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71회 - " 한국의 ‘반지의 제왕’ "

영광도서 0 749
한국판 반지의 제왕 <삼한습유>
2000년 8월 영구 런던의 특파원으로 부임해서 워터스톤이란 큰 서점체인에 들었을 때의 일이다. 이상하게도 진열창마다 똑같은 책을 진열해놓았는데, 그 책의 제목은 “the Lord of the Rings", 곧 반지의 제왕이다. 표지에는 칼을 든 중세 전사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책이기에 서점마다 진열대에 모셔놓고 있나 하는 생각에 열어보니 이상한 이름들의 주인공이 좌충우돌하는 소설 같았다. 원, 영국인들은 이런 소설이나 좋아하나 하고 지나치다 대학에 다니던 큰아들에게 애기했더니, ”유명한 반지의 제왕이란 판타지 소설인데 아빠는 그것도 모르랴“ 는 것이다. 너는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판티지 소설계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란다. 학교에서 영문학사를 배울 때도 정통적인 작품만 배우지, 판타지 소설은 전혀 접해 보지 못한 터라 알 수가 없었지만 자존심에 흠집이 가서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런 핀잔을 듣고 몇 달이 지나니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고 신문마다 기사가 크게 났다. 그리고는 멀리 뉴질랜드에서 영화를 촬영한다는 소식이 이따금 실리더니 영화가 완성되고 전 세계적으로 상영이 시작되면서 난리가 났다. 톨킨이라는 영국의 작가가 쓴 이 소설은 이미 1954년과 1955년에 각각 발표된 것으로, 영국인 등 영어권 독자들뿐 아니라 유럽의 옛 설화를 바탕으로 중간계를 설정하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신화적인 전쟁과 이 전쟁을 이끌어가는 호빗족의 영웅 프로도 배긴스의 영웅담을 장대한 규모로 그려 20세기 판타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크게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치밀한 소설적 상상력과 섬세하고 탁월한 언어적 감수성을 통해 현대 영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영국인은 이런 장대한 판타지 소설을 쓸 수 있었는데 왜 우리는 그런 소설을 쓰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회사 출판담당 기자의 옆자리를 지나가다 책을 하나 발견했다. 제목은 <삼한습유>, 2003년 6월에 나온 책이다.
제목으로 보아 옛날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 시대의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것이겠거니 하고 책을 펴보니 ‘의열녀 향랑 본전’ 이라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별 생각 없이 읽어 내려가다가 9시 뉴스 모니터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계속 읽었다. 그러고는 마지막 페이지를 볼 때까지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깜짝 놀랄 만한 걸작이었던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삼한습유>라는 책은 ‘향랑’ 이란 한 아가씨의 슬픈 사연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향랑은 300여 년 전에 1700년대 초 경북 선산에 살던 아가씨로, 17살 때 같은 마을의 14살 소년 임칠봉에게 시집을 갔으나 금슬이 좋지 않았다. 칠봉의 구타가 갈수록 심했으나 시부모가 말리지도 않아 향랑은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계모가 들어와 있어 있을 수가 없어 외삼촌한테 가서 몸을 의탁했으나, 외삼촌은 무작정 데리고 있을 수 있다면 개가를 강요했다. 향랑은 할 수 없이 다시 시집으로 돌아갔지만 남편의 구타는 더 심해졌고, 결국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 향랑은 자살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연을 접한 김소행이란 사람이 향랑의 자살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향랑이 죽은 후 다시 부활하여 다른 사람과 결혼해 잘 산다는 식으로 소설화한 것이다 이 <삼한습유>이다. 줄거리로만 보면 그냥 그렇고 그런 소설이다. 그런데 왜 이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했는가? 그것은 이 소설이 한국판 반지의 제왕인 까닭이다.

공전절후의 대규모 소설
이 소설이 향랑이라는 한 여인의 자살 사건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는 점은 앞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가는 시대 배경을 조선조에서 신라 시대로 끌고 올라간다. 그리고 향랑이라는 여인은 매우 아름답고 정절이 바른 처녀인데 부모의 고집으로 시집을 잘못 가 결국 자살까지 하게 되는 것으로 그려 독자들에게 한없는 연민과 동정심을 유발시킨다. 그런 다음 죽은 향랑이 옥황사제의 도움으로 영계에서 인간계로 나와 생전에 마음을 두었던 효렴이라는 청년에게 자서 자신이 다시 살아나 당신과 결혼하여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승낙을 받는다. 그런데 죽은 향랑을 다시 살려 인간계로 내려보내는 문제를 놓고 옥황상제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올라가 있던 뭇 사람들의 대토론이 벌어진다. 결국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하늘의 사자가 신라의 김유신 장군에게 가서 향랑과 효렴이라는 청년이 결혼할 것임을 알리고 준비를 당부한다. 이윽고 향랑의 혼사일이 되어 하늘에 올라가 있던 모든 이름 있는 여성들이 혼사를 돕는데, 이 여성들의 자리 배치가 문제가 된다. 그래서 역사에 나타난 모든 유명한 황후와 비빈, 재녀, 정절녀 등 여성들과 각종 천신 신녀 등이 각기 자리를 다투게 되고, 이것이 정리되자 드디어 혼삿길에 나서는데, 이번에는 마왕이 이를 시샘해서 군대를 동원하고 나서고, 이에 천상에 있던 모든 신과 영웅호걸, 위인들이 마음을 향해 마왕과 싸운다. 싸움은 무수한 고비를 넘은 뒤 드디어 마왕이 져서 물러가고, 결혼식이 성대하게 거행되고, 신랑 효렴은 어여쁜 향랑을 부인으로 맞이한다. 효렴은 후에 벼슬이 계속 올라가고, 이윽고 나이 들어 벼슬을 사직하고 은퇴해서 둘이 달콤한 생활을 영위하다81살이 되어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 사이에 김유신은 삼국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내가 우선 놀란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그 방대한 규모였다. 원래 우리 고전소설에 지상과 천상, 지옥과 영계를 오가는 것이 많지만, 이처럼 방대한 규모로 진행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향랑이 물에 빠져 죽은 뒤 그녀를 되살리는 과정과 결혼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역사에 나왔던 중요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이가 없다. 모두 천상계에 올라가 있다가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것이다. 천군과 마군의 싸움에서는 가장 싸움을 잘했다는 항우와 제갈공명을 비롯한 숱한 영웅들, 도교의 신들, 공자 등 유교의 위인들, 불교의 보살과 부처도 등장한다. 한마디로 동양의 위인들이 모조리 등장해 향랑을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주 간단한 스토리임에도 동양의 모든 역사적 인물이 동원되는 공전철후의 대규모 소설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놀란 것은 동양의 모든 역사적 사건과 주요 위인들의 말, 역사적 사례와 경전의 기록, 어록 등이 처음부터 끝까지 쉴 사이 없이 인용돼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이 한 편의 소설을 정독하면 동양의 역사와 문학과 종교, 사상을 모두 공부할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당시까지 전해져 온 온갖 과학기술과 우주의 원리, 세상의 이치가 다 녹아 있어 그야말로 동양의 모든 정신세계가 이 한 권에 압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향랑을 시집보내기 위해 돈 없고 행실 좋은 청년을 고를 것인가, 돈은 많지만 소문이 좋지 않은 집을 고를 것인가를 놓고 향랑의 부모가 의논을 한다.

아비 아무개가 부인과 이 문제 대해 의논하였다.
“내가 이 딸을 사랑한 지가 오래인지라 딸이 벌써 컸으니 마땅히 사위를 가려 배필을 삼아주어야 할 터이오. 지금 구혼자는 거리도 가깝고 문벌도 잘 맞는데, 하나는 가난하고 하나는 부유하구려. 사람만 보면 가난한 이가 부자보다 낫소. 혼인에서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이오, 그러나 평생 동안 가난하게 산다면 이 또한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오. 나는 여공이 부인과 상의하지 않고 딸을 유방에게 가볍게 허락한 것처럼은 하지 않겠소. 깊이 생각하여 좋은 의견을 말해 보시오.”
그의 아내가 말하였다.
“가정의 일이야 가장이 맡는 것. 지아비가 계신데 아녀자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만, 천하의 악 가운데 가난보다 심한 것은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소진은 그 아내에게서 예로 대우받지 못했고 주매신은 그의 아내에게서 버림받았습니다. 태공 같은 성인도 가난을 참지 못하고 떠나는 아내에게 부끄러웠고, 열자 같은 성인도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노래자의 처는 땔감을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했고 한유의 처는 배고프다고 울었습니다. 가장 나쁜 것이 여섯가지인데 가난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런 까닭에 자로가 슬프다고 탄식하였고, 태사공은 오랫동안 가난한데도 인의를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부끄럽게 여긴 만 하다고 했습니다.”

사위를 고르기 위해 고민하는 순간에도 고금의 가난에 대한 일화가 줄줄이 나열된다. 진나라 말기 유방이 아직 세력을 잡지 못했을 때 여공이 그의 비범함을 알아채고는 집안사람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딸을 주어 혼인케 한 것에 대해 향랑의 아버지가 언급하니, 그 어머니는 가난하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이대는데, 6국의 합종책을 펴서 대재상이 된 소진이 젊을 때 돈을 벌지 못해 집안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라든가 남편이 가난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집을 나갔다가 나중에 높은 벼슬에 오르자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한 주매신의 아내, 80세에 무왕을 만나기 전까지 너무 가난해서 부인이 집을 나간 태공망, 너무나 배가 고파 남이 보내준 음식을 먹으려고 목을 빼고 기다리던 열자의 부인이, 열자가 그 음식을 돌려보내는 바람에 남편을 원망하던 이야기 하며, 풍년이 들어서도 배가 고파 운 한유의 처 이야기, 공자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자로가 이를 공자에게 항의성으로 질문한 사례 등등 가난해서 예를 잃어버리는 사례가 한 문장 안에 다 함축되고 있다.

톨킨이 없음이 부럽지 않다.
이 소설은 1814년에 발표되었으며, 지은이는 호를 죽계라고 하는 김소행이란 사람이다. 병자호란 때 화친을 반대했던 김상헌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식겸으로 문장이 뛰어났다고 한다. 집안은 안동 김씨로 당시 떵떵 울리는 집안이었지만 증조부가 서출이었던 까닭에 한 평생 출세를 못하고 첨지중추부사라는 낮은 관직에 오른 것이 전부이지만 95살까지 살았다. 신분은 비록 미천했지만 당대 내노라하던 홍석주, 김매순, 홍길주 등의 문인과 폭넓게 교유를 해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발간 당시부터 절찬을 받았다고 한다. 친구인 홍길주는 다음과 같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학문은 천지, 일월, 성신의 도수, 성명, 이기의 깊은 이치, 예악, 병융, 충의, 효열의 성대함과 인물, 귀신, 선석, 요마의 정에서 따오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사건은 요순 삼대 이래도 제왕, 후비, 성철, 현능, 충신, 정녀, 지사, 맹장 등의 사적에서 엮어 오지 않은 것이 없다. 그 글은 육경, 삼사, 백가의 말과 시소와 가곡, 거리의 속된 상말과 배우의 우스개 소리를 포함하지 않음이 없었다. 대저 몇 권의 책으로 한 여자의 일을 서술하면서도 그 망라한 바가 이와 같으니 진실로 천하의 기이한 재주라고 하겠다.”

이 말을 보면 얼마나 방대한 내용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속설에 의하며 죽계 김소행은 단 일주일 밤낮으로 이 소설을 구술해서 옆에서 받아 적은 것이라고 하니, 과연 영감이 한 곳에 모여 한국 소설사에, 한국 정신사에 없는 큰 일을 해낸 것이라고 하겠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서 한국에 톨킨이 없음을 한탄하게 않게 되었다. 톨킨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를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 소설이 한문이라는 우리 안에 갇혀 있었던 탓에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장르를 신마소설이라고 한다는데, 영어 용어인 판타지 문학보다도 더 구체적이지 않은가? 일단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전 동양의 역사가 일목요연해진다. 거대한 역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동양인들의 정신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새롭게 알게 된다. <반지의 제왕>이 유럽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서양인들의 신마소설이라면 <삼한습유>는 전 동양의 역사와 이념과 가치체계를 포괄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이런 소설을 알기는커녕 배우지도 못하고 지내온 것이 부끄럽고 분노가 앞선다.

우리는 그동안 왜곡된 교육을 받아 잘못된 생각을 해왔다. 한자는 중국 글자이며 한문으로 쓰여진 글은 우리 문학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이제 일반인들이 한문을 읽을 줄은 모르게 되어버렸으니 일제 시대 이전에 쓰인 글들은 읽고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삼한습유>라는 소설을 번역본으로나마 읽고 나니, 우리는 이러한 소설도 모르면서 우리나라에 문학이 없다고 한탄을 해온 것이 아닌가, 한글로 된 작품만을 우리 소설로 인정하다 보니 우리 문학사는 이광수와 최남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되어 겨우 70~80년으로 왜소해진 것이 아닌가, 우리 역사와 지성의 르네상스였던 18~19세기에 쓰여진 그 많은 문학작품들이 모두 다 사장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감히 책 선전을 하건대 <삼한습유>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끄러워하고 놀라고 기뻐하기 바란다. 그리고 서점에서도 이 책을 선전하고 진열장에 꼭 진열해주길 바란다. 이 책이야말로 우리 한국인들이 자랑할 만한 동양 문학의 금자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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