계는 넓고 깊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재미가 있고 또 소재가 엄청 다양하다. 밀실 트릭을 이용한 본격추리물, 오로지 자신만을 믿고 잔인한 세상을 돌파해 가는 하드보일드, 범죄의 동기를 더욱 중요시 하는 (노무라 코도 같은) 사회파 추리 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추리물이라 하겠지만 거기에다가 말랑말랑하면서도 화사한 코지 미스터리, 요괴와 귀신이 등장하는 심령추리물,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라이트 노블의 추리물, 야하고 폭력적인 성인용 추리물 등(일본추리소설이 재미있는 이유, www.extmovie.com에서 인용) 그야말로 천태만상의 추리소설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일본은 가히 추리소설의 천국이 되어 버렸다.
그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추리소설계는 한동안 조금 올라가는 듯 하다가 지금은 거의 완전히 주저앉았다. 그 실태를 인터넷에 올라 온 글을 토대로 정리해보자(그 글은 어느 대학신문에 나온 것이라고만 되어 있음):

한국 추리문학은 1918년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가 코난 도일의 「세 학생의 모임」을 번역, 게재한 것이 시작이었고 1920년대 코난 도일과 모리스 르블랑을 중심으로 많은 고전 추리소설이 번안되어 소개되기는 하지만 진정한 추리소설작가라고 불릴만한 김내성이 등장하기까지 십여 년 이상을 기다려야만 했다. 1935년 처녀작「타원형의 거울(日文)」로 일본 잡지의 현상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한 김내성은 자신을 당당히 추리소설가로 인식하면서 1935년 이후 8년 동안 한국 최초의 장편추리소설 『마인(魔人)』을 포함하여 중 단편 11편과 4편의 장편소설을 집필하였다. 그러나 김내성으로 시작된 한국추리문학은 해방과 한국전쟁 등과 같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기나긴 공백기를 거쳐야만 했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한국 창작 추리소설의 1세대라고 할 만한 두 명의 걸출한 작가가 배출되는데 현재훈과 김성종이다. 특히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어느 창녀의 죽음〉으로 당선된 김성종은 1974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최후의 증인』을 내놓으면서 한국 추리소설의 부활을 알린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이후 1980년대 한국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이끌면서 『제5열』, 『제5의 사나이』, 『국제열차 살인사건』『피아노 살인』등의 굵직한 작품들을 발표한다.
1980년대는 양과 질적인 면에서 한국 추리소설의 황금기라고 할만하다.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고, 문학지의 공모 또는 문학상을 통해서 작가들이 등단한다. 작품의 질과 다양성에 있어서도 스릴러적 요소가 강한 김성종의 작품들과 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이상우의 『악녀 두 번 살다』, 정통 수수께끼 풀이형인 노원의 『화려한 외출』, 하드보일드적 작풍을 가진 정건섭의 『호수에 죽다』 등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또, 1983년에는 ‘미스터리 클럽’이 ‘한국추리작가협회’로 정식 발족하면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제정해서 시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붐은 급속히 시들기 시작하였다. 한국 추리소설은 선정성 시비에 휘말렸고 성의 없이 양산된 작품들에 식상한 독자들의 외면을 피할 수 없었다. 현재 한국 추리소설은 고사 직전에 있다. ‘한국추리문학대상’은 몇 년째 변변한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고, 스포츠 신문에서 공모하던 신춘문예 추리소설 부문도 폐지되면서 등단의 기회마저 협소해졌다.

이상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새로운 창작이 없다보니 그 간격을 메우는 것이 번역물의 범람이다. 최근 2~3년 동안 한국에는 유래 없이 많은 추리소설 번역물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독서열을 보면 신인들의 탄생을 희망적으로 예상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웃 나라에 비해서는 단조롭고 조용하다.
어쩌면 그런 것이 우리 사회의 단일성, 폐쇄성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현상을 어떤 틀 안으로 가두고 그 안에서 벗어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 학문이건 예술이건 자신이 해 오던 것 이외에는 인정하기 싫어하는 풍토, 종교건 철학이건 자기가 하는 것만이 옳다고 하는 아집이나 독선, 그런 것들이 이런 추리소설계에도 반영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모든 문화현상이란 것이 곧 사람들의 생각이 거울에 비친 것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근대 이후 과거와 너무도 단절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교사회여서 살인사건이 많지 않았고, 따라서 수사도 대충대충 했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법의학서인 「무원록」「중수무원록」등을 토대로 철저한 과학수사를 행해온 것으로 최근에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었기에 우리들이 접근할 수가 없었고 특히 일제 36년, 그리고 그 뒤의 미군정과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사람들이 우리의 과거 기록 속에서 그런 것을 배울 방법이 없었기에 그러한 과거의 전통이 우리들의 두뇌 속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우리처럼 과거문화와 완전히 단절된 나라가 있을까?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원래 한문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본식으로 풀어서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고 일본의 외국의 지배에 의해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적이 없었기에 과거의 전통과 유산을 잘 살려 현대로 발전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 나라의 풍토, 그리고 그것에서 형성된 사람들의 성격이나 성품과 결합되어 오늘날의 일본의 추리문학이란 거대한 봉우리를 만든 것이리라. 그러한 추리문학의 왕성함이 만화나 만화영화, 그리고 게임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소니 등의 망을 통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나라의 게임이 캐릭터 부족으로 어려운 것과는 대조가 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추리문학도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규장각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옛날 자살, 변사 사건 처리기록들이 속속 번역되어 대중 앞으로 나오고 있고, 옛 사람들의 생활상도 많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한 것들을 거름으로 삼으면 우리의 청소년들이 좋아할 추리문학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추리문학의 앞날이 결코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다만 너무 일본 것에 경도되어 우리 것을 만들 기력 자체를 잃어버려서는 안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추리문학계도 옛 것을 돌아보고 새 것을 만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추리소설을 아껴주는 독자층도 시급히 확산되어야 한다.

영국의 세계적인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1987~1970)도 지독한 추리소설광이었다고 한다. 일년 365일 추리소설을 손에서 놓는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인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 인류에게 아주 오래전 야만시대 부터 대대로 계승되어 오고 있는 본능을 어떻게 남에게 해를 주지 않고 만족시킬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 경우는 추리소설들에서 충분한 출구를 발견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이 번갈아 가며 살인자와 탐정이 된다. ”

추리소설, 추리문학은 바로 그처럼 인간의 본능적인 동물적인 본능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방법이라면, 우리 사회, 우리들도 핏속에 감춰져 있던 동물적인 본능을 남에게 해로운 방법보다는 추리문학으로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유난히도 경쟁과 경쟁의 실패로 인한 자살, 범죄 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많은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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