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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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제17회 - " 선생님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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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4
~2007년 5월26일 새벽 3시 40분에
1973년 3월 초, 교양과정을 끝내고 본과로 올라와 ‘고명하신’ 피천득 교수님의 ‘영수필 강독’을 신청한 우리 사범대 영어과 학생들은 이제나 저네나 어느 분이 멋진 풍모를 자랑하며 나타나실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오지 않고, 수위같이 보이시는 노인이 교단에 올라가 칠판을 닦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 곧 선생님이 오신다고 미리 학교에서 준비를 시키는 것이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계속 떠들고 있었는데, 그 분은 교단을 내려오지 않고 이번에는 교탁에 서서 출석부를 펼치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면 이 분이....?” 그래, 이 수위같이 생기신, 약간 마르고, 이미 머리도 많이 빠져 별로 볼 품도 없고 풍체도 없는 이 분이 바로 피천득 교수란 말인가? 우리들의 실망의 소리가 선생님 귀에는 들렸을까? 선생님은 교재로 이미 나눠준 1970년 펠리칸 출판사 발행 「영국수필집(A book of English Essays)」에서 몇 개의 수필을 건너뛰고는 85쪽에 있는 ‘Old China'(오래된 도자기)를 펴라고 한다. 그리고는 한 학생에게 읽도록 한 뒤에 눈을 지긋이 감으면서 이 문장을 음미하시는 것 같았다.
찰스 램(1775~ 1834)이 쓴 이 ‘오래된 도자기’라는 수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오래된 도자기에 대해서는 거의 여성적인 편애 같은 것이 있다. 큰 집을 가게 되는 경우에 도자기 진열장을 먼저 물어보고는, 회화작품 진열실은 그 다음이다. 좋아하는 것에의 순서를 설명해낼 수는 없지만, 너무 오래 전에 있었던 것이어서, 그것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인지 불분명한 그런 취미 같은 것들이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처음으로 이끌려가서 본 연극이나 전시회 생각이 나지만 도자기 잔이나 받침이 맨 먼저 내 마음속에 언제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수필은, 도자기 위에 아마도 청화수법으로 그려졌을 원근법이 엄격하지 않은 풍경화를 묘사하면서 브리지트라는 사촌 누나와 어린 시절을 함께 크면서 겪고 쌓아왔던 많은 경험들을 차례로 회고하면서 청춘의 아름다움을 돌이켜보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 34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Competence to age is supplementary youth, a sorry supplement indeed, but I fear the best that is to be had." 나이 들어서의 넉넉한 수입은 청춘에 대한 보충입니다. 실로 섭섭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마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보충이 아닐까.....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오늘 새벽에 듣고 문득 그 수필이 생각나 책을 찾아서 열어보니, 이 부분에 그 수업 때에 중요하다고 별표를 해 놓은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 때 벌써 무슨 노년 걱정을 했을까? 아니 그것은 아니고 선생님이 번역을 해 주시면서 보여주신 분위기에 취해, 나이가 들면 힘도 빠지고 열정도 없어지고 하니까 돈이 다소는 있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다. 그 첫 시간, 첫 수필의 작가인 찰스 램은 누이인 메리가 정신병 발작으로 어머니를 살해하는 비극을 겪었고, 그 뒤 자신에게도 이러한 유전(遺傳)이 있음을 알고, 평생 독신으로 누이를 간호하며 생활하였는데, 그의 삶이 선생님의 삶과 오버랩 되면서, 한 사람은 영국을 대표하는, 또 한 사람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가로서의 그 깨끗한 삶의 체취를 가까이서 느끼며, 맨 처음 피천득 선생님을 뵈었을 때 학교 수위처럼 생각한 그 불경스러움을 씻어버리려 선생님의 강의를 열심히 들으려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새어나온다. 선생님은 2년 쯤 뒤 겨울에 미국에 간 딸이 보고 싶다며 일종의 명예퇴직을 하셔서 우리들과 멀어졌지만, 나중에 돌아오셔서 강의를 가끔 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과정에서도 늘 우리들의 마음 한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은사로서의 지위가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가장 최근(이라고 해봤자 벌써 11여 년 전)에는 일본 유학시절 연모의 정을 품었던 소녀 아사코와의 인연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 낸 수필집 '인연'으로 세상에 잔잔한 감동을 주신 이후에도 건강하다는 소식을 계속 전해 들으며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제 밤 늦게 운명을 하셨다는 소식을 세 시간 만에 듣고는, 내가 인생에서 가졌던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자락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이 순간을 이렇게나마 붙잡아놓고 싶은 것이다.
선생님이 남기신 수필 하나하나가 모두 ‘주옥(珠玉)같다’는 그 표현 그대로이지만, 국어교과서에 실린 “수필은 청자연적이다”라는 유명한 글을 통해 우리들에게 수필의 아름다움을 뚜렷히 각인시켜주신 그 공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달이 되면서 펴 본 수필 ‘오월’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는 표현에 무릎을 친 적이 있는데, 원숙한 여인처럼 변하는 유월이 아니라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 같은, 밝고 맑고 순결한 이 오월에, 마치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도자기 속으로 들어가듯, 그 신록 속으로, 순결 속으로 들어가신 게다.
인연이란 수필집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마지막에 폐렴이 도지셨다고는 하지만 향년 97세이시니까 호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수필집의 맨 마지막에서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부끄러워하시는 그 모습이 바로 선생님의 본 마음이 아닐까? 우리가 삶을 받아서 이 세상에 머물다가 가는데, 그런 밝은, 맑은 마음으로 평생을 사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이지만, 선생님과 나와의 사이에 34년 전에 있었던 짧은 '인연'을 어제처럼 회상하며,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그 때의 그 책갈피에서 다시 확인하며, 늘 신록이셨던 우리 선생님을 이제 하늘로 보내드리련다.
1973년 3월 초, 교양과정을 끝내고 본과로 올라와 ‘고명하신’ 피천득 교수님의 ‘영수필 강독’을 신청한 우리 사범대 영어과 학생들은 이제나 저네나 어느 분이 멋진 풍모를 자랑하며 나타나실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오지 않고, 수위같이 보이시는 노인이 교단에 올라가 칠판을 닦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 곧 선생님이 오신다고 미리 학교에서 준비를 시키는 것이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계속 떠들고 있었는데, 그 분은 교단을 내려오지 않고 이번에는 교탁에 서서 출석부를 펼치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면 이 분이....?” 그래, 이 수위같이 생기신, 약간 마르고, 이미 머리도 많이 빠져 별로 볼 품도 없고 풍체도 없는 이 분이 바로 피천득 교수란 말인가? 우리들의 실망의 소리가 선생님 귀에는 들렸을까? 선생님은 교재로 이미 나눠준 1970년 펠리칸 출판사 발행 「영국수필집(A book of English Essays)」에서 몇 개의 수필을 건너뛰고는 85쪽에 있는 ‘Old China'(오래된 도자기)를 펴라고 한다. 그리고는 한 학생에게 읽도록 한 뒤에 눈을 지긋이 감으면서 이 문장을 음미하시는 것 같았다.
찰스 램(1775~ 1834)이 쓴 이 ‘오래된 도자기’라는 수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오래된 도자기에 대해서는 거의 여성적인 편애 같은 것이 있다. 큰 집을 가게 되는 경우에 도자기 진열장을 먼저 물어보고는, 회화작품 진열실은 그 다음이다. 좋아하는 것에의 순서를 설명해낼 수는 없지만, 너무 오래 전에 있었던 것이어서, 그것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인지 불분명한 그런 취미 같은 것들이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처음으로 이끌려가서 본 연극이나 전시회 생각이 나지만 도자기 잔이나 받침이 맨 먼저 내 마음속에 언제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수필은, 도자기 위에 아마도 청화수법으로 그려졌을 원근법이 엄격하지 않은 풍경화를 묘사하면서 브리지트라는 사촌 누나와 어린 시절을 함께 크면서 겪고 쌓아왔던 많은 경험들을 차례로 회고하면서 청춘의 아름다움을 돌이켜보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 34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Competence to age is supplementary youth, a sorry supplement indeed, but I fear the best that is to be had." 나이 들어서의 넉넉한 수입은 청춘에 대한 보충입니다. 실로 섭섭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마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보충이 아닐까.....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오늘 새벽에 듣고 문득 그 수필이 생각나 책을 찾아서 열어보니, 이 부분에 그 수업 때에 중요하다고 별표를 해 놓은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 때 벌써 무슨 노년 걱정을 했을까? 아니 그것은 아니고 선생님이 번역을 해 주시면서 보여주신 분위기에 취해, 나이가 들면 힘도 빠지고 열정도 없어지고 하니까 돈이 다소는 있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다. 그 첫 시간, 첫 수필의 작가인 찰스 램은 누이인 메리가 정신병 발작으로 어머니를 살해하는 비극을 겪었고, 그 뒤 자신에게도 이러한 유전(遺傳)이 있음을 알고, 평생 독신으로 누이를 간호하며 생활하였는데, 그의 삶이 선생님의 삶과 오버랩 되면서, 한 사람은 영국을 대표하는, 또 한 사람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가로서의 그 깨끗한 삶의 체취를 가까이서 느끼며, 맨 처음 피천득 선생님을 뵈었을 때 학교 수위처럼 생각한 그 불경스러움을 씻어버리려 선생님의 강의를 열심히 들으려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새어나온다. 선생님은 2년 쯤 뒤 겨울에 미국에 간 딸이 보고 싶다며 일종의 명예퇴직을 하셔서 우리들과 멀어졌지만, 나중에 돌아오셔서 강의를 가끔 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과정에서도 늘 우리들의 마음 한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은사로서의 지위가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가장 최근(이라고 해봤자 벌써 11여 년 전)에는 일본 유학시절 연모의 정을 품었던 소녀 아사코와의 인연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 낸 수필집 '인연'으로 세상에 잔잔한 감동을 주신 이후에도 건강하다는 소식을 계속 전해 들으며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제 밤 늦게 운명을 하셨다는 소식을 세 시간 만에 듣고는, 내가 인생에서 가졌던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자락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이 순간을 이렇게나마 붙잡아놓고 싶은 것이다.
선생님이 남기신 수필 하나하나가 모두 ‘주옥(珠玉)같다’는 그 표현 그대로이지만, 국어교과서에 실린 “수필은 청자연적이다”라는 유명한 글을 통해 우리들에게 수필의 아름다움을 뚜렷히 각인시켜주신 그 공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달이 되면서 펴 본 수필 ‘오월’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는 표현에 무릎을 친 적이 있는데, 원숙한 여인처럼 변하는 유월이 아니라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 같은, 밝고 맑고 순결한 이 오월에, 마치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도자기 속으로 들어가듯, 그 신록 속으로, 순결 속으로 들어가신 게다.
인연이란 수필집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마지막에 폐렴이 도지셨다고는 하지만 향년 97세이시니까 호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수필집의 맨 마지막에서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부끄러워하시는 그 모습이 바로 선생님의 본 마음이 아닐까? 우리가 삶을 받아서 이 세상에 머물다가 가는데, 그런 밝은, 맑은 마음으로 평생을 사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이지만, 선생님과 나와의 사이에 34년 전에 있었던 짧은 '인연'을 어제처럼 회상하며,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그 때의 그 책갈피에서 다시 확인하며, 늘 신록이셨던 우리 선생님을 이제 하늘로 보내드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