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
이동식 |
*제29회 - " 술 "
영광도서
0
644
2016.12.01 03:44
곡식으로 술을 만드는 방법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의적(儀狄)이란 사람이란다. 어느 날 의적은 물에 담근 기장에서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게 되었는데, 그 냄새에 이끌려 맛을 보니 그때까지 맛보지 못한 고상한 맛이었다. 그는 여기서 곡식으로 술을 담그는 법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술을 담가 보니 과연 천하 진미였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나 혼자만 먹을 수가 있겠는가." 그는 당시 임금인 우에게 헌상했다. 우는 그 술을 받아 마셨다. 감미로운 향기가 코를 찔렀다. 과연 천하의 진미였다. 한 잔 한 잔 마시는 동안 황홀경에 빠져 마침내 잠이 들었다. 깨고 나서 자기는 반나절쯤 잔 줄 알았는데, 주위에 물어보니 이틀 밤낮이 지났다는 것이다. 너무 놀란 우 임금은 "너무 맛이 있구나. 이렇듯 맛이 좋으니 경계하지 않으면 집안을 망치는 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속출하겠다"고 하며 의적에게는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본인도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전설상의 우 임금처럼 의지가 강하지 않은 일반인들이야 어찌 술을 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번 시작하면 달콤함이 끝이 없어 기어이 술단지를 다 비워야 직성이 풀리지 않던가? 그러니까 일단 시작하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일차에 곤드레만드레 먹는 것도 모자라서 2차, 3차를 가다가 기어코 몸이 쓰러져야 술을 멈추게 된다.
나그네 주인이여 평안하신고
곁에 앉힌 술 단지 그럴법하이
한 잔 가득 부어서 이리 보내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저 달 마시자
오늘 해도 저물고 갈 길은 머네
꿈 같은 나그네 길 멀기도 하다.... 공초 오상순/한잔 술
사람의 주량은 다 다르다고 한다. 체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량에는 체력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골계전'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전국 시대 초엽,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초(楚)나라의 침략을 받은 위왕은 언변이 좋은 순우곤을 조(趙)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청했다. 이윽고 순우곤이 10만의 원군을 이끌고 돌아오자 초나라 군사는 밤의 어둠을 타서 철수하고 말았다. 전화 (戰禍)를 모면한 위왕은 크게 기뻐했다. 이어 주연을 베풀고 순우곤을 치하하며 물었다.
"그대는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고? "
"신(臣)은 한 되[升]를 마셔도 취하옵고 한 말[斗]을 마셔도 취하나이다. "
"허, 한 되를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말을 마실 수 있단 말인고?"
"예, 경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는 뜻이옵니다.
만약 고관대작(高官大爵) 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신다면 두려워서 한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오며, 또한 근엄한 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마신다면 자주 일어서서 술잔을 올려야 하므로 두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옵니다.
옛 벗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마신다면 그땐 대여섯 되쯤 마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동네 남녀들과 어울려 쌍륙(雙六:주사위 놀이)이나 투호(投壺:화살을 던져 병 속에 넣는 놀이)를 하면서 마신다면 그땐 여덟 되쯤 마시면 취기가 두서너 번 돌 것이옵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취흥이 일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지고(杯盤狼藉)' 집 안에 등불이 꺼질 무렵 안주인이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신(臣) 곁에서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헤칠 때 색정적(色情的)인 향내가 감돈다면 그땐 한 말이라도 마실 것이옵니다. "
그러면서 순우곤은 주색을 좋아하는 위왕에게 이렇게 간했다.
"전하,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酒極則亂 樂極則悲 萬事盡然)'고 하였사오니 깊이 통촉하시오소서."
위의 고사는 너무 어지럽게 술을 마시다가 난잡한 상황이 되는 '배반낭자' [杯盤狼藉]라는 성어를 설명하는 고사로서 지나친 술자리에 대한 경고용으로 자주 인용된다. 순우곤의 경고를 들은 위왕은 이후 철야로 주연을 베푸는 것을 삼갔다고 하며, 순우곤을 제후의 주객(主客:외국사신을 접대하는 관리의 우두머리)으로 삼아 왕실의 주연이 있을 때는 꼭 곁에 두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근현세를 풍미하는 선비로서 이름이 높았던 동탁 조지훈 선생은 평소 술마시는 단계를 18단계로 구분했는데, 1단계부터 9단계까지는 술을 마시는 종류로서
1단계:불주(不酒)-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단계:외주(畏酒)-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3단계:민주(憫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단계:은주(隱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단계: 상주(商酒)-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6단계: 색주(色酒)-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7단계: 수주(睡酒)- 잠이 안 와서 마시는 사람.
8단계: 반주(飯酒)-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9단계: 학주(學酒)- 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酒卒)
으로 구분을 해놓고는 정작 술의 단계는 다시 9단계로 구분했는데 이를 1단으로부터 다시 매긴다면
주도 초단은 입문으로서 애주(愛酒), 곧 술을 취미로 마시는 사람이며,
2단은 주객(酒客)으로서 嗜酒(기주), 곧 술의 미에 반해 술을 즐기는 사람이며,
3단은 주호(酒豪)로서 耽酒(탐주), 곧 술의 진경을 터득해 술을 탐하는 사람이며,
4단은 주광(酒狂)으로서 暴酒(폭주), 곧 마구 마셔대는 사람이며
5단은 주선(酒仙)으로서 長酒(장주), 곧 오래 오래 마시면서 삼매경에 접어드는 사람이며
6단은 주현(酒賢)으로서 惜酒(석주), 곧 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한방울도 아까와하는 사람이며
7단은 주성(酒聖)으로서 藥酒(약주), 곧 마시나 안마시나 상관없이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이며,
8단은 주종(酒宗)으로서 觀酒(관주), 곧 술을 보고 좋아하되 너무 마셔서 이제는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사람이며,
마지막 9단은 廢酒(폐주), 곧 술로 말미암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을 가르치는데, 이미 죽은 사람이므로 호칭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동양이나 우리나라에서 술에 관한 한 이야기가 끝이 없다. 술을 잘해서 잘된 사람도 많지만 술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
최근 모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간부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먹다가 심한 욕설을 했느니 안했느니 하면서 논란이 그치질 않는다. 우리는 그 진실을 알지 못하고 또 진실규명도 쉽지는 않다. 심정적으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라는 말이 생각난다고나 할까? 해당 의원은 그 전부터 술에 관한 '화려한' 경력이 있어서 더욱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 같고, 사실 여부가 어떻든 당사자로서는 큰 불명예이며,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국정감사 기간동안 피감기관의 간부들과 술자리를 벌인데 대한 문제는 당연히 거론되어야 한다. 다만 이 모든 소동이 결국 한번 시작되면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고 기어이 끝장을 보려고 하는 술 자체의 속성과, 술꾼들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 때문임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옛 사람들이 술에 대해 경계를 하지 않던가? 만약 이들의 옆자리에 순우곤이 있었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텐데.
조선조 중종 때 지제교(知製敎) 이행(李荇)이란 사람이 주계(酒誡)를 지어 바쳤는데,
“아, 술의 유화(流禍)는 빠지기 쉬워도 구제하기는 어려우니, 나라를 망치고 몸을 망치는 것이 항상 이 때문이다. 예로부터 술을 경계하여 금한 사람은 보존하였고 술에 빠진 사람은 멸망하였는데, 방책(方策)에서 상고해 보면 득실(得失)이 함께 기재되어 있으므로 내가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오히려 능히 알고 있을 것이다. 옛날에 의적(儀狄)이 술을 만들매 맛이 감미롭자 대우(大禹)가 먼 장래를 염려하여 소원(疏遠)시켜 끊어 버렸으며, 또한 매방(妹邦)이 술에 탐닉(耽溺)하매 무왕(武王)이 걱정하여 주고(酒誥)를 지었으니, 성인(聖人)이 세상을 근심하고 재화를 염려함이 깊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대소 신민을 보건대 술을 경계하는 사람은 적고 마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아서 차츰차츰 빠져들어 이것이 풍속을 이루었고 덕을 행하는 사람이 없으며, 술에 빠져 본성을 잃게 되어도 스스로 뉘우칠 줄을 모르니, 이를 경계하지 않는다면 말류(末流)에 가서는 어찌되겠는가? (후략)
라고 하였다. 후세에 퇴계선생이 '주계(酒誡)'를 지었는데
아! 술이 사람을 심하게 해침이여.
내장을 상하게 하여 질병이 생기게 하고
성품을 미혹되게 하여 덕(德)을 잃게 하도다.
개인적으로는 몸을 해치고
국가적으로는 나라를 넘어지게 하도다.
내가 그 해독(害毒)을 경험했거늘
그대는 그 구덩이에 떨어졌구나.
그것을 막고자 주계(酒誡)를 지으니
어찌 함께 힘쓰지 아니하리요
힘써 제지하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니라.
라며 지나친 술을 경계하도록 했다. 도학자인 퇴계도 그 해독을 경험했다고 하니 속인들이야 정말 얼마나 쉽게 '술독'(酒壺)에 빠져 '술독'(酒毒)에 해를 입을 것인가?
그렇다고 애초부터 우리는 속인이라며 포기하지 말일은 아니다. 술자리에 언제나 순우곤을 데려다놓고 술을 마실 수는 없는 일. 남들, 특히 높은 사람들이 술 때문에 체면 구기고 궁색해지는 것을 옆에서 잘 보고, 우리는 그런 꼴을 당하지 않도록 모름지기 다시 옷깃을 여밀 일이다.
그러나 전설상의 우 임금처럼 의지가 강하지 않은 일반인들이야 어찌 술을 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번 시작하면 달콤함이 끝이 없어 기어이 술단지를 다 비워야 직성이 풀리지 않던가? 그러니까 일단 시작하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일차에 곤드레만드레 먹는 것도 모자라서 2차, 3차를 가다가 기어코 몸이 쓰러져야 술을 멈추게 된다.
나그네 주인이여 평안하신고
곁에 앉힌 술 단지 그럴법하이
한 잔 가득 부어서 이리 보내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저 달 마시자
오늘 해도 저물고 갈 길은 머네
꿈 같은 나그네 길 멀기도 하다.... 공초 오상순/한잔 술
사람의 주량은 다 다르다고 한다. 체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량에는 체력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골계전'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전국 시대 초엽,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초(楚)나라의 침략을 받은 위왕은 언변이 좋은 순우곤을 조(趙)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청했다. 이윽고 순우곤이 10만의 원군을 이끌고 돌아오자 초나라 군사는 밤의 어둠을 타서 철수하고 말았다. 전화 (戰禍)를 모면한 위왕은 크게 기뻐했다. 이어 주연을 베풀고 순우곤을 치하하며 물었다.
"그대는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고? "
"신(臣)은 한 되[升]를 마셔도 취하옵고 한 말[斗]을 마셔도 취하나이다. "
"허, 한 되를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말을 마실 수 있단 말인고?"
"예, 경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는 뜻이옵니다.
만약 고관대작(高官大爵) 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신다면 두려워서 한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오며, 또한 근엄한 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마신다면 자주 일어서서 술잔을 올려야 하므로 두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옵니다.
옛 벗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마신다면 그땐 대여섯 되쯤 마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동네 남녀들과 어울려 쌍륙(雙六:주사위 놀이)이나 투호(投壺:화살을 던져 병 속에 넣는 놀이)를 하면서 마신다면 그땐 여덟 되쯤 마시면 취기가 두서너 번 돌 것이옵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취흥이 일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지고(杯盤狼藉)' 집 안에 등불이 꺼질 무렵 안주인이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신(臣) 곁에서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헤칠 때 색정적(色情的)인 향내가 감돈다면 그땐 한 말이라도 마실 것이옵니다. "
그러면서 순우곤은 주색을 좋아하는 위왕에게 이렇게 간했다.
"전하,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酒極則亂 樂極則悲 萬事盡然)'고 하였사오니 깊이 통촉하시오소서."
위의 고사는 너무 어지럽게 술을 마시다가 난잡한 상황이 되는 '배반낭자' [杯盤狼藉]라는 성어를 설명하는 고사로서 지나친 술자리에 대한 경고용으로 자주 인용된다. 순우곤의 경고를 들은 위왕은 이후 철야로 주연을 베푸는 것을 삼갔다고 하며, 순우곤을 제후의 주객(主客:외국사신을 접대하는 관리의 우두머리)으로 삼아 왕실의 주연이 있을 때는 꼭 곁에 두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근현세를 풍미하는 선비로서 이름이 높았던 동탁 조지훈 선생은 평소 술마시는 단계를 18단계로 구분했는데, 1단계부터 9단계까지는 술을 마시는 종류로서
1단계:불주(不酒)-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단계:외주(畏酒)-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3단계:민주(憫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단계:은주(隱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단계: 상주(商酒)-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6단계: 색주(色酒)-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7단계: 수주(睡酒)- 잠이 안 와서 마시는 사람.
8단계: 반주(飯酒)-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9단계: 학주(學酒)- 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酒卒)
으로 구분을 해놓고는 정작 술의 단계는 다시 9단계로 구분했는데 이를 1단으로부터 다시 매긴다면
주도 초단은 입문으로서 애주(愛酒), 곧 술을 취미로 마시는 사람이며,
2단은 주객(酒客)으로서 嗜酒(기주), 곧 술의 미에 반해 술을 즐기는 사람이며,
3단은 주호(酒豪)로서 耽酒(탐주), 곧 술의 진경을 터득해 술을 탐하는 사람이며,
4단은 주광(酒狂)으로서 暴酒(폭주), 곧 마구 마셔대는 사람이며
5단은 주선(酒仙)으로서 長酒(장주), 곧 오래 오래 마시면서 삼매경에 접어드는 사람이며
6단은 주현(酒賢)으로서 惜酒(석주), 곧 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한방울도 아까와하는 사람이며
7단은 주성(酒聖)으로서 藥酒(약주), 곧 마시나 안마시나 상관없이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이며,
8단은 주종(酒宗)으로서 觀酒(관주), 곧 술을 보고 좋아하되 너무 마셔서 이제는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사람이며,
마지막 9단은 廢酒(폐주), 곧 술로 말미암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을 가르치는데, 이미 죽은 사람이므로 호칭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동양이나 우리나라에서 술에 관한 한 이야기가 끝이 없다. 술을 잘해서 잘된 사람도 많지만 술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
최근 모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간부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먹다가 심한 욕설을 했느니 안했느니 하면서 논란이 그치질 않는다. 우리는 그 진실을 알지 못하고 또 진실규명도 쉽지는 않다. 심정적으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라는 말이 생각난다고나 할까? 해당 의원은 그 전부터 술에 관한 '화려한' 경력이 있어서 더욱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 같고, 사실 여부가 어떻든 당사자로서는 큰 불명예이며,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국정감사 기간동안 피감기관의 간부들과 술자리를 벌인데 대한 문제는 당연히 거론되어야 한다. 다만 이 모든 소동이 결국 한번 시작되면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고 기어이 끝장을 보려고 하는 술 자체의 속성과, 술꾼들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 때문임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옛 사람들이 술에 대해 경계를 하지 않던가? 만약 이들의 옆자리에 순우곤이 있었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텐데.
조선조 중종 때 지제교(知製敎) 이행(李荇)이란 사람이 주계(酒誡)를 지어 바쳤는데,
“아, 술의 유화(流禍)는 빠지기 쉬워도 구제하기는 어려우니, 나라를 망치고 몸을 망치는 것이 항상 이 때문이다. 예로부터 술을 경계하여 금한 사람은 보존하였고 술에 빠진 사람은 멸망하였는데, 방책(方策)에서 상고해 보면 득실(得失)이 함께 기재되어 있으므로 내가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오히려 능히 알고 있을 것이다. 옛날에 의적(儀狄)이 술을 만들매 맛이 감미롭자 대우(大禹)가 먼 장래를 염려하여 소원(疏遠)시켜 끊어 버렸으며, 또한 매방(妹邦)이 술에 탐닉(耽溺)하매 무왕(武王)이 걱정하여 주고(酒誥)를 지었으니, 성인(聖人)이 세상을 근심하고 재화를 염려함이 깊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대소 신민을 보건대 술을 경계하는 사람은 적고 마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아서 차츰차츰 빠져들어 이것이 풍속을 이루었고 덕을 행하는 사람이 없으며, 술에 빠져 본성을 잃게 되어도 스스로 뉘우칠 줄을 모르니, 이를 경계하지 않는다면 말류(末流)에 가서는 어찌되겠는가? (후략)
라고 하였다. 후세에 퇴계선생이 '주계(酒誡)'를 지었는데
아! 술이 사람을 심하게 해침이여.
내장을 상하게 하여 질병이 생기게 하고
성품을 미혹되게 하여 덕(德)을 잃게 하도다.
개인적으로는 몸을 해치고
국가적으로는 나라를 넘어지게 하도다.
내가 그 해독(害毒)을 경험했거늘
그대는 그 구덩이에 떨어졌구나.
그것을 막고자 주계(酒誡)를 지으니
어찌 함께 힘쓰지 아니하리요
힘써 제지하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니라.
라며 지나친 술을 경계하도록 했다. 도학자인 퇴계도 그 해독을 경험했다고 하니 속인들이야 정말 얼마나 쉽게 '술독'(酒壺)에 빠져 '술독'(酒毒)에 해를 입을 것인가?
그렇다고 애초부터 우리는 속인이라며 포기하지 말일은 아니다. 술자리에 언제나 순우곤을 데려다놓고 술을 마실 수는 없는 일. 남들, 특히 높은 사람들이 술 때문에 체면 구기고 궁색해지는 것을 옆에서 잘 보고, 우리는 그런 꼴을 당하지 않도록 모름지기 다시 옷깃을 여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