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36회 - " 애비 "

영광도서 0 463
요즈음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에 대한 조명이 활발해지면서 그의 위대한 학자로서의 면모 외에도 인간적인 모습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2천 5백여 수에 이르는 방대한 한시들이다. 그의 한시들은, 당시 지식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든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한시가 가장 유력한 방법이어서 그런 것이지만, 그런 틀을 벗어나서 본다면 그냥 내면의 진솔한 기록이 대부분이다.

다산은 당쟁의 희생양이 되어 마흔 살에서부터 57살까지 무려 18년 동안(1801~1818) 귀양생활을 했는데, 고단한 귀양살이에도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열성적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데 몰두해서 역사에 남는 저작들을 완성하는 것이다.

유배지인 강진으로 멀리 남양주에서 밤이 배달되어 왔다. 말이 배달이지, 오늘날처럼 우편제도나 화물운송체계가 없는 당시로서는, 아마도 강진으로 오는 인편을 찾거나 아니면 사람을 따로 사서 보내야 하는 것인데, 밤만 온 것을 보면 인편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가족과 떨어져서 외로운 곳에서 다시 명절을 맞은 다산은 가족, 특히 자식 이름으로 보내 온 밤 꾸러미를 보고 감격해서 그 감격을 한시로 남긴다.

자식이 밤을 부쳐오다(穉子寄栗至)

도연명 자식보다 나은 편이구나
아비에게 밤 부쳐온 걸 보니
따지면 한 주머니 하찮은 것이지만
천리 밖 배고픔을 생각해서 한 짓이지
아비 생각 잊지 않은 그 마음이 예쁘고
봉지네 놓을 때의 그 손놀림이 아른거리는구나
먹으려 하니 되레 마음에 걸려
물끄러미 먼 하늘을 바라다 보네

頗勝淵明子 / 能將栗寄翁 / 一囊分瑣細 / 千里慰飢窮
眷係憐心曲 / 封緘憶手功 / 欲嘗還不樂 /惆悵視長空

어린 아들이 보내 준 몇 알의 밤을 먹으려다 울컥 눈물이 앞을 가려 먹지도 못하는 애비의 심사가 이 짧은 한시에 듬뿍 담겨 있다(도연명의 아들은 아홉살이 되어서도 배와 밤을 먹겠다고 칭얼대었다고 한다. 그보다는 훨씬 좋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자식의 선물에 감동하는 마음이 어찌 다산뿐이랴. 자식을 외지로 보내고 쓸쓸히 고향을 지키는 우리네 부모 모두가 다 자식이 보내주는 손톱만한 선물이라도 감동을 하고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선물을 받아서가 아니라 실상은 애들로부터의 소식이 그리운 것이리라. 이런 마음을 예전에는 몰랐으되, 두 아들이 군대에 가 있다 보니, 명절이라고 떡이라도 먹을 수 있는지, 일은 너무 고되지 않은지 공연히 걱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아들딸들 생각에다가 손자손녀들 생각까지 하느라고 얼마나 속이 쓰리고 걱정이 많으실까? 요즈음처럼 길 좋고 차 좋아 맘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다녀올 길이건만 이런 저런 이유로 고향을 가는 것은 고사하고 연락드리는 것조차 미루어 온 우리들에게 부모님은 한 번도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으시지 않는가?. 다산의 시 한편을 접하고 나서 자식 때문에 내가 마음 쓰는 것은 힘들고, 부모의 마음씀씀이에는 애써 눈을 감는 자신의 모습이 이 푸른 하늘에 오버랩되어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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