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39회 - " 그렇게 좋다면 "

영광도서 0 544
“선거가 다가오면 한국의 정치인들은 범상치 않은 조치를 취한다고 하네요. 뭘까요?”

라는 퀴즈가 미국에 등장했다고 오늘 아침 미국에서 어느 특파원이 전한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에 이런 퀴즈가 등장했다는 것인데, 퀴즈의 답은 ‘조상의 묘를 옮긴다’ 였다고 한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조상의 음덕을 차지하기 위해 조상의 묘를 옮기는 현상이 드디어는 전 세계의 화제로 올라선 것이다.

정기가 충만한 좋은 땅을 찾아 조상의 유해를 모시거나 집을 짓고 살면 그 정기에 감응되어 가문이 흥성한다는 풍수설은 진시황의 진나라 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기》에 보면 장군 몽염(蒙恬)이 장차 죽을 때 탄식하기를, “염(恬)의 허물이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 임조(臨?)에서 요동(遼東)에 이르기까지의 만여 리에 걸쳐 성ㆍ참(城塹)을 구축(構築)했으니, 그 가운데 어찌 지맥(地脈)을 끊은 일이 없었겠는가? 이는 염의 죄악이다.”라고 하였다는 데서, 지맥의 개념이 벌써 등장하고 있다.

이 때에 주선도(朱仙桃)라는 사람이 『삽산기揷山記』라는 책에 명당(明堂)을 찾는 비법(秘法)을 써 놓았는데 신통하게 적중하므로 황실 내에서만 전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청오경(靑烏經)이라 하는 최초의 풍수지리설의 이론서이다. 그 후에 한(漢)나라의 장자방(張子房)이 청랑정경(靑囊正經)을 만들고 진(晉)나라의 곽박(郭璞)이 장경(葬經)을 만들어 풍수지리설을 완전히 체계화하였는데, 초기에는 황실 내에서만 유전되다가 당(唐)나라 이후에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신라 말기 도선과 조선조 초기 무학대사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유독 돌아가신 조상의 묘를 쓰는 것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는데, 그러다 보니 조선시대에는 우리가 요즈음 말하는 지관(地官)인 지사(地師)들에 의한 피해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찍이 판서 박기수(朴岐壽)가 수 만 금을 써서 한 지관을 통해 묏자리 터를 잡았는데, 또 한 지관이 한 문객(門客)을 끼고 와서 재주를 자랑하려고 온갖 말을 하는 바람에 좌향(坐向)을 고쳐 장례를 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 박 판서가 대부분 낭패를 당하였으므로 한없이 탄식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이 쓴『임하필기 林下筆記』에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풍수설과 지관의 장난에 대해 가장 열심히 반대한 사람은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풍수론’이란 글에서 지관들에게 이렇게 화살을 돌린다.


이른바 길지(吉地)라고 하는 것은, 위로는 부모의 시체와 혼백을 편안하게 하고 아래로는 자손들이 복록(福祿)을 받아 후손을 번창하게 하고 재물이 풍족하게 함은 물론, 혹 수십 세대토록 그 음덕(陰德)이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천하에 더없이 큰 보배이다. 따라서 천만 금의 보옥(寶玉)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지사(地師:지관)가 이미 이런 큰 보배 덩어리를 얻었다면, 어째서 자기의 부모를 그곳에다 몰래 장사지내지 않고 도리어 빨리 경상(卿相)의 집으로 달려가서 이를 바친단 말인가.... 이것이 내가 깊이 믿을 수 없는 점이다.

어떤 지사가 손바닥을 치면서 자기가 잡아준 길지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산줄기의 기복은 용과 호랑이가 일어나 덮치는 듯한 형세이고 감싼 산줄기는 난새와 봉황이 춤추는 모습이다. 인시(寅時)에 장사지내면 묘시(卯時)에 발복(發福)하여 아들은 경상(卿相)이 되고 손자는 후백(侯伯)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야말로 천리(千里)에 한 자리 있을까말까 한 길지이다."

나는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 그렇게 좋은 자리이면, 어째서 너의 어미를 장사지내지 않고 남에게 주었느냐?"

그래, 그 좋은 자리가 있다면 마땅히 몰래 자신의 조상을 묻을 것이지 왜 돈 많은 재력가나 유력정치인에게만 가서 묘지를 이장하라고 말할까? 다산은 결정적으로 풍수설을 완성한 곽박과 우리나라 풍수설의 대가인 도선과 무학의 사례를 들어 이 학설이 요망하다고 말해준다;

곽박(郭璞)은 죄 없이 참형(斬刑)을 당한 뒤 시체는 물속에 던져졌으며, 도선(道詵)과 무학(無學) 등은 모두 중이 되어 자신의 종사(宗祀)를 끊었으며, 이의신(李義信)과 담종(湛宗)은 일점의 혈육도 없다. 지금도 이런 자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일생토록 빌어먹고 사는가 하면 자손들도 번창하지 못한다. 이것은 무슨 이치인가. 지사(地師)의 아들이나 손자로서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나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가 된 사람을 몇 명이나 볼 수 있는가.

사람의 마음은 다 같은 것이다. 내 땅에 발복(發福)될 수 있는 묘지가 있는 것을 알았는데, 이를 한 꿰미의 돈 때문에 눈이 어두워 남에게 선뜻 내어줄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재상(宰相)으로서 풍수술(風水術)에 빠져 여러 번 부모의 묘를 옮긴 사람치고 자손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사서인(士庶人)으로서 풍수술에 빠져 여러 번 부모의 묘를 옮긴 사람치고 괴한 재앙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아직도 풍수설이 살아있는 우리 사회, 물론 그 말을 다 믿지는 않는다고 해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조상의 묘소를 이른바 좋은 자리에 옮기는 것으로서 대통령이 된다면 누구든 정치적인 식견과 경륜을 키우고 선거공약을 개발하는 것 대신에 길지를 찾고 묘소이장부터 할 일이다. 그런데 이미 돌아가신 조상의 입장에서는 자꾸 누우신 자리를 옮기는 것이 귀찮기만 하지 그리 달가울 일이 없다. 그러니 자리를 옮기는 후손을 잘 도와드릴 마음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용히 누워계시도록 효도를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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