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77회 - " 우리에게 없는 것 "

영광도서 0 923
일본의 전통 문화를 세계에 전한 한 권의 책
도고 헤이하지로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연합함대가 러시아 본국에서 파견한 발틱 함대를 대한해협에서 격파하고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한국을 보호국으로 흡수한 다음해인 1906년, 미국 뉴욕에서 영어로 된 책이 한 일본인 학자에 의해 발간됐다. 저자는 당시 보스턴 박물관의 동양학부장을 지낸 오카쿠라 텐신, 책의 제목은 ‘The Book of Tea', 곧 ’다도서‘였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차는 처음에는 약으로 시작됐다가 음료수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8세기에 와서 점잖은 오락의 하나로 시의 영역에 들어왔다. 그런데 일본은 15세기에 이 차를 미학의 종교라고 할 다도로 격상시켰다. 다도는 매일 매일의 존재라는 엄격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에 대한 찬미를 바탕에 둔 종교적 의식이다. 다도는 순결과 조화, 상호박애, 사회적 질서 등을 심어준다. 다도는 인생이라고 하는 불가능의 세계에서 뭔가 가능한 것을 성취하도록 하는 부드러운 시도이기에 본질적으로는 불완전에의 숭배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책은 그 뒤로부터 오늘날까지 100년 동안 일본의 다도를 서양인들, 아니,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가장 훌륭한 책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도 “아마도 다도를 통해 일본의 전통 문화를 가장 재미있고 매력 있게 설명하고 해설한 책”이라는 한 서평처럼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일본의 다도, 아니,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의 본질을 널리 알리는 선전도구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계속에서 조금 더 읽어보자.

“... 다인들은, 예술이란 그 예술을 실생활에 반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며 수련을 거듭했습니다. 다실에서 도달할 수 있었던 고도의 세련된 정신으로 일상생활가지 규제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도록 인내를 익혔고, 대화는 주위와의 조화를 손상하지 않도록 훈련하였으며, 옷의 모양이나 색은 물론 자세, 걸음걸이까지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을 생활화하도록 하였습니다. 스스로를 먼저 아름답게 가꾸어야 아름다움에 진실로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결국 다인들은 순수한 예술 이상의 것, 나아가 ‘예술’ 그 자체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곧 다도에서 말하는 심미주의의 선입니다. ...”

이 책인 서양인들을 매혹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때까지 계속 활대 팽창하기만 하던 서양의 힘에 맞춰 자신들의 문화나 사상이 모두 동양에 우월하다고 생각하던, 그래서 동양을 전혀 알지 못하던 서양인들에게 당신들의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일갈하며 동양, 특히 일본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게 한 때문이었으리라. 그것도 ‘다도’라고 하는 지극히 간결하고 단조로운 음차법을 마치 위대한 종교나 되는 것처럼 분석하고 설명하고 평가한 것이다.

“... 다실에는 중복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장식을 위한 대상물은 빛깔이나 의장에서 비교되지 않도록 선택되어야 한다. 살아 있는 꽃이 있다면 그림의 꽃은 허용되지 않는다. 탕관이 둥글다면 물주전자는 모난 것이어야 한다. 향로나 꽃병을 도꼬노마에 놓는 데 있어서도 그 공간은 2등분 하면 안 되니 한복판에 놓지 말아야 한다. 실내가 단조롭다는 느낌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도꼬노마의 기둥은 다른 종류의 나무를 써야 한다. 서양의 응접실에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소용없는 중복이 많다. 옆에서 혹은 맞은 편에서 낯선 전신상이 뚫어지게 보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참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조각이나 그림의 인물과 살아 있는 인물 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 때론 말없는 쪽이 진짜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성찬의 식탁에 앉았음에도 벽에 걸린 물고기나 과일의 정교한 그림 때문에 남몰래 소화장애를 일으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런 마음의 교란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일까. 다실은 이런 비속적인 중복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빈 자리이어야 한다. ...”

일본 문화가 세계에서 대접받는 이유
1862년생이니까 성장기에 메이지 유신을 몸으로 겪은 오카쿠라 텐신은 불과 27세에 도쿄미술학교 교장에 취임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나고 뜻도 높은 청년이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의 침략과 러일전쟁의 승리 등으로 국민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고 있었고 이런 추세에 따라 일본의 문화계도 일본과 일본인의 실상. 그리고 일본 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의식하고 이의 본직을 규명하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이미 1891년에 미야케 유키네의 <진선미 일본인>과 <위악추 일본이>이 그 시작을 알린 뒤 1894년에 우치무라 간조의 <일본과 일본인>, 1899년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등 이른바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일본인론’ 서적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 바로 이 오카무라 텐신의 로서, 특히 영어로 쓰여지고 미국에서 발간되어 그러지 않아도 점점 부강해지는 위세에 맞춰 일본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하던 일본인들에게 더 없이 구미에 맞는 재로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오카쿠라 텐신은 27살인 1878년 도쿄미술학교 교장이 된 이래 학교에 일본화과를 설치하고 나서 일본 미술의 근대화와 국제화를 도모하였다. 당시까지 유행하던 귀족 취향의 장벽화를 바탕으로 새로 들어온 서구 미술과 그 이론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새로이 일본화라는 전통을 확립했다. 일본 미술원도 창립했다. 그렇게 해서 일본화풍이라는 새로운 미술이 탄생하자 오카쿠라는 이를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주도했다. 앞에서 설명한 다도에 관한 책을 발표하기 3년 전인 1903년, <동양의 이상>이라는 책을 미국 뉴욕에서 영어로 먼저 출간해 동양, 특히 일본 미술의 우수성을 부르짖었다. 그는 미술사적 관점에 입각해 아시아의 하나됨을 확인한 뒤, 그에 근거해 동양의 미술이 서양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일본의 경제가 세계에 침투해 들어가던 때 일본이 ‘경제적인 동물’이라는 그리 좋지 않은 별명을 달고 다닌 적이 있지만 기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일본과 일본인, 그들의 문화가 상당히 대접을 받는 것은 바로 오카쿠라 텐신이 쓴 이 덕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보다 백 년쯤 앞선 일본의 대중화인 우키요에는 유럽에 건너가 유럽 인상주의 화단에 영향을 주었고, 일본의 문화는 유럽에서 이국적이면서도 고상한 문화로 인정을 받았다. 오페라 ‘나비 부인’도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문화적인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릴 책 한권
우리에게는 우카쿠라 텐신이 왜 없을까? 이미 미국과 교류한 지도 한 세기가 더 지났고 미국에 유학하는 학생들이 초등학생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한 해에 몇만 명을 헤아리고 그들의 학비로 몇조원의 돈이 들어가는데, 왜 오카쿠라 텐신처럼 우리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영어로 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가? 우리 한국 문화가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순박한 마음을 바탕으로 동양의 그 어느 형식적인 예술도 따라오지 못할 높은 경지를 이루었음을 설명하는, 그것을 영어로 전 세계인들에게 전해줄 책이 왜 없는 것일까? 왜 같은 책이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나오지 않는가?
요즈음 한류 붐을 타고 저마다 한국과 한국 문화를 팔아먹기에 바쁘지만, 정작 우리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누구나 알 수 있고 재미있게 쓴 책은 한 권이라도 나온 것이 있는가? 그저 돈 벌어먹기에 바쁘지, 그 이전에 우리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돌려놓을 그런 책 하나를 아직도 못 만들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것은 꼭 정부가 나서야만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구든 웬만큼 배우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다. 못 하더라도 유능한 사람이 번역을 하면 된다. 한국과 한국인을 이해하고 한국 문화를 사랑하되 서양의 문화와 비교해서 그 장점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책, 그런 책이 필요하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들이 펼쳐졌다. 남과 북이 만난다는 기쁨에 정부나 사회나 정신이 없는 것 같다. 나라를 찾은 지 60주년이 되었으되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당연한 통일에의 몸부림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과연 문화적으로 독립돼 있는가? 우리는 우리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는 한국인임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미학적, 예술적인 자랑을 갖고 있는가? 그것을 세계에 알릴 수단은 갖고 있는가? 도대체 문화의 광복절은 언제 오는 것인가?

이제 이 세상에 나온 지 근 100년이 되었다. 너무 늦었지만, 우리도 한국의 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들이 가꿔 온 우주관, 자연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인간을 사랑하는 법,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법, 나 하나만이 아니라 우리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온 우리의 전통, 이런 것들이 사르르 녹아 있는 아주 향기로운 한국인의 차를 세계인들에게 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많은 천재, 수재들이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고, 지금도 일 년에 몇 조원을 유학 경비로 쓰고 있는 이 나라에서 그런 책 하나가 아직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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