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34회 - " 아들아 "

영광도서 0 505
아들아!

이번 미국 대학에서의 불행한 총기사건을 보면서 네 생각이 나는구나. 미국의 그 대학생이 평소 말도 잘 안하고 따돌림을 당하곤 하다가 뭔가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둘러싼 보도인데, 그 미국의 그 아들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더듬어 보면 거기에 아버지인 내가 뭔가 집히는 게 있고 그것이 아들과 연결되는 것 같구나.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간의 대화의 문제다.

그 아버지가 미국에 이민가서 두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혹 부모와 그 청년이 대화를 충분히 못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혹 그 학생이 편향된 관념을 형성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는구나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사실 나도 일을 위해 열심히 살다보니 너희 두 아들과 충분히 대화를 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너희들의 삶에 대해 애비로서 그리 좋은 안내자가 되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짙게 드는 것이란다.

애비가 살아온 연배는, 너희들이 사는 연배와는 분명히 다르다. 우리들은 그 전부터 배고픔과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자식들에게 배를 곯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좋은 집을 마련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겠다는 욕심, 그런 것들이 중첩이 되어 가정보다는 직장을 더 우선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도태되면 안된다는 생각, 남보다 인정받아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마음, 직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윗 선배들의 말은 지상명령처럼 듣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 그런 것들이 가정보다는 가정 바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했구나. 그러지 않아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 들어와야 하는 것이 우리같은 직종인데, 그런 것까지 겹치니 우리, 아니, 나는 사실 그동안 너희들과 대화는 커녕, 같이 잘 놀아보지도 못했구나.

어쩌면 자식들이란 저절로 크는 것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밖에서 술을 마시거나 해도 직장을 잘 헤쳐나가고 돈만 잘 벌어오면 너희들이 아빠의 공을 알고 아빠를 이해하고, 다른 생각않고 바른 길로 갈 줄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이 나 같을까? 그것은 분명 아니고 개인차이가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런저런 핑계로 너희들과 같이 놀고 생각하고 같이 대화하지 못했기에 너희는 평소 아버지라는 종류의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를 몰랐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험한 세상에 너희들이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전혀 내가 너희에게 얘기해 준 것이 없구나.


그래서 막상 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대화를 시도하려 하면 대화가 잘 안된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대화를 시작하면 충분히 잘 듣지도 않고 우선 성질부터 내는 아버지들과 너희가 차분히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래! 우리 아버지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이제야 드는구나.

너희가 사회와 세상에 대한 생각을 형성해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실 많은 대화를 해야 했지만, 그 때가 나에게는, 핑계같지만, 가장 바쁜 때였다. 너희도 청소년기를 그저 학교에서 지식, 암기교육만을 받느라 다 보냈고, 그러다 보니 너희들도 사는 것이 피곤하고 재미도 없어서, 그것이 너희들을 전자오락게임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들이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밤 늦게 들어와서 너희들을 깨워놓고 상담을 하거나 나의 경험담을 얘기해주기가 어려웠구나. 그렇게 해서 너희들이 세상을 보는 눈은, 우리 아버지들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지만 네가 그런 어려움을 잘못된 쪽으로 분출하지 않고 잘 삭여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군대에 가서 장교수업까지 받고 있으니 나로서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아니 내가 얼굴이 부끄러워 지는구나.

그런데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고, 너에게는 조금 전에 고맙다는 표현을 했는데, 너희들도 아버지에 대해서 조금 이해해 줄 측면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구나. 기본적으로는 우리의 책임이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게끔 한 측면도 없지 않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너희 할아버지 연배만 해도 우리처럼 바쁘지는 않았단다. 그런데 아빠가 너희를 키우던 80년대, 90년대는 너무나 우리 사회의 변화가 커서 그 변화를 맞추어 가느라 우리 아버지들이 온갖 진땀을 다 흘렸다. 그러다 보니 사실, 예전보다는 가정에 신경을 온통 쓰기가 어려웠다는, 변명아닌 변명을 너희들이 조금은 들어주었으면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면피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도 곧 사회에 나가면 아버지들이 처한 환경을 곧 몸으로 경험하게 될 터인데, 너희들은 너희 자식들을 키우면서 다시 우리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회분위기, 회사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서 예전처럼 일찍 귀가하는 사람들을 무슨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보는 그런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어떠한 상황이 되더라도 자식과의 스킨십과 대화를 많이 함으로써, 요즈음 애비가 느끼는 후회를 너희들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느라 우리 아버지들이 너희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데 비해서 우리 아들들은 훨씬 잘 하고 있지만, 너희들도 너희 자식들이 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아버지와 자식이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요한 사실을 우리 아버지들은 이제야 깨닫는구나.

그래! 우리가 잘못한 것을 변명하거나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생각은 없다. 잘못에 대한 비평과 그에 따른 채찍은 우리가 받으마. 대신 너희들도, 혹 자라서 사회인이 되어 우리처럼 어려운 상황이 되더라도 자식을 늘 생각하되, 같이 살을 비비고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너희의 삶도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이번 미국의 총기사고를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괴로웠던 것은, 그 사건을 저지른 청년이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혹 그런 사고의 먼 원인에 우리 한국인 아버지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작용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혹 그 집안도, 물론 대화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부모와 자식간에 더 많은 대화가 있었고, 자식의 어려움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일찍 모색했더라면 사전에 예방이 가능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로지 " 직장에서의 성공이 가정에서의 성공이다"라고 생각해 온, 그래서 가정에 일찍 들어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문화를 키워온 우리 한국의 남성 가장들에게 혹시 공범의 책임이 일부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괴로웠던 것이다.

누가 그러더구나. 세상의 남자들 중 30%는 아버지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으며, 30%는 아버지와 껄끄럽고 힘든 관계라고.. 나머지 30%는 잘 지내는 편이지만 가끔 전화하거나 가족모임에 참석하는 정도이고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는 아들은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는단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사이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아버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너희들은, 못난 우리들을 타산지석으로 잘 보고, 너희들만큼은 앞으로 태어날 너희 자식들과 많은 대화가 있기를 당부하면서 어설픈 사과의 편지를 마치려고 한다.


참고글)
이 세상은 남자가 지배한다.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학습돼 왔다. 세계의 정치지도자와 경제리더 대부분이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자랑(!)스럽다. 그러나 그런 남자들은 전혀 딴판의 뒷모습을 갖고 있다. 폭력사건 범인의 90% 이상은 남자들이다. 연쇄살인범과 총기난사 사건 범인, 감옥에 수감된 죄수 중 90% 이상이 남자들이다. 스캔들과 부패 정치인, 전범(戰犯)과 테러리스트도 거의 모두 남자들이다. 학교에서 행동장애를 가진 어린이 중 90%가 남자 아이들이며, 학습장애를 가진 어린아이 중 80%가 남자아이들이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미숙하다. 이혼하는 부부 5쌍 중 4쌍은 여자가 이혼을 요구한다. 남자는 늘 이혼당한다. 남자들끼리는 술(약물)의 도움 없이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남자의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 중 70%는 남자들이다. 생존율과 행복지수 같은 통계에서도 남자의 현실은 우울하다. 남자는 여자보다 자살률이 4배나 높다. 12세에서 60세까지 남자의 사망원인 중 가장 큰 비율은 자살이 차지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평균수명이 6년 정도 짧다.

남자! 이쯤 되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족속은 이 남자라는 동물 아닌가. 도대체 남자들은 왜 이 모양일까. 타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25년간 가족문제를 연구한 호주의 심리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비덜프(Steve Biddulph)는 제대로 된 남자가 되지 못하는 까닭은 남자가 되는 교육과 훈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남자들이 정신적으로 행복해지고 건강해지면 남자들의 폭력과 욕심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소년이 제대로 된 남자로 자라지 못하는 까닭은 아버지와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론은 “남자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어떤 점에서는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현대를 ‘아버지 부재(不在)의 시대’로 진단한다. 농경시대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들과 마을 어르신들이 아들들을 가르쳤다. 산업혁명 이후 세상은 달라졌다. 아버지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직장에 돈을 벌러 나간다. 아버지는 ‘걸어 다니는 지갑(walking wallet)’일 뿐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남자들은 자기 마을, 자기 농장에서 아내와 자녀들과 일하지 않고, 공장이나 광산에서 따로 떨어져 일하게 되었다.”
출처: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 -원제 ‘Manhood’> 스티브 비덜프 지음|박미낭 옮김|젠북|360쪽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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