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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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제21회 - " 눈물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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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4
“왜 이렇게 우는 남자들이 많지요?”
텔레비전을 같이 보다가 문득 던지는 아내의 말에 “그렇구나, 왜 이리 남자들이 눈물을 많이 보이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요즈음 선거철, 각 당의 공천 결과가 나오는 것을 전후해서 혹 미리, 혹 나중에 기자회견을 하고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주르르 흘리기까지 하는 남자들이 유독 많이 모인다.
꼭 남자들만도 아니다. 공천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눈물을 보인 여성 정치인도 있었으니까 이러한 잦은 눈물은 남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정치인의 눈물’이라고 해야 할까?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치인들이 이번에 보여주는 눈물의 변은 대부분 같은 것 같다. 소속 당을 위해서 지난 10년 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참고 기여를 했는데, 이제 와서 엉뚱한 기준으로 사람을 팽시킨다는 것이다. 팽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탈락자들은 정책이나 비전이 아닌 다른 측면 때문에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정당의 참신성이니 개혁이니 하는 이미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번 선거의 공천과정의 문제를 잘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다만 모 당의 전 대표가 상향식 공천이 없어진 데 대해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지역구에서 높은 인지도와 지지도를 갖고 있는데, 개혁이라는 이름만으로 탈락시키니 당사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는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대한 억울함이 눈물로 변해서 쏟아진 것이라고 본다면 그 눈물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어찌됐든 이번 정치인들의 눈물바다를 보면서 정치라는 것이 정말로 냉혹한 현장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정권획득을 위해서 편을 짜고 상대방을 공격하곤 한 것이 이른바 그 유명한 당쟁(黨爭)인 것이고, 그 결과는 정치적 상대편의 대량 lfrkr뿐만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왔다는 데서 그 당시의 정치는 정말로 목숨을 거는 살벌한 전장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대의 정치는 민주적인 절차와 규정을 통해서 치러지는 것이지만, 때때로 그 절차가 만인이 수긍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 불만과 불평, 억울함의 호소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우리는 정치가의 눈물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
눈에 있다고 하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한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인가? ”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2년 여 동안 아내를 그리는 글 50여 편을 지어남긴 조선시대의 팔불출 심노승이 이렇게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묘사했다지만 정치인의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 것인가? 그들의 눈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런 질문조차 사실 우습기만 하다. 정치인들은 당연히 지역구민을 위해 울고 유권자인 국민을 위해서 울 것이다. 자신과 같은 정치인을 뽑아주지 않는 것이 큰 손해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아니라고 부정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경험상으로는 정치인들은 남을 위해 우는 척 할 것이지만 사실은 남을 위해서는 울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 볼 수 있지만 공인의 입장에서 그런 의심을 공공연하게 해본다고 말할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 떽쥐베리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숨어있는 보석이라고 했다. 질병 때문에 가장 힘든 생활을 했기에 아마도 누구보다도 눈물이 많았을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는 그러나 자신의 눈물은 그저 눈물을 흘리기 위한 눈물이자 순전히 자기연민의 의미 없는 눈물이니 보석은커녕 버려도 아깝지 않은 자갈쯤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은 진정으로 공인이 우리에게 보여줄 눈물은 정말로 어른답게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나누는 연민의 눈물이나, 세상의 불의를 보고 흘리는 비탄의 눈물, 혹은 내가 범한 잘못을 뉘우치는 통회의 눈물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무슨 기자회견을 하고 사람들 앞에 보이며 주르르 흘리는 광경을 연출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차라리 몇 년 전부터 중국 난징(南京)시에서 성업 중에 있는 '눈물바(哭bar)'에 찾아가서 한 시간에 중국 돈 50위안씩을 주고 남들이 보지 않는 방 안에서 실컷 울 일이다. 거기에서 우는 것은 무죄이고 거기에서 흘린 눈물에 대해서는 우리가 상관하지 않는다.
고인 눈물은 눈을 빛나게 하지만 흘러내린 눈물은 얼굴만을 지저분하게 한다.
텔레비전을 같이 보다가 문득 던지는 아내의 말에 “그렇구나, 왜 이리 남자들이 눈물을 많이 보이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요즈음 선거철, 각 당의 공천 결과가 나오는 것을 전후해서 혹 미리, 혹 나중에 기자회견을 하고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주르르 흘리기까지 하는 남자들이 유독 많이 모인다.
꼭 남자들만도 아니다. 공천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눈물을 보인 여성 정치인도 있었으니까 이러한 잦은 눈물은 남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정치인의 눈물’이라고 해야 할까?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치인들이 이번에 보여주는 눈물의 변은 대부분 같은 것 같다. 소속 당을 위해서 지난 10년 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참고 기여를 했는데, 이제 와서 엉뚱한 기준으로 사람을 팽시킨다는 것이다. 팽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탈락자들은 정책이나 비전이 아닌 다른 측면 때문에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정당의 참신성이니 개혁이니 하는 이미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번 선거의 공천과정의 문제를 잘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다만 모 당의 전 대표가 상향식 공천이 없어진 데 대해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지역구에서 높은 인지도와 지지도를 갖고 있는데, 개혁이라는 이름만으로 탈락시키니 당사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는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대한 억울함이 눈물로 변해서 쏟아진 것이라고 본다면 그 눈물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어찌됐든 이번 정치인들의 눈물바다를 보면서 정치라는 것이 정말로 냉혹한 현장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정권획득을 위해서 편을 짜고 상대방을 공격하곤 한 것이 이른바 그 유명한 당쟁(黨爭)인 것이고, 그 결과는 정치적 상대편의 대량 lfrkr뿐만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왔다는 데서 그 당시의 정치는 정말로 목숨을 거는 살벌한 전장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대의 정치는 민주적인 절차와 규정을 통해서 치러지는 것이지만, 때때로 그 절차가 만인이 수긍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 불만과 불평, 억울함의 호소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우리는 정치가의 눈물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
눈에 있다고 하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한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인가? ”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2년 여 동안 아내를 그리는 글 50여 편을 지어남긴 조선시대의 팔불출 심노승이 이렇게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묘사했다지만 정치인의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 것인가? 그들의 눈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런 질문조차 사실 우습기만 하다. 정치인들은 당연히 지역구민을 위해 울고 유권자인 국민을 위해서 울 것이다. 자신과 같은 정치인을 뽑아주지 않는 것이 큰 손해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아니라고 부정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경험상으로는 정치인들은 남을 위해 우는 척 할 것이지만 사실은 남을 위해서는 울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 볼 수 있지만 공인의 입장에서 그런 의심을 공공연하게 해본다고 말할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 떽쥐베리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숨어있는 보석이라고 했다. 질병 때문에 가장 힘든 생활을 했기에 아마도 누구보다도 눈물이 많았을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는 그러나 자신의 눈물은 그저 눈물을 흘리기 위한 눈물이자 순전히 자기연민의 의미 없는 눈물이니 보석은커녕 버려도 아깝지 않은 자갈쯤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은 진정으로 공인이 우리에게 보여줄 눈물은 정말로 어른답게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나누는 연민의 눈물이나, 세상의 불의를 보고 흘리는 비탄의 눈물, 혹은 내가 범한 잘못을 뉘우치는 통회의 눈물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무슨 기자회견을 하고 사람들 앞에 보이며 주르르 흘리는 광경을 연출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차라리 몇 년 전부터 중국 난징(南京)시에서 성업 중에 있는 '눈물바(哭bar)'에 찾아가서 한 시간에 중국 돈 50위안씩을 주고 남들이 보지 않는 방 안에서 실컷 울 일이다. 거기에서 우는 것은 무죄이고 거기에서 흘린 눈물에 대해서는 우리가 상관하지 않는다.
고인 눈물은 눈을 빛나게 하지만 흘러내린 눈물은 얼굴만을 지저분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