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26회 - " 광풍제월 "

영광도서 0 697
교수들이 뽑은 2008년 올해 희망의 사자성어(四字成語)로 `광풍제월'(光風霽月)이 선정되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을 한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중문학)는 “지난 한 해는 정치·사회적으로 숱한 시비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며 “이제 맑은 날의 시원한 바람과 비갠 후의 밝은 달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겨진 의운(疑雲)이 씻은 듯 걷혀 밝은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고 전한다. 이 사자성어를 제정한 주체는 교수신문. 이를 계기로 ‘광풍제월’ 넉 자를 잘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는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광풍제월’이란 말은 송나라 시대의 유명한 서예가인 황정견(黃庭堅)이 당시 성리학의 세계를 처음으로 열어 보인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인품과 사상을 존경하여 표현한 글에서 나왔다;

“그의 인품이 심히 높고 마음결이 시원하고 깨끗함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같구나 其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

주돈이는 송의 유학자로, 우리나라에서 성리학이라고 부르는 중국 송학(宋學)의 개조(開祖)로 불린다. 그는 우주의 본체를 태극으로 보고 이를 토대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통서(通書)》를 저술하여, 종래의 인생관에 우주관을 통합하고 거기에 일관된 원리를 수립하므로서, 성리학(性理學)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그런 주돈이의 인품이 ‘광풍제월’, 곧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뜻을 좀 더 알려면 다시 ‘광풍(光風)’이란 말을 찾아가 보아야 한다. 광풍이란 말은 원래 《초사(楚詞)》에 나오는 단어로,

“해가 떠오르자 바람이 불어서 풀과 나무들이 광색(光色)이 있다”

는 뜻이라고 한다. 곧 아침 해를 받아 온갖 식물들이 맑고 고운 생기를 띄고 있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제월(霽月)’이란 말은, 비가 그치고서 나온 달을 뜻하므로,밤에 비가 그치고 난 뒤에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정말로 맑고 깨끗한, 오염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주돈이란 사람이 그처럼 고결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본격 도입된 이후, 성리학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인품의 세계를 뜻하는 말로 쓰여 온 것 같다. 성리학자들은 우주와 세계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탐구한 사람들로서, 그들은 이 세상을, 현상을 의미하는 기(氣)와 근본원리에 해당하는 이(理)의 두 가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그것의 주종, 선후관계에 의해서 이 세상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 실상을 탐구하기 위해 마음에 온갖 잡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것을 찾아가게 되면 온갖 물욕을 벗어난 맑고 깨긋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고, 그 경지가 곧 ‘광풍제월’이라는 것이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있던 광풍루(光風樓)라는 누각에 붙이는 글에서

“이것은 외부로부터 느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공경과 방종, 바른 것과 어긋나는 것의 분별을 명확하게 판별하여 도(道)의 본원(本原)에 통달하는 공부에 종사해서 가슴속이 쇄락하여 털끝만한 인욕(人欲)의 속박도 없이 태극(太極)을 마음에 간직한 뒤에야 기대할 수 있다”

고 한 것이 이를 이름이다. 또한 다산 정약용도 그의 아들에게 주는 편지에서

“사대부(士大夫)의 심사(心事)는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이 털끝만큼도 가리운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에 부끄럽고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전혀 범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포목(布木) 몇 자, 동전 몇 잎 때문에 잠깐이라도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호연지기가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인(人)이 되느냐 귀(鬼)가 되느냐 하는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극히 주의하도록 하라”

고 하였다.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광풍제월이란 말을 더 유명하게 한 것은 일찍이 중종 조에 조광조의 제자로서 스승의 죽음을 보고 시골로 은거한 양산보(1503~1557)가 전남 담양에 지은 자연정원인 ‘소쇄원(瀟灑園)’에 보이는 바, 소쇄원에 들어서면 계곡을 따라 먼저 광풍각이 있고 그 위에 제월당이란 조그만 집이 있다. 광풍각은 소쇄원 건물 중 가장 낮은 자리에 지은 것으로 너럭바위로 흘러내린 물이 십장폭포로 떨어지는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한 것이고, 제월당은 방 한 칸에 두 칸짜리 마루가 달린 작은 건물이지만, 주인의 서재로서, 바로 이 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건물의 편액을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데서, 이 ‘광풍제월’이란 말의 뜻이 우암 송시열이 말한 그 경지임을 알겠다.

아무튼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는 이 말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많은 문인들이 멋진 계곡에다가 제월이란 이름을 갖다 붙이고 혹 자신의 호(號)에도 붙이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인 유근(柳根 1549∼1627)은 충북 괴산의 한 바위를 제월대라 부르고, 그 위에 고산정을 세워 그 곳에 올라 만년을 보냈다. 전라남도 장흥사람으로 임진왜란 때에 승군을 이끌고 공을 세운 경헌(敬軒, 1542~1632)은 자신의 호를 제월당(霽月堂)이라고 불러, 나중에 그가 입적한 뒤에 그가 남긴 글을 모은 책 《제월당집(霽月堂集)》이 만들어졌다. 창덕궁 후원(秘苑:비원) 안 주합루 동북쪽에도 '제월광풍관'이라고 해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이 있다.

이처럼 제월광풍, 또는 광풍제월은 맑고 깨끗한 자연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고결한 인품의 경지를 뜻하면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추구하는 경지가 되었는데, 이 뜻이 점차 확대되어 세상이 잘 다스려진 상태를 뜻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광풍제월’ 넉 자를 올해의 희망사자성어로 선정한 교수들도 새로 오는 한 해에 대한 기대심리를 많이 담았다고 전해진다. 정재서 교수가 지난 한 해를 어지럽게 했던 혼란과 의문들이 씻은 듯 사라지고 희망찬 새해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한 것은 이미 말했고, 이정호 목원대 교수는 “빈부의 양극화, 사회계층간의 갈등, 대선과정의 갈등과 네거티브 공방, 어려운 경제상황 등을 잘 극복하고 더욱 발전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는, 이러한 세상이 오려면 단순히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무엇인가에 대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탐구를 해서, 마음 속의 물욕과 더러움을 버리고, 작은 이익에 얽매이지 않는 호연지기를 키울 때에 이러한 세상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그런 각도에서 볼 때에 우리사회가 상하모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욕심을 버리고 작게는 지역사회, 크게는 나라를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란 가르침이 이 ‘광풍제월(光風霽月)’ 넉 자에 담겨있다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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