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20회 - " 아름다움 "

영광도서 0 568
우리나라의 영화배우 전도연이 칸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어 온 국민들이 기뻐하던 2007년 5월 28일 아침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칸에서 전해온 뉴스로 언론들이 떠들썩했고 국민들도 기뻐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여성감독의 작품이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종려상 다음으로 우수작품상인 그랑프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을 받은 영화는 “빈소의 숲(殯の森)”, 감독은 올해 37살의 여성 카와세 나오미(河瀨直美)이다.

우리나라 여성이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도 대단하지만 젊은 일본 여성감독이 작품상을 받은 것도 역시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여성은 칸에서 작품상을 받은 가장 젊은 감독으로 기록될 것인데, 더 대단한 것은 이미 10년 전인 27살 때에 칸영화제에서 “움트는 주작(萌の朱雀)”이란 영화로 신인감독상인 황금촬영기상을 받은 것이다. 물론 이 상도 가장 어린 나이에 받은 감독으로 기록된다.

어떻게 해서 이 여성감독이 남들이 한 번이라도 부러워할 칸 영화제에서 10년 동안에 두 번이나 받을 수 있었을까? 이 여성감독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1969년 일본의 고도 나라에서 태어난 카와세는 오사카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첫 작품인 “포옹”을 감독하면서, 남성들이 판을 치는 일본의 영화계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유명한 영화제작자와의 결혼과 이혼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인생역정 속에서 원래 다큐멘터리로 출발한 때문인 듯 그의 작품들은 자연과 인생, 세월에 대한 민감하고도 세심한 감정을 바탕으로 청신하고도 단아한, 그러면서도 품격이 있는 영화세계를 가꿔왔다고 한다.

10년 전 최초로 칸의 영예를 가져다 준 작품 “움트는 주작(萌の朱雀)”은 철도가 들어온다고 하다가 중단된 어느 산골마을의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조용하고 느린 화면으로 그린 작품이다. 특히나 화면에서는 빛을 잘 포착하고 있어서 초록의 산들의 아름다운 모습에다가 부엌과 식사하는 마루를 파고드는 아름답게 빛이 중간 중간 삽입된 사실적인 영상과 생동감 있는 자연의 소리에 실려 우리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와 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수상한 “빈소의 숲(殯の森)”은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나라 동쪽의 한 산간마을을 배경으로 가벼운 노인성 치매인 인지증(認知症)을 앓고 요양원에 있는 한 노인과 새로 온 간호사와의 이야기인데, 그 노인은 33년 전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한시도 부인을 잊지 못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있고,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사고로 아들을 잃고 나서는 역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데, 두 사람이 한 요양원에서 환자와 간호사로서 만나다가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는 죽은 부인의 묘를 찾아 참배하러 가지만 도중에 자동차사고가 일어나면서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진전된다는 줄거리이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오노 마치코(尾野眞千子, 25)는 10년 전 이 감독의 작품 “움트는 주작(萌の朱雀)”에서 15세의 소녀로서 열연을 했던 아가씨인데, 10년 만에 다시 같은 감독에 의해 데뷔해서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경쟁을 하게 된 것이 수상의 등급을 가르게 되었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이미 잘 아다시피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유괴범에 의해 아들마저 잃고는 종교(기독교)를 만난 후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고 교도소로 그를 찾아갔는데, 범인은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내가 용서를 안 했는데, 왜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해…” 하면서 용서할 권리마저 절대자에게 박탈당한 데 대한 원망으로 신을 증오하며 머리를 깎는다는 것이다.

두 작품의 우열에 대해서는 논하기 어렵고, 다만 아마도 카와세 감독의 “빈소의 숲(殯の森)”이란 작품이 없었으면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작품상을 받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일본 영화의 상황설정이 더 쉽고 서양인들에게는 더 받아들이기가 편했던 것이 두 상의 이름을 나눈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피해자도 용서하지 않았는데 신이 멋대로 용서했다며 여주인공이 머리를 깎는 상황이 서양인들에게는 더 이질적일 수 있었기에 열연을 한 여배우에게만 상을 주는 것으로 대신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그러나 저러나 두 작품 모두 동양적인 사상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모두가 인간의 소통문제를 다룬 것인데. 60회를 맞은 칸 영화제에서 이 두 작품이 주목을 받은 것으로 보면 우리 동양인들이 고민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이제는 서양인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간다는 뜻으로 해석해서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하루 뒤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일본 대표 모리 리에가 1위를 하고 미스코리아 이하늬가 4위를 차지한 것도 묘한 대조를 준다. 우리 미녀가 미스 유니버스대회에 입상한 것은 미스코리아 진 장윤정이 1988년 미스 유니버스 2위 입상한 것이 최고로서, 근 20년 만에 4위에 올라 국민들의 시선을 집중했는데, 일본도 1959년 코지마 아키고가 미스 유니버스가 된 이후 48년 만의 일이라고 해서 일본인들의 콧대가 조금 올라갔다. 우리에게 아쉬운 것은 그 두 대회 모두 말하자면 일본에 한 끝발 씩 밀린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순수하지 않고 상업적 이해에 따라 좌우된다는 면이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고 여기에도 로비라던가 메이크업이라던가 하는 차이에다가 후보들의 언어능력, 지성의 차이 등을 보는 것이므로 1위와 4위로 갈렸다고 크게 낙담하거나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이번 대회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온 후보가 다 출중해서 둘 다 상을 나눠가졌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이번 미스유니버스 입상자를 보면 1위는 일본, 2위는 브라질, 3위는 베네수엘라인 것을 보듯, 개최도시가 라틴아메리카인 멕시코라는 점이 다소간 입김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보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1위와 4위에 이어 미스 인도 푸자 쿠프타가 6위에 이름을 올렸고, 미스 필리핀 안나 테레사 리카로스는 ‘포토제닉상’에 꼽혀 크리스털 트로피를 거머 쥐었으며 또한 ‘미스 우정상’에는 미스 차이나 장닝닝이 이름을 올리는 등 톱10과 주요 수상부문에 아시아 미녀들이 5명이나 포진한 것을 보면 아시아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각성이 눈에 띄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칸 영화제도 그렇고 이번 미스 유니버스 대회도 그렇고 동양과 동양인, 그들의 인생관이나 삶의 가치가 서양인들에게도 점점 의미가 있어진다는 점일 것이다. 미스 유니버스 1위가 나온 일본은 마침 올해가 서양식 미인대회 개최 100년을 맞는 해라고 하는데. 이번 일본 미녀의 등극을 계기로 일본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일본인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끼고, 서양콤플렉스를 벗어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동안 서양에 눌려, 서양인의 아름다움을 우리의 기준으로 끌어다 대다 보니 우리들의 정신세계가 피폐했었다면 이제 일본이건 한국이건 우리들의 생각과 삶,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결코 그들에 비해 추하거나 모자라거나 나쁘지 않다는 자각만이라도 이번에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결코 못나지 않았다. 이제 다리만 길고 코가 높고 눈은 파랗고 머리는 누런, 그런 것들이 우리의 미의 기준이었던 것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인 우리들의 얼굴과 우리들의 체구와 몸매도 그들만큼이나 아름답다. 이제는 삶과 아름다움의 기준을 우리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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