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37회 - " 장수 "

영광도서 0 581
최근 독살설 여부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조선왕조 22대 군주 정조는 일찍이 옛 시를 읽다가 백 세를 산 노인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보게 된다. 나이가 각각 백여 세나 되는 밭두둑 위의 세 노인들이 함께 김을 매면서 서로 그렇게까지 수(壽)를 누리게 된 까닭을 묻는 장면이다. 그 비결을 표현한 시구에는,

“첫째 노인이 나와 대답하기를, 우리 집 마누라 박색이라오.
다음 노인 나와 대답하기를, 저녁 일찍 자리 들되 머리는 내놓지요.
셋째 노인 나와 대답하기를, 음식 먹기 절제하여 배 채우지 않았지요.
[上叟前致辭 室內姬粗醜 二叟前致辭 暮臥不覆首 三叟前致辭 量腹節所受]”


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세 노인 중 한 분은 여색을 멀리함으로써 정기(精氣)를 굳힐 수 있었고, 한 분은 섭생을 잘 함으로써 나이를 늘릴 수 있었으며, 또 한 분은 음식을 절제함으로써 병을 없앨 수 있었다는 것인데, 정조는 이 세 노인의 말이 마음에 들어 이 말을 벽에 적어놓고 늘 쳐다보곤 했다고 한다.

사람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은 모든 이들의 소망이다. 여기에는 왕후장상이든, 빈천한 시정잡배든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최근 자주 인용되는 개혁군주 정조도 그런 장수법에 관심이 있었다. 정조가 규장각 관원들과 주고받은 내용을 기록한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는 위의 내용에 이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대저 마음과 호흡이 서로 의지하게 하려면 불[火] 기운을 내려가게 하고 물[水] 기운을 올라오게 해야 한다고 한 것은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이다. 매양 취침하기 전에 두 발바닥의 가운데를 마주 문질러 비비면 기운이 저절로 퍼진다. 내가 밤마다 시험해 보았는데, 처음에는 힘이 드는 듯했으나 오래도록 계속했더니 신통한 효험이 있었다. 접때 듣자하니,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의 후손인 유명위(柳明渭)도 이 방법을 쓴다고 했다.

이런 건강법가운데 특이한 것은 머리를 자주 빗으라는 것이다. 조선의 군주가운데 어쩌면 가장 독똑했던 정조는 여기에 관해서도 보고 들은 바를 말해준다;

젊었을 적에 ‘매일 빗질을 하라’고 권한 사람이 있었는데, 근년에 들어서 비로소 빗질을 하기 시작했더니, 머리와 시력이 맑고 시원해졌으며 잠이 저절로 왔다. 섭생가(攝生家)들이 머리를 빗질하는 것은 언제나 매일 120번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어떤 이는 말하기를, “머리 빗기를 매일 천 번씩 하면 머리칼이 세어지지 않는다.” 한다. 또 《황정경(黃庭經)》에 이르기를, “머리칼은 응당 많이 빗어야 한다.”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 가운데 매일 빗질할 수 있는 이가 드문 것은 바로 일찍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머리빗기가 현대에는 불가능하지만 머리를 자주 감아주거나 머리의 모근(毛根)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마찰해주면 같은 효과가 나지 않겠는가?

이보다 앞선 14대 선조 때 대제학을 지난 택당(澤堂) 이식(李植)도 옛 사람들의 수련법 가운데 후손들에게 권장할만한 것을 골라놓았는데,

우선 새벽에 일어나 몸 속에 있는 탁한 공기를 내뱉고 코로 새 공기를 들이마시기를 세 번씩 한 다음 아래윗니를 서로 맞부딪기를 26번 정도 하고, 다음으로는 눈두덩을 엄지손가락으로 27번 문지르고, 엄지와 검지를 가지고 콧등을 대여섯 번 문지른다. 다음엔 귓바퀴 안팎을 몇 번 문지르고 나서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질러 더운 기운이 나도록 한다

이러한 이식(李植)의 건강법이 실려 있는 홍만종(洪萬宗:1643~1725)의 책《순오지(旬五志)》에는 이어서 조식법(調息法)이라는 호흡운동법을 소개한 뒤에 탄진법(呑津法)을 그 다음에 알려주고 있다. 탄진법은 혓바닥 위에서 생기는 침을 씹어서 삼키는 것인데, 침을 혓바닥 위에 생기게 하는 방법은 혀를 구부려서 움직이기만 하면 저절로 침이 생기니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 이 법을 한동안 계속해서 몸에 배도록 하면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가 없고 또한 배가 고프거나 피로할 때에도 힘을 낼 수가 있다고 한다.

이제 온 산하에 봄 기운이 가득하다. 기상대는 겨울이 이미 보름 쯤 전에 갔다고 말해준다. 이런 좋은 때에는 이불을 박차고 일찍 일어나 선조들의 건강, 양생법을 시험 삼아 헤 볼 일이다. 가만히 보니 그리 힘든 것은 하나도 없다. 호흡운동이라고 하면 잡념을 버리고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뿜으면서 해야 하는 관계로 번잡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쉽지 않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숨쉬기와 아래 윗니 맞부딪기, 눈두덩이 문지르기, 귓바퀴 문지르기 등이야 무슨 힘이 들겠는가? 그리고 때때로 손가락 끝으로 머리뿌리를 문질러 주면 혈액순환을 촉진해서 머리에 몰린 노폐물도 씻어주고 기운도 좋아지게 할 터인즉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집안의 부모님께도 권해볼 일이다. 이런 좋은 시절에 자기 몸과 건강을 키우는 것 외에 관심 둘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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