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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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제28회 - " 장영희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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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4
아무리 봐도 그 얼굴은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다. 똑바로 서 있지 않고 약간은 기울어져 보이는 머리, 갸름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 눈과 입의 위치와 말할 때의 움직임 등... 대학 3학년 때에 미국문학사라는 과목을 수강하던 때의 장왕록 교수의 모습 그대로이다. 우리보다는 한 학년이 위인 장왕록 교수의 딸,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는 서울대학교에서 아버지와 잘 아는 총장이 꽉 막힌 태도를 보이지 않고 지체장애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면 어쩌면 우리 과의 일년 선배가 됐을지도 모르는 여자, 그나마 또 다른 S자 대학에서 ‘시험은 머리로 보지 발로 보느냐며 당당히 입학시험을 허가해 천신만고 끝에 대학생으로서 공부를 할 기회를 얻은 뒤 유학까지 마치고 당당히 대학교수로 돌아온 여자, 장영희라는 이름의 그 여자가 이 가을에 우리를 힘들게 한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강의를 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모 신문에 토요일마다 연재해 온 <문학의 힘>이란 코너에서 문득문득 깜짝 놀라게 하는 지성의 힘을 보여주어 폭넓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장영희 교수, 강력한 주의·주장 대신에 읽는 이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덥히는 일상의 에피소드로 깊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장 교수가 다시 자신에게 닥친 척추암으로 글을 이어가지 못하고 병마와 싸우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문학을 좋아하고 장영희의 글을 좋아하는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고 있다.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 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이 계획들이 다 성사된다면 나는 참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로 시작되는 마지막 고별 칼럼은, 한국일보 장명수 이사의 글처럼,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시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다. 뜨거운 튀김 거죽을 입힌 얼음과자처럼, 빙하에 덮인 용암처럼, 뜨거우면서 차갑고, 차가우면서 뜨거운 글이다. 그런 글을 이 순간까지 쓸 수 있다니....엄청난 내공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이나 닥친 삶의 고비에서 장영희 교수는 불사신처럼 일어났다. 첫 돌 며칠 전에 몸이 펄펄 끓으면서 시작된 척추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1급 장애인이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업어서 병원과 학교를 데리고 다닌 어머니와 함께, 상급 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장애 학생을 받아주지 않는 학교를 쫓아다니며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사정했던 아버지 장왕록 교수와 함께 장애를 장하게 이겨내었다. 평소 아버지가 보여주신 그 자세 그대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3년을 준비해 거의 완성한 박사학위 논문을 갑자기 도둑에게 잃어버려 혼절했지만 다시 깨어나 2년 동안의 노력 끝에 박사학위 논문을 다시 만들어 학위를 받아냈다. 2001년 미국 체류 때는 아파트의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늑장 수리한 부동산 회사와 3주간의 투쟁 끝에 승리해 현지 언론이 장애인의 권익 옹호에 기여한 ‘작은 영웅으로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정말로 장 교수의 표현대로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는 자세로 고난을 이겨왔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박사학위 논문을 도난당하고 나서 다시 깨어나 얻은 깨달음을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이 말 그대로 극복하고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그녀는 조용히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가장 최근에 번역돼 나온 <이름 없는 너에게>라는, 벌리 도허티라는 영국여자가 쓴 장편소설에서도, 가족간의 몰이해와,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역설적인 가족관계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계기를 열어주는 작품을 꼼꼼하게 번역했고,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이 한국을 소재로 쓴 장편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아버지의 뒤를 이어 36년 만에 완역했고,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영역했다. 너무나 작아져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아버지에 대한 보석같이 빛나는 이야기인 미국작가 다니엘 월러스의 소설 <큰 물고기>를 번역해 우리 곁에 가져다 주었다. <종이시계><톰 쏘여의 모험> <피터 팬> <바너비 스토리>도 그녀의 번역작품이다. 한국인들의 아버지와 함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인'스칼렛'을 공동 번역했다. '우리 딸은 스칼렛 같은 아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극복해낸다'는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장영희 교수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항상 그 이상을 이루었다.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가 아닐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젠 됐다, 안도의 한숨 몰아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 장애이든, 인간관계 장애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애이든”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 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은 모두 폐부를 찌른다. 그녀의 성취는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장영희로서,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여성 장영희로서의 성취다. 장영희가 좋아한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어느 성공회 주교의 글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마지막 시도로,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에서처럼 그는 자신의 변화로 가족도 바꾸고 세상의 변화도 이끌어내었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칼럼에서 이렇게 조용한 결의를 내비쳤다. 지금 수술대에 누워있을지도 모를 장영희 교수가 이 마지막 말에 대한 약속을 우리들에게 지킬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아울러 하느님이 계시다면 “하느님 정말 너무합니다”라는 울분과 비통의 목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지 않도록 장영희 교수를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원하고 싶다.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글의 힘, 말의 힘, 문학의 힘이 너무 큰 감동의 떨림이기에 그러한 떨림이 없어지는 시간을 상상하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강의를 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모 신문에 토요일마다 연재해 온 <문학의 힘>이란 코너에서 문득문득 깜짝 놀라게 하는 지성의 힘을 보여주어 폭넓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장영희 교수, 강력한 주의·주장 대신에 읽는 이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덥히는 일상의 에피소드로 깊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장 교수가 다시 자신에게 닥친 척추암으로 글을 이어가지 못하고 병마와 싸우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문학을 좋아하고 장영희의 글을 좋아하는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고 있다.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 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이 계획들이 다 성사된다면 나는 참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로 시작되는 마지막 고별 칼럼은, 한국일보 장명수 이사의 글처럼,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시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다. 뜨거운 튀김 거죽을 입힌 얼음과자처럼, 빙하에 덮인 용암처럼, 뜨거우면서 차갑고, 차가우면서 뜨거운 글이다. 그런 글을 이 순간까지 쓸 수 있다니....엄청난 내공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이나 닥친 삶의 고비에서 장영희 교수는 불사신처럼 일어났다. 첫 돌 며칠 전에 몸이 펄펄 끓으면서 시작된 척추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1급 장애인이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업어서 병원과 학교를 데리고 다닌 어머니와 함께, 상급 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장애 학생을 받아주지 않는 학교를 쫓아다니며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사정했던 아버지 장왕록 교수와 함께 장애를 장하게 이겨내었다. 평소 아버지가 보여주신 그 자세 그대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3년을 준비해 거의 완성한 박사학위 논문을 갑자기 도둑에게 잃어버려 혼절했지만 다시 깨어나 2년 동안의 노력 끝에 박사학위 논문을 다시 만들어 학위를 받아냈다. 2001년 미국 체류 때는 아파트의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늑장 수리한 부동산 회사와 3주간의 투쟁 끝에 승리해 현지 언론이 장애인의 권익 옹호에 기여한 ‘작은 영웅으로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정말로 장 교수의 표현대로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는 자세로 고난을 이겨왔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박사학위 논문을 도난당하고 나서 다시 깨어나 얻은 깨달음을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이 말 그대로 극복하고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그녀는 조용히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가장 최근에 번역돼 나온 <이름 없는 너에게>라는, 벌리 도허티라는 영국여자가 쓴 장편소설에서도, 가족간의 몰이해와,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역설적인 가족관계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계기를 열어주는 작품을 꼼꼼하게 번역했고,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이 한국을 소재로 쓴 장편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아버지의 뒤를 이어 36년 만에 완역했고,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영역했다. 너무나 작아져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아버지에 대한 보석같이 빛나는 이야기인 미국작가 다니엘 월러스의 소설 <큰 물고기>를 번역해 우리 곁에 가져다 주었다. <종이시계><톰 쏘여의 모험> <피터 팬> <바너비 스토리>도 그녀의 번역작품이다. 한국인들의 아버지와 함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인'스칼렛'을 공동 번역했다. '우리 딸은 스칼렛 같은 아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극복해낸다'는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장영희 교수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항상 그 이상을 이루었다.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가 아닐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젠 됐다, 안도의 한숨 몰아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 장애이든, 인간관계 장애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애이든”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 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은 모두 폐부를 찌른다. 그녀의 성취는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장영희로서,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여성 장영희로서의 성취다. 장영희가 좋아한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어느 성공회 주교의 글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마지막 시도로,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에서처럼 그는 자신의 변화로 가족도 바꾸고 세상의 변화도 이끌어내었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칼럼에서 이렇게 조용한 결의를 내비쳤다. 지금 수술대에 누워있을지도 모를 장영희 교수가 이 마지막 말에 대한 약속을 우리들에게 지킬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아울러 하느님이 계시다면 “하느님 정말 너무합니다”라는 울분과 비통의 목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지 않도록 장영희 교수를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원하고 싶다.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글의 힘, 말의 힘, 문학의 힘이 너무 큰 감동의 떨림이기에 그러한 떨림이 없어지는 시간을 상상하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