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52회 - " 나비효과 "

영광도서 0 574
물리학에 ‘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가 1961년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해낸 이 원리는 변화무쌍한 날씨의 예측이 힘든 이유를, 지구상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 말은 더 나아가서 디지털과 매스컴 혁명으로 정보의 흐름이 매우 빨라지면서 지구촌 한 구석의 미세한 변화가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도 뜻하고 있다. 요컨대 어느 한 개인의 작은 날개 짓이 지구를 바꿀 큰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뜻에서 외국에서 이런 제목의 영화도 나왔고 국내에서는 대중음악가 몇 명이 그들의 이름을 이 ‘나비효과’라고 쓰고 있다.

'나비효과’라는 ID를 쓰는 청년이 있다. 지난해부터 인터넷에 올린 내 글에 대한 댓글을 여러 번 올렸기에 알게 된 사람이다. 이 청년은 네이버에서 ‘싱요사’라는 카페를 3년째 운영하고 있었다. ‘싱요사’?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름인데 ‘싱글들을 위한 요리사랑 모임’이란다. 카페를 읽어가다 보니 이들이 주말마다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요리를 만들어 주고 잇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요리봉사를 하는 청년들의 모임인 것이다. 3년 전 이 청년은 해마다 연말에 불우이웃돕기를 한다고 하면서 돈이나 조금 내거나 혹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연말에 한 번 찾아가는 것으로 봉사를 다 한 냥 하는 우리 사회의 풍조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고 한다. 이런 데 있는 사람들은 일년 내내 사랑이 그리운 분들인데, 연말에만 우루루 몰려가고 나머지 일년은 방치하는 이런 봉사활동은 사랑을 위한 진정한 봉사가 될 수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이런 보호시설은 적은 예산으로 많은 분들을 돌보아야 하는 관계로 음식이 최저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우리가 직접 나서서 이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서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자는 것이었다.
민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民爲食爲天"이란 말은 공자가 했던가? 맹자가 했던가? 아무튼 "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곧, 식욕(食欲)과 색욕(色欲)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들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음식을 맛잇게 들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큰 봉사요, 사랑이 된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이 모임은 전국적으로 가입회원만 만 6천명에 이르고 있고 전국에 16개 지부모임이 있어서, 각 지부마다 요리행사를 주도하는 주재자가 매 번 10명 안팎의 젊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주말마다 곳곳의 시설을 찾아 직접 요리를 해서 이들에게 대접한다.
"동산 선생님도 뭐 칼럼으로만 남한테 사랑과 봉사를 강조하지 마시고 직접 현장에 한 번 와보세요. 와보시면 이 활동이 얼마나 보람이 큰 것인지를 실제로 느끼게 될 테니까요” 라는 성화에 못 이겨 해를 넘기기 전에는 꼭 한번 동참하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지난 주 토요일에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지온보육원이란 데를 찾아가게 되었다. 지하철 5호선 종점인 방화역에서 10분 이상 언덕으로 올라가니 언덕 너머에 지하층을 포함한 2층 건물의 보육원이 있다. 원생은 78명. 다섯 살 어린이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연령도 다양한데, 서울시에서부터 이들을 맡으라고 보내진다고 한다.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 길을 잃은 아이들이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버린 경우도 있고 해외로 떠나면서 버린 경우도 있고, 아무튼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아이들이다. 이 많은 원생들을 돌보기 위해 원장을 비롯한 12명의 젊은 선생들이 있고, 이들을 먹이기 위해 영양사 1명과 조리사 1명이 있단다. 그 조리사가 일주일 내내 밥과 반찬을 해주다가 최근에는 일요일 하루는 쉰다고 한다.

'나비효과’라는 청년은 신이 나 있었다. 세 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한 시 반쯤 나한테 전화를 하면서 어디쯤 오느냐고 성화다. 자기들은 음식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을 보고 있다고 한다. 이 날에는 너무 기분을 냈는가, 식재료비만 30만원이 넘었다. 오늘 오기로 한 회원이 14명은 되니까 그들이 만5천 원씩을 냈는데, 그것으로는 모자란다. 그렇지만, 원생들이 80명에 이르고 봉사단원들도 식사를 해야 하니 이래저래 100명분의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그래서 얼마나 사야 할지가 판단이 안 돼 많이 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시가 조금 넘어 내가 도착하니 처음 만나는 청년이 안경너머로 환한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한다. 자신이 나비효과라고 소개한다. 이미 주방에서는 젊은이 10여 명이 분담을 해서 요리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날의 요리는 크램차우스 스프, 스파게티, 돈까스, 굴전, 맛탕, 약밥, 그리고 과일이다. 요리종목이 많다보니 준비도 꽤나 시간이 걸린다. 내가 맡은 것은 약밥. 미리 준비한 레시피를 펼쳐놓고 여성회원 두 명과 같이 약밥을 만드는 것인데, 먼저 약밥에 부을 약물을 만들어야 한다. 솜씨 좋은 여성회원이 주로 하고 나는 옆에서 바람만 잡았는데, 물엿을 어느 정도 넣어야 나중에 단맛이 적절할지가 가장 고민이었다. 거기다가 대추와 호도, 밤을 넣는데, 이 것들을 모양 좋게 잘 잘라야 한다. 미리 씻어놓은 찹쌀에다가 약물을 적당량 부은 다음 고명을 섞는다. 일단 이렇게 해서 불 위에 올려놓고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나비효과는 나를 시켜먹는 것이 기분이 좋은지 연신 일거리를 찾아서 가져다준다.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 어느 새 여섯시 가까이 되었다. 곧 원생들이 몰려올 터이니 빨리 준비를 마쳐야 한다. 조리가 끝난 음식들은 배식대 위에 늘어놓는데 아이들이 모두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동선도 고려해서 배치를 해보았다. 배식대에 7명이 붙으니 서로 어깨가 닿을 정도이지만 원생들이 들이닥치니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런데 내가 만든 약밥은 인기가 없다. 손사레를 치며 그냥 가려고 해서 때로는 인상도 써 가면서 접시에 배식을 해 주었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스파게티. 양 조절을 잘 못했는지 금방 동이 나서, 다시 삶는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결국 원생들에게 더 주지는 못하고 나중에 봉사자들이 먹게 되었다. 약밥은 두 판을 했는데, 한 판은 고스란히 남겨야 했다. 적당한 양을 계량하는 것이 역시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한 사례다.
원생들에 대한 배식이 다 끝나고 봉사자들이 남은 음식을 나눠먹었다. 그러면서 준비한 요리에 대한 품평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토요일 저녁에 먹는 것으로는 맛탕과 약밥이 너무 강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나비효과는 이 봉사활동은 젊은이들이 요리를 배우는 기회이기도 해서, 어떤 젊은이들은 요리를 배우기 위해 참여한다며 매냥 밥과 김치만을 주는 것은 너무 평범해서 젊은이들의 참여동기를 북돋우려고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요리’를 선택해서 정한다고 설명한다. 어찌 됐든 원생들로서는 늘 먹는 평범한 음식 대신에 새로운 요리를 직접 먹어볼 수 있어서 그들이 아주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접시를 돌려주는 그들의 표정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만족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부모가 없이 자기들끼리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가족처럼 사랑을 나눠준 것이 된다.

식사가 끝나고 주방청소까지 깨끗이 마치자 이래저래 8시 가까이 되어서야 다 끝났다. 이미 밖은 새까만 밤 중. 다같이 언덕을 내려와서 방화역 앞 한 호프집에 둘러앉았다. 피곤하지만, 지친 표정은 아니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는 ID를 확인하고 이런 저런 얘기꽃을 피운다. 대부분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곧 형제와 같은 다정해졌다.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남녀들인데, 서른이 넘는 아가씨들도 많았다. 긴 시간 일을 했는데도 어느 누구하나 힘들어하지 않고 열심히 한 이들을 보니 대견스럽기만 하다. 매번 자기가 돈을 내어 참가하는 것이니까 일정한 수입이 없는 사람들은 마음 같아서는 여러 번 참여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고 한다. “오늘은 내가 쏠게요” 이 말을 듣는 회원들의 표정이 밝아지며 맥주를 주문하는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애프터도 자기들끼리 나눠서 내니까 이래저래 부담이 많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이런 봉사활동이 매주 말 전국 10여 군데에서 계속 열린다. 많은 곳은 10명이 넘지만 보통은 7~ 8명이 참가한다. 인터넷 카페 회원들의 참여도 크게 늘어나 회원이 만 5천 명이 넘었고 그러다 보니 카페를 관리하는 측에서 이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이들의 봉사활동이 알려지면서 신문과 방송에도 소개가 되었고, 경제계에서 식재료비를 조금 도와주기도 한다. 과연 이들의 작은 날개짓이 큰 사랑의 파도로 변하고 있는 것인가? ‘나비효과’라는 이 청년은 확신에 차 있다.

"이처럼 좋은 봉사활동이 어디에 있습니까? 동산님도 해보시니까 어때요? 재미있지 않으세요? 보람도 있고...”

애프터를 마치고 호프집을 나서니까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함박눈 속에 서 본 사람들은 안다. 흰 눈이 얼마나 멋진 축복인지를. 그 날 집으로 오는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또 그들과 헤어지면서 본 그들의 내면의 행복감, 그것은 그냥 하루 하루를 나 혼자만을 위해서 살아온 우리들로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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