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50회 - " 월궁 "

영광도서 0 520
“중국 하 왕조 요(堯) 임금 때 일이다. 하늘에 갑자기 해가 열 개나 솟았다. 그 태양은 천제 제준(帝俊)의 아들들인데, 원래 하루에 하나씩 번갈아가며 떠야 하지만 장난기가 도져서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그 때문에 지상엔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인간들의 원망이 하늘에 뻗치자 제준은 활 잘 쏘는 천신 예(羿, 羽+十十)를 인간 세상에 내려보낸다. 예는 아내 항아(姮娥)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예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죽어가는 지상의 백성들을 보고 화가 치밀어 태양들을 쏘아 맞춰 떨어뜨려 버린다. 예가 흰 화살을 붉은 활에 메겨 한 대 쏠 때마다 하늘의 불덩어리가 폭발하고 거대한 황금빛의 세 발 까마귀, 즉 태양의 정령이 추락해서 떨어졌다. 태양이 모두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요 임금이 급히 사람을 보내 화살 통에 꽂힌 열 개의 화살 중 하나를 몰래 뽑아오도록 함으로서 하늘에 태양이 한 개는 남아있을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명궁(名弓) 후예(后羿)의 전설이다. 그의 이름은 예인데, 존경의 의미로 후예로 불린다. 이 후예가 누구인가?

후예는 때로는 이예(夷羿)라고도 불린다. 동이족이라는 뜻이다. 전설에서 조금 더 역사 쪽으로 이동해보면 그는 하왕조 시대에 동이족인 유궁씨(有窮氏)의 수령이라고 전해진다. 활을 잘 쏘았다. 당시 왕이었던 계(啓)의 아들 태강(太康)은 사냥을 다니거나 놀기를 즐기고 정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후예에 의해 축출되었다. 태강이 죽은 후에 후예는 태강의 동생인 중강(仲康)을 왕으로 만들고 실권을 조종하였다. 그러다가 자신이 믿는 부하인 한착(寒浞, 水+足)에게 피살당하였다. 물론 이런 사실도 당시의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좀 더 역사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동이족의 힘이 그처럼 세었다는 뜻이다. 잘 알다시피 하(夏) 왕조는 요(堯)임금 다음에는 순(舜)임금인데, 순임금이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

여기서 다시 전설로 돌아가 보자.

“태양 문제를 해결한 뒤 예는 지상의 괴수들을 퇴치하러 다녔다. 소와 비슷한 붉은 몸뚱이에 사람의 얼굴과 말의 발을 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알유,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대여섯 자나 되는 거대한 이빨을 가진 착치,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물과 불의 괴물 구영, 성질이 포악한 거조 대풍(봉황이라고도 하고 공작이라고도 함), 동정호에서 풍랑을 일으켜 어부들을 잡아먹는 거대한 구렁이 파사, 사람과 가축을 잡아먹고 농사를 망치는 커다란 산돼지 봉희를 차례로 없애버린다.

이렇게 천제가 내린 명령을 모두 수행했지만, 어쨌든 천제의 아들을 아홉이나 죽여 버렸기 때문에 천제의 미움을 사서, 예는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때문에 아내 항아의 불만이 대단했다. 그때부터 예는 지상 여기저기를 방랑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물의 신 하백의 아내 복비와 스캔들을 일으킨다.

한편 남편의 의욕과잉 때문에 천신 자리에서 쫓겨난 항아는 이제 인간의 몸이 되어버렸으니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처지라며 바가지를 긁는다. 할 수 없이 예는 서왕모를 찾아가 불사약을 얻어오게 된다. 예의 영웅적인 행적을 듣고 있던 서왕모는 불사약을 내주며, 두 사람이 나눠 먹으면 불로불사할 것이고 한 사람이 먹으면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설명해준다. 예는 하늘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그다지 없었으므로 아내와 함께 나눠먹고 지상에서 영원불멸의 삶을 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항아는 생각이 달랐다. 남편 탓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생기자, 예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그 약을 혼자 다 먹어버린다.

이렇게 해서 하늘로 돌아가게 된 항아는 원래 살던 곳으론 가지 못하고 한 귀퉁이인 달나라에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전설은 최근에 중국인 위앤커(袁珂)가 지은 ‘중국신화전설’이란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시 알려졌지만 원래는 우리 조상들이 줄줄 외우던 전설이다. 달나라에 올라가 살게 된 항아는 욕심 때문에 천벌을 받아서 두꺼비로 변신했다는 설과, 그냥 월궁에서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살았다는 설, 두 가지가 있어서 달 속에 두꺼비가 잇다는 전설로 변하거나, 아직도 아름다운 미인 항아가 지상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다는 전설로 남아있는데, 어찌됐던 월궁에는 항아가 산다는 말을 필자도 어릴 때부터 할머니, 어머니로부터 들어오면서 컸다. 그러기에 월궁항아의 전설은 중국에서 전해왔지만 사실은 우리의 아득한 조상인 동이족의 전설이기에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전설은 우리들에게 각인에 되어있어 우리들의 상상 속에서 살아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지난 24일에 최초의 달 탐사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해서 떠들썩하다. 그 위성의 이름이 ‘창어’란다. 신문은 이 ‘창어’를 한자로 嫦峨라고 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嫦娥(우리 발음으로는 항아)라는 이름은 중국인들이 姮娥(항아)라는 이름 대신에 최근에 쓰는 이름이다. 곧 월궁의 항아를 뜻한다. 그런데 현지의 특파원들이 현지발음만을 중시해서 월궁의 항아(嫦娥, 또는 姮娥)를 중국식 발음인 ‘창어’라고 표기하고, 또 동이족이며 활의 명수인 후예(后羿)를 ‘후이’라고만 표기함으로서 항아와 후예의 전설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 아마도 최근의 현지특파원들은 원래 후예나 항아의 전설을 모르기 때문에 현지어만의 표기를 한 것인가? 사전에 ‘창어’가 항아인줄 알았다면 적어도 기사 어딘가에 그 사실을 알려주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전설세계를 무시하고 중국식 발음만을 적음으로서 우리들이 2천년동안 지녀왔던 달에 관한 전설이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버린 것 같다. 우리들은 달에 관한 전설을 잃어버리고 갑자기 중국의 ‘창어’와 ‘후이’의 전설을 배워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참으로 기자들의 글 한 줄, 글자 한 자가 이처럼 무섭고도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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