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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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제13회 - " 소나무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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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4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소나무와의 추억을 한 두 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문경의 주흘산 동쪽 자락에서 자란 필자도 그런 추억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집 바로 뒤 산자락에 자라고 있던 소나무들과 놀던 기억이다. 초등학생이던 1960년대 전반, 집 바로 뒤에는 30~40년생의 소나무들이 굵은 허리를 드러내며 마을을 둘러싸고 자라고 있었기에 그 소나무들을 술래잡이의 기준목으로 삼거나 그 허리를 잡고 올라가는 놀이(한 번도 나무 위로 올라가는데 성공한 적은 없지만) 등으로 시간을 보내었고 그 소나무 기둥에 기대어 마침 그 앞에 만들어진 묘에서 봄 가을에 펼쳐지는 어느 집의 시사를 구경하다가 시사가 끝난 뒤에 나눠주는 떡이랑 음식을 받아먹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과자 같은 주점부리가 마땅치 않은 당시 봄에는 공연히 남들을 따라 낫으로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껍질을 입으로 씹어보기도 하였는데, 약간의 단 맛이 약하게 있기는 하지만 별로 그리 기분 좋은 맛은 아니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 소나무들은 친척이 있는 아랫마을에도, 외가가 있는 그 아랫동네에도 동네 집 뒤로 길이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어느 땐가 고향에 갔더니 그 소나무들이 모두 없어진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어른들에게 물어보니 소나무가 병이 많아 모두 베어냈단다.
그 때의 그 아쉬움과 허전함이란 마치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서울에서 다니고 서울에서 생활한 지 어언 40년이 되어가지만 고향에서 친구처럼 친했던 소나무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다. 그러기에 봄 가을 소풍으로 어디 고궁이나 혹 왕릉 같은 데를 가면 소나무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특히 경주에 여행을 갈라치면 삼릉지구를 비롯해 곳곳에 소나무가 많아서 정말 고향에 다시 온 듯한 기분이었고, 몇 년 전 삼릉지구에 작업실을 짓고 대형 유리창을 통해 소나무들을 내다볼 수 있게 한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 선생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마치 시샘 많은 어린이처럼 나도 언제 이런 집을 가져보나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소나무를 가까이하면서 친구처럼 스승처럼 생각한 사람이 한국에서 어디 나 혼자뿐이랴? 한국 사람이라면 열이면 열 모두가 소나무를 그처럼 좋게 생각을 하고 있음에랴. 애국가 또는 국가에 나무이름이 들어간 나라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실의에 빠져 좌절했을 때 바위벼랑을 뚫고 내린 소나무 뿌리에 용기를 얻은 사람이 어찌 초의선사(草衣禪師) 한 분이겠으며, 바람이나 이슬에도 불변하는 그 기개를 스스로의 지조로 삼은 이가 어찌 성삼문(成三問) 한 분 뿐이겠는가. 고려 때 문장 이인로(李仁老)가 옥당(翰林院)에 서 있는 소나무를 향해서 일갈하기를 “너같이 허리가 구부정하고 푸른 수염 난 자가 어찌 이 신선부에 들어와 있느냐?”라고 했더니 그 소나무가 대꾸하기를 “내가 비록 비틀어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나 빙설 같은 맑은 기개가 선생의 지조를 깔보며, 풍우를 마다않고 이겨낸 억지는 선생의 외고집을 손가락질하며, 천년을 지나도 무성함은 선생의 지친 여생을 비웃는 도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는 데서 보듯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기개라고 하면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인물 중에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이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광해군 때 왕비 유씨(柳氏)의 아우 유희분 등 척족들의 전횡을 비판한 궁류시(宮柳詩)를 지은 죄로 귀양을 가다가 죽은 이 사람도 소나무에 대해서 각별한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한자를 한 자부터 두 자 석 자 등으로 열 자까지 늘여 두 줄로 배치한 한시를 지었는데,
松(송) : 소나무는
松(송) : 소나무는
傲雪(오설) : 눈을 우습게 보고
凌冬(릉동) : 겨울을 능멸한다
白雲宿(백운숙) : 하얀 구름을 잠재우고
蒼苔封(창태봉) : 푸른 이끼도 봉했구나
夏花風暖(하화풍난) : 여름 꽃에 바람이 따뜻하고
秋葉霜濃(추엽상농) : 가을 잎에 서리가 짙어진다
直幹聳丹壑(직간용단학) : 곧은 가지 붉은 골짜기에 솟아있고
淸輝連碧峯(청휘련벽봉) : 맑은 빛이 푸른 봉우리에 닿아있다
影落空壇曉月(영락공단효월) : 그림자 떨어진 빈 제단에는 새벽달
聲搖遠寺殘鐘(성요원사잔종) : 소리는 흔들리고 먼 절간에는 종소리
枝翻涼露驚眠鶴(지번량로경면학) : 가지가 뒤집혀 찬 이슬에 자던 학 놀라날고
根揷重泉近蟄龍(근삽중천근칩룡) : 뿌리는 뻗어서 깊은 샘에 서린 용 다가간다
初平服食而鍊仙骨(초평복식이련선골) : 초평을 복용하여 먹으며 신선을 익히고
元亮盤桓兮盪塵胸(원량반환혜탕진흉) : 원량을 서성이며 속세의 가슴을 씻는다
不必要對阮生論絶品(불필요대완생론절품) : 완적이 뛰어난 작품 논한 것 볼 필요 없고
何須更令韋偃畫奇容(하수경령위언화기용) : 위언이 기이한 용모 어찌 다시 그리게 하랴
乃知獨也靑靑受命於地(내지독야청청수명어지) : 땅의 명을 받아 푸름이 혼자임을 알았으니
匪爾後凋之姿吾誰適從(비이후조지자오수적종) : 너 아니면 절개 지키는 자세를 누굴 따르랴
라고 하였다. 이 시의 요점은 역시 마지막 행, 독야청청하는 소나무의 절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나무들이 이제는 우리들 옆으로 다가오고 있다. 서울의 새로 짓는 아파트나 관공서 건물, 사무실 건물들 앞에 조경을 하면서 소나무를 많이 심는 것이다. 10년 전쯤 여의도에 광장이 조성될 때에 등장한 소나무들이 바람을 일으켰는지 곳곳에 소나무들이 들어서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준공 된지 4년이 넘었는데, 정원을 조성하면서 심은 소나무들이 제법 높이 자라고 있어 아침 저녁 산책길에 좋은 친구가 되어 우리를 맞이한다.
그런데 산들을 자주 오르다보면 소나무들이 갈색으로 시들어가는 모습도 느끼게 된다. 우리 아파트도 몇 십 그루가 말라 죽어 새로 식재를 하기도 하는데, 활착률이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그 병명은 '피목가지마름병'이란다. 지난 1996년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소나무 에이즈라고 하는 재선충 병이 도져 이 병을 막느라 일정 발병구역의 소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려야 하는 가슴 아픈 일도 많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소나무는 추위 속에 잘 자라는 이 침엽수인데, 지구 표면 온도가 올라가고 겨울에도 추위가 사라지고 더워지면서 소나무들이 기진맥진하고 대신 더위 속에 잘 자라는 활엽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환경정책연구원에서 지난 2002년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반도의 식생변화 예상도를 작성·발표했는데, 앞으로 100년 뒤인 2100년에는 한반도의 기온이 1990년보다 2.08도 올라 소나무는 10분의 1로 줄어 태백산·지리산 그리고 설악산 극히 일부 지역에 조금 남아서 자랄 뿐, 남한 전역에서 소멸될 것으로 예상한 적이 있다.
과연 그것이 사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야 되겠는가? 한국 사람들은 그런 불길한 생각을 애써 지우려 하지만 우리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지는 만큼 소나무가 죽기도 한다. 소나무 예찬론자들은 한국에서 소나무의 소멸을 한국이나 한국인의 정체성 소멸로 직결시키기도 하는데, 그렇게까지 볼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리 유쾌한 소식은 아니다.
소나무는 한자로는 松(송)자를 쓰는데 이 자의 오른쪽 公(공)은 이 나무가 모든 나무의 윗자리에 선다는 것을 뜻한단다. 진시황제가 길을 가다가 소나무를 만났는데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에 되자 보답의 뜻으로 '목공(木公)'이라 하였고 이 두 글자가 합쳐져서 '松'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며 명나라 때에 나온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어른(長)이다"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소나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말에서는 소나무, 또는 솔이라는 말이 있는데, '솔'은 '으뜸'이나 '우두머리'를 뜻하며 나무 중에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수리',‘술’이라고 부르다가 '술'에서 '솔'로 변천하고 솔나무에서 'ㄹ'이 탈락하여 소나무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아파트에 소나무가 들어서면서 굳이 먼 산에 가지 않고도 아파트 정원에 나가 의자에라도 앉으면 시원한 바람에 솔잎이 바람을 가르는 풍입송(風入松) 소리로 마음을 재울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 나무 중의 으뜸으로 숭앙받는 소나무를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을 반가워하면서도 변화하는 기후 속에 소나무가 자연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적절한 보호대책을 정부가 게을리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도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어느 땐가 고향에 갔더니 그 소나무들이 모두 없어진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어른들에게 물어보니 소나무가 병이 많아 모두 베어냈단다.
그 때의 그 아쉬움과 허전함이란 마치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서울에서 다니고 서울에서 생활한 지 어언 40년이 되어가지만 고향에서 친구처럼 친했던 소나무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다. 그러기에 봄 가을 소풍으로 어디 고궁이나 혹 왕릉 같은 데를 가면 소나무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특히 경주에 여행을 갈라치면 삼릉지구를 비롯해 곳곳에 소나무가 많아서 정말 고향에 다시 온 듯한 기분이었고, 몇 년 전 삼릉지구에 작업실을 짓고 대형 유리창을 통해 소나무들을 내다볼 수 있게 한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 선생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마치 시샘 많은 어린이처럼 나도 언제 이런 집을 가져보나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소나무를 가까이하면서 친구처럼 스승처럼 생각한 사람이 한국에서 어디 나 혼자뿐이랴? 한국 사람이라면 열이면 열 모두가 소나무를 그처럼 좋게 생각을 하고 있음에랴. 애국가 또는 국가에 나무이름이 들어간 나라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실의에 빠져 좌절했을 때 바위벼랑을 뚫고 내린 소나무 뿌리에 용기를 얻은 사람이 어찌 초의선사(草衣禪師) 한 분이겠으며, 바람이나 이슬에도 불변하는 그 기개를 스스로의 지조로 삼은 이가 어찌 성삼문(成三問) 한 분 뿐이겠는가. 고려 때 문장 이인로(李仁老)가 옥당(翰林院)에 서 있는 소나무를 향해서 일갈하기를 “너같이 허리가 구부정하고 푸른 수염 난 자가 어찌 이 신선부에 들어와 있느냐?”라고 했더니 그 소나무가 대꾸하기를 “내가 비록 비틀어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나 빙설 같은 맑은 기개가 선생의 지조를 깔보며, 풍우를 마다않고 이겨낸 억지는 선생의 외고집을 손가락질하며, 천년을 지나도 무성함은 선생의 지친 여생을 비웃는 도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는 데서 보듯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기개라고 하면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인물 중에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이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광해군 때 왕비 유씨(柳氏)의 아우 유희분 등 척족들의 전횡을 비판한 궁류시(宮柳詩)를 지은 죄로 귀양을 가다가 죽은 이 사람도 소나무에 대해서 각별한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한자를 한 자부터 두 자 석 자 등으로 열 자까지 늘여 두 줄로 배치한 한시를 지었는데,
松(송) : 소나무는
松(송) : 소나무는
傲雪(오설) : 눈을 우습게 보고
凌冬(릉동) : 겨울을 능멸한다
白雲宿(백운숙) : 하얀 구름을 잠재우고
蒼苔封(창태봉) : 푸른 이끼도 봉했구나
夏花風暖(하화풍난) : 여름 꽃에 바람이 따뜻하고
秋葉霜濃(추엽상농) : 가을 잎에 서리가 짙어진다
直幹聳丹壑(직간용단학) : 곧은 가지 붉은 골짜기에 솟아있고
淸輝連碧峯(청휘련벽봉) : 맑은 빛이 푸른 봉우리에 닿아있다
影落空壇曉月(영락공단효월) : 그림자 떨어진 빈 제단에는 새벽달
聲搖遠寺殘鐘(성요원사잔종) : 소리는 흔들리고 먼 절간에는 종소리
枝翻涼露驚眠鶴(지번량로경면학) : 가지가 뒤집혀 찬 이슬에 자던 학 놀라날고
根揷重泉近蟄龍(근삽중천근칩룡) : 뿌리는 뻗어서 깊은 샘에 서린 용 다가간다
初平服食而鍊仙骨(초평복식이련선골) : 초평을 복용하여 먹으며 신선을 익히고
元亮盤桓兮盪塵胸(원량반환혜탕진흉) : 원량을 서성이며 속세의 가슴을 씻는다
不必要對阮生論絶品(불필요대완생론절품) : 완적이 뛰어난 작품 논한 것 볼 필요 없고
何須更令韋偃畫奇容(하수경령위언화기용) : 위언이 기이한 용모 어찌 다시 그리게 하랴
乃知獨也靑靑受命於地(내지독야청청수명어지) : 땅의 명을 받아 푸름이 혼자임을 알았으니
匪爾後凋之姿吾誰適從(비이후조지자오수적종) : 너 아니면 절개 지키는 자세를 누굴 따르랴
라고 하였다. 이 시의 요점은 역시 마지막 행, 독야청청하는 소나무의 절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나무들이 이제는 우리들 옆으로 다가오고 있다. 서울의 새로 짓는 아파트나 관공서 건물, 사무실 건물들 앞에 조경을 하면서 소나무를 많이 심는 것이다. 10년 전쯤 여의도에 광장이 조성될 때에 등장한 소나무들이 바람을 일으켰는지 곳곳에 소나무들이 들어서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준공 된지 4년이 넘었는데, 정원을 조성하면서 심은 소나무들이 제법 높이 자라고 있어 아침 저녁 산책길에 좋은 친구가 되어 우리를 맞이한다.
그런데 산들을 자주 오르다보면 소나무들이 갈색으로 시들어가는 모습도 느끼게 된다. 우리 아파트도 몇 십 그루가 말라 죽어 새로 식재를 하기도 하는데, 활착률이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그 병명은 '피목가지마름병'이란다. 지난 1996년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소나무 에이즈라고 하는 재선충 병이 도져 이 병을 막느라 일정 발병구역의 소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려야 하는 가슴 아픈 일도 많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소나무는 추위 속에 잘 자라는 이 침엽수인데, 지구 표면 온도가 올라가고 겨울에도 추위가 사라지고 더워지면서 소나무들이 기진맥진하고 대신 더위 속에 잘 자라는 활엽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환경정책연구원에서 지난 2002년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반도의 식생변화 예상도를 작성·발표했는데, 앞으로 100년 뒤인 2100년에는 한반도의 기온이 1990년보다 2.08도 올라 소나무는 10분의 1로 줄어 태백산·지리산 그리고 설악산 극히 일부 지역에 조금 남아서 자랄 뿐, 남한 전역에서 소멸될 것으로 예상한 적이 있다.
과연 그것이 사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야 되겠는가? 한국 사람들은 그런 불길한 생각을 애써 지우려 하지만 우리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지는 만큼 소나무가 죽기도 한다. 소나무 예찬론자들은 한국에서 소나무의 소멸을 한국이나 한국인의 정체성 소멸로 직결시키기도 하는데, 그렇게까지 볼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리 유쾌한 소식은 아니다.
소나무는 한자로는 松(송)자를 쓰는데 이 자의 오른쪽 公(공)은 이 나무가 모든 나무의 윗자리에 선다는 것을 뜻한단다. 진시황제가 길을 가다가 소나무를 만났는데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에 되자 보답의 뜻으로 '목공(木公)'이라 하였고 이 두 글자가 합쳐져서 '松'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며 명나라 때에 나온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어른(長)이다"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소나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말에서는 소나무, 또는 솔이라는 말이 있는데, '솔'은 '으뜸'이나 '우두머리'를 뜻하며 나무 중에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수리',‘술’이라고 부르다가 '술'에서 '솔'로 변천하고 솔나무에서 'ㄹ'이 탈락하여 소나무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아파트에 소나무가 들어서면서 굳이 먼 산에 가지 않고도 아파트 정원에 나가 의자에라도 앉으면 시원한 바람에 솔잎이 바람을 가르는 풍입송(風入松) 소리로 마음을 재울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 나무 중의 으뜸으로 숭앙받는 소나무를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을 반가워하면서도 변화하는 기후 속에 소나무가 자연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적절한 보호대책을 정부가 게을리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