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25회 - " 미친 나무 "

영광도서 0 749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는 ‘미친나무’라 불리는 벚나무가 있답니다. 신촌캠퍼스 한글탑 옆에 서 있는 벚나무인데요, 한 나무에 흰꽃, 분홍꽃, 진분홍꽃이 마치 ‘미친 듯이’ 함께 피기 때문에 꽃이 한꺼번에 피는 이맘 때가 되면 해마다 이 나무를 보러오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는데 올해도 이 나무에는 변함없이 색깔이 다른 꽃들이 피었습니다.

왜 이 나무가 이처럼 ‘미쳤을까’? 그 이유로, 이 나무를 사진과 함께 소개한 한 신문에 따르면, “부분 돌연변이가 일어난 나뭇가지를 꺾꽂이해 심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나무는 벚나무의 친척뻘인 겹벚나무로, 원래 꽃색은 진분홍이랍니다. 만일 일부분에서만 돌연변이가 일어난 겹벚나무의 가지를 꺾꽂이해 심었다면 정상 부분과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이 각각 자라면서 나무 전체로는 돌연변이와 정상 부분이 뒤섞여 성장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흰 꽃이, 다른 곳에서는 분홍 꽃이 피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조금 궁색해보이지만 설명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이 ‘미친 나무’를 보면서 조금은 화가 났습니다. 이 미친 나무가 정말로 아주 우연히 나온 것이라는 관점, 그리고 그런 나무를 ‘미쳤다’고 보는 관점이 저를 화나게 했습니다. 그것은 지난 달 일본 오사카에 가서 본 수많은 ‘미친 매화나무’들 때문이었습니다.

오사카 시 한가운데에 있는 오사카성(城)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성안 한가운데에는 천수각(天守閣)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성을 사수하기 위해서 성벽을 돌담으로 만들고 그 위에 여러 겹의 지붕을 올려 외부로부터 침입하지 못하도록 높게 쌓아올린 건축이지요. 그 천수각의 동쪽에 매림(梅林)이라고 하는 매화나무 밭이 널따랗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지난 3월 중순 이곳을 방문해 보니 정말로 흰, 연한 우유빛의, 연한 연두색의, 아주 빨간, 분홍의, 선홍의 갖가지 매화들이 피어나서 화려한 꽃동산을 이루고 있었는데요, 그 속에서 이런 ‘미친’ 꽃들을 많이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매화들은 ‘미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의 의해서 ‘개량’된 것들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아무도 이런 색깔이 뒤섞여 피는 꽃들을 미쳤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오사카의 매림에 있는 매화품종만 해도 2006년 2월 현재로 자그만치 97종입니다. 모두 매화나무가 미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에 의해 ‘개량’된 것입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서, 꽃잎과 꽃술의 색깔이나 모양, 가지의 방향과 형상에 따라 서로 다른 품종들이 만들어져서 갖가지 자태를 경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품종들 가운데에 변종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일본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세대 캠퍼스내의 겹벚나무처럼 “부분돌연변이가 일어난 가지를 찾아내어 꺾꽂이”하다가 우연히 나왔건 다른 방법을 썼건 이들은 무려 백 여종에 이르는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연히 육종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수많은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결과물이지, 결코 나무가 ‘미쳐서’ 나온 결과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매화나무나 벚나무에 국한된 일이 아님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원예를 하는 분들은 일본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품종을 보면서 모두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석창포(石菖蒲)라는 식물을 가꾸는 분을 통해서 일본의 관련서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속에 백가지가 넘는 품종들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더군요. 그것들도 그 품종들이 ‘미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밤을 새며 연구해서 나온 새 품종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나던 동물이나 식물의 고유품종마저도 다 죽게 하고 잃어버려 황폐해졌다는 보도, 그래서 멀리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종자를 역수입해서 가져와야 한다는 현실에 대한 보도를 들으신 적이 있지요? 그런 사정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육종학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고 무엇보다도 짜증과 우려가 가시지 않는 것은, 특이한 품종에 대해서 그것을 ‘미쳐서’ 나온 것으로 보아버리고 마는 세태입니다. 무엇이든지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 이유를 찾아내서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는 풍토, 그렇게 해서 우리도 새로운 품종을 가질 수 있는 풍토가 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연세대 구내에 있는 그 겹벚나무는 인간의 손을 떠나서 우연히 이뤄진 변종일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의 힘을 분석해 내고 그 힘으로 새로운 품종을 만들겠다는 생각들이 우리 사회에 퍼져나가지 않는 한, 일본이라는 나라의 그 많은 동식물 품종들은, 모두가 미쳐서 나온 것일 수밖에 없고, 일본인들은 여전히 미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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