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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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제15회 - " 봄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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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4
안개가 끼었다고는 하지만 희뿌연 하늘에 둘러싸여 숨이 팍팍 막히는 듯한 시계 속에서 건물과 사람들을 보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더구나 늘 바다로부터 상큼한 공기가 바람에 실려 코끝으로 다가오는 부산이란 곳에서부터 본사에서 열리는 회의 참석을 위해 부산에서부터 서울 여의도로 막 올라온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지구온난화라는 것 때문에 다소 고개를 숙인 추위로 겨울같지 않은 겨울을 보낸 서울의 여의도는 지금 봄의 그 도톰한 지갑을 막 열듯이 준비가 한창인 것을 나도 알겠다.
사실 봄이란 속이 꽉 찬 지갑이 아닐까? 겨울은 아무리 따뜻하다고 해도 역시 춥고 쓸쓸하고 배고프다. 그것은 역시 텅 빈 지갑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시대가 좋아져서 겨울이 예전 겨울 같지 않다고 말들을 많이 하더라도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시내버스를 내려 이마를 째는 듯한 강한 바람이 자주 불던 여의도 광장을 건너서 갈쯤이면 비록 21세기를 사는 남성이라는 동물들처럼 그 예리함이나 둔중함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난 겨울은 역시 겨울이었고 그만큼 몸과 마음이 차가웠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만큼 봄은 역시 속이 꽉 찬 '미국 놈 지갑'이다. 그만큼 봄은 움츠러든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펴고 온갖 생명의 환희를 함께 나눌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말하자면 봄은 역시 생명의 축제 한마당이다.
봄의 지갑은 어디서부터 열리는 것일까?
여의도 공원의 산책길 비탈을 따라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철쭉 종류에서 먼저 봄의 지갑 속을 엿보게 된다. 자산홍, 영산홍, 백철쭉 등 철쭉 종류들이 어느새 옅은 녹색의 앞치마를 두르고 “나 왔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직 개나리건 진달래건 잎보다도 꽃부터 피는 성급한 놈들이 그동안의 몇 번의 추위에 놀래어 눈치를 보는 사이에 철쭉은 어차피 4월말, 5월 초에 꽃을 피워야 하기에 바깥 기온과 상관없이 꾸준히 준비를 한 것이, 어쩌면 이처럼 가장 빠른 봄의 전령사로 오인되는 영광을 받게 된 것이리라. 이제 조금 있으면 이 여의도공원은 그야말로 '미국놈 지갑'을 줏어 속을 펼쳐볼 때의 그 황홀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옛날의 그 삭막했던 아스팔트 광장 대신에 그 위에 조성된 오솔길과 언덕과 비탈을 따라 공원을 가로질러 오다 보니 지난해에 보이지 않던 원두막도 보이고 아침 일찍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푸는 총각이나 아저씨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그래! 나도 옛날에는 총각 축에 끼었는데, 여의도로 출근하기 30년을 넘어서자 드디어는 그 위대한 아저씨의 반영에 들어설 수 잇게 된 것인 만큼 그 세월의 간격을 문득 운동하는 그 광경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한나라 때 흉노땅에 강제로 보내진 왕소군(王昭君)이 그랬던가?
봄이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다고. 여의도 공원에 봄이 오고 있지만 아직도 봄은 먼 것 같다. 그것은 여의도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정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공원의 나무들이 저마다 꽃을 피우려고 암중모색을 하듯, 저 멀리 여의도의 돔 지붕에 입성하고 싶은 전국의 그 많은 철새들이 공천입네 탈락입네 무소속입네 신당입네 하면서 분주하다. 그들이야말로 과연 자신들이 다시 정치인생에서 봄을 맞을 수 있는지를 놓고 지난 해 대통령선거 때의 남의 선거 보듯 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피 터지는 싸움을 연일 계속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는 유권자만 보일 뿐 유권자로 강제 편입당한 국민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여의도에 진정한 봄은 언제나 가능한 것인가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출마자들이 정해지고 그들이 국민들에게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힘든 전토를 벌이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선택을 받은 후인 4월 중순이 되어야 비로소 여의도에 봄이 오는 것인가? 그런데 대통령 선거로부터 취임까지 2 달, 다시 국회가 구성돼 활동을 개시하기까지 어언 2 달이 걸리는 이 일정이 어떻게 보면 긴 겨울이자, 봄의 상륙을 막는 방파제일 것이다.
여의도의 봄, 계절로는 봄이 오고 있지만 아직 봄일 수 없는 이러한 때, 계절의 봄과 정치의 봄이 서로 엇갈리게 멈칫거리는 이 때, 그 두 봄의 간격의 황량함에 여전히 가슴을 앓는 사람은 오늘 아침 나 혼자인가?
그렇다고는 하지만 지구온난화라는 것 때문에 다소 고개를 숙인 추위로 겨울같지 않은 겨울을 보낸 서울의 여의도는 지금 봄의 그 도톰한 지갑을 막 열듯이 준비가 한창인 것을 나도 알겠다.
사실 봄이란 속이 꽉 찬 지갑이 아닐까? 겨울은 아무리 따뜻하다고 해도 역시 춥고 쓸쓸하고 배고프다. 그것은 역시 텅 빈 지갑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시대가 좋아져서 겨울이 예전 겨울 같지 않다고 말들을 많이 하더라도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시내버스를 내려 이마를 째는 듯한 강한 바람이 자주 불던 여의도 광장을 건너서 갈쯤이면 비록 21세기를 사는 남성이라는 동물들처럼 그 예리함이나 둔중함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난 겨울은 역시 겨울이었고 그만큼 몸과 마음이 차가웠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만큼 봄은 역시 속이 꽉 찬 '미국 놈 지갑'이다. 그만큼 봄은 움츠러든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펴고 온갖 생명의 환희를 함께 나눌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말하자면 봄은 역시 생명의 축제 한마당이다.
봄의 지갑은 어디서부터 열리는 것일까?
여의도 공원의 산책길 비탈을 따라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철쭉 종류에서 먼저 봄의 지갑 속을 엿보게 된다. 자산홍, 영산홍, 백철쭉 등 철쭉 종류들이 어느새 옅은 녹색의 앞치마를 두르고 “나 왔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직 개나리건 진달래건 잎보다도 꽃부터 피는 성급한 놈들이 그동안의 몇 번의 추위에 놀래어 눈치를 보는 사이에 철쭉은 어차피 4월말, 5월 초에 꽃을 피워야 하기에 바깥 기온과 상관없이 꾸준히 준비를 한 것이, 어쩌면 이처럼 가장 빠른 봄의 전령사로 오인되는 영광을 받게 된 것이리라. 이제 조금 있으면 이 여의도공원은 그야말로 '미국놈 지갑'을 줏어 속을 펼쳐볼 때의 그 황홀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옛날의 그 삭막했던 아스팔트 광장 대신에 그 위에 조성된 오솔길과 언덕과 비탈을 따라 공원을 가로질러 오다 보니 지난해에 보이지 않던 원두막도 보이고 아침 일찍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푸는 총각이나 아저씨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그래! 나도 옛날에는 총각 축에 끼었는데, 여의도로 출근하기 30년을 넘어서자 드디어는 그 위대한 아저씨의 반영에 들어설 수 잇게 된 것인 만큼 그 세월의 간격을 문득 운동하는 그 광경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한나라 때 흉노땅에 강제로 보내진 왕소군(王昭君)이 그랬던가?
봄이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다고. 여의도 공원에 봄이 오고 있지만 아직도 봄은 먼 것 같다. 그것은 여의도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정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공원의 나무들이 저마다 꽃을 피우려고 암중모색을 하듯, 저 멀리 여의도의 돔 지붕에 입성하고 싶은 전국의 그 많은 철새들이 공천입네 탈락입네 무소속입네 신당입네 하면서 분주하다. 그들이야말로 과연 자신들이 다시 정치인생에서 봄을 맞을 수 있는지를 놓고 지난 해 대통령선거 때의 남의 선거 보듯 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피 터지는 싸움을 연일 계속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는 유권자만 보일 뿐 유권자로 강제 편입당한 국민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여의도에 진정한 봄은 언제나 가능한 것인가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출마자들이 정해지고 그들이 국민들에게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힘든 전토를 벌이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선택을 받은 후인 4월 중순이 되어야 비로소 여의도에 봄이 오는 것인가? 그런데 대통령 선거로부터 취임까지 2 달, 다시 국회가 구성돼 활동을 개시하기까지 어언 2 달이 걸리는 이 일정이 어떻게 보면 긴 겨울이자, 봄의 상륙을 막는 방파제일 것이다.
여의도의 봄, 계절로는 봄이 오고 있지만 아직 봄일 수 없는 이러한 때, 계절의 봄과 정치의 봄이 서로 엇갈리게 멈칫거리는 이 때, 그 두 봄의 간격의 황량함에 여전히 가슴을 앓는 사람은 오늘 아침 나 혼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