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이동식
1953년 생.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후 1977년 KBS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현장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초대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 과학부장, 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문화담당....< 더보기 >

*제81회 - " 노벨 문학상을 기대하려면 "

영광도서 0 1,016
우리 문학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예년에 비해 한국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여 수상 후보로 거론된 고은 씨나 황석영 씨 집에 언론사 기자들이 죽치며 발표를 기다렸다. 그러나 수상자는 영국의 극작가에게 돌아갔고, 고은 씨가 오히려 기자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진풍경이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다.
노벨 문학상, 이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목을 매고 있으며, 일본은 두 차례나 받았는데 우리는 아직 받지 못하고 있는가? 과연 받을만한 작가들이 받았는가? 하고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노벨 문학상은 전 세계가 알아주는 유일한 국제 문학상으로서 누구든 침을 흘리게 되어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노벨 문학상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런 면에서 기대를 많이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리 희망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 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오고 있는 제니퍼 리는 외국, 특히 미국인들에게 한국 문학은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일본과 중국이 상당히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며 다가간 데 비해 한국 문학은 어디서고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게 미국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니퍼 리는 한국 문학이 세계성이나 보편성보다는 개별성, 특정성이 두드러지고 있어 한국이란 영역을 벗어나서 느낄 수 있는 문학사적 가치가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해방과 6.25, 4.19, 5.16 그리고 IMF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경험은 그 갈등의 폭과 상처의 깊이가 너무 깊고 거대해서 그 거대함 자체가 오히려 주제의 다양한 파생과 변환을 막아 왔다는 것이다. 6.25로부터 파생된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담론의 양극화를 가져 왔으며, 대다수 주류 작가들의 에너지는 이 양극화의 칼날 아래 산업화와 민주화, 군사체제의 복합체에 저항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벗어나 한국적인 미학 자체만을 추구함으로써 너무 ‘한국적’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또한 대다수의 작품들이 역사적, 정치적 배경과 너무 밀착돼 있어서 이 배경을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한 외국인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그것이 작품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작품의 번역은 그 작품 번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한국 문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한국 사회와 역사, 정치지식을 소개할 수 있는 서적들이 함께 많이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번역 작업이 필요하다
문학작품은 한글로 아무리 좋은 작품을 써도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무엇보다도 잘 번역해서 출판해야 한다는 점이 기본이다. 그렇지만 번역 작업도 알고 보면 문제점투성이다.
번역은 누가 하는가? 외국어를 배운 한국인이 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이 하는 경우도 있으며, 같이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번역된 작품은 기본적으로는 외국인들이 읽고 보는 것이므로 외국인의 시각에서 번역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능한 외국인 번역가를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번역은 단순히 한국어를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에서부터 철학, 사상, 종교 등 문화 전반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소양을 갖추지 않고서는 제대로 번역이 될 리가 없다. 그렇지만 이런 번역가는 당연히 드물 수밖에 없다. 주요 언어라고 하는 영어, 불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독일어 권에서 이런 번역가는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번역자를 구할 수 없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역시 대우 문제가 한몫을 한다. 이런 번역 작업을 개인이 하기는 무척 어렵기에 정부에서 나설 수 밖에 없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번역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은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이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이들 번역가에게 주는 돈은 얼마나 될까? 한달에 백만 원 남짓이란다. 이래 가지고는 제대로 번역을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번역작업은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시행되어야 한다. 이웃 일본은 지난 45년부터 국가가 번역 사업을 지원해 90년까지 다른 나라에 2만여 종의 문학 작품을 소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79년에 들어서야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번역 사업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8백여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해 왔다. 너무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일본의 작품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 그것이 노벨 문학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30년이 안 된 1994년에 오오에 켄사부로가 다시 상을 받음으로써 일본의 문학은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의 반열로 올라섰다. 중국도 비록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중국인이지만 가오싱젠이 중국의 전통 사상을 현대인의 실존과 접목시킴으로써 상을 받았다.

번역작업에 대한 지원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이 한 해 동안 번역하는 우리나라 문학 작품의 수는 50종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하루에 수십 권의 책이 쏟아지는데 이정도로는 너무 초라하다. 번역을 늘이는 한편 번역 작품의 선정에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가 한국적인 것을 세계에 소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앞서다보니 한국 문학의 대표로 꼽는 작품들 중에서 고르게 되고, 그것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떤 작품들이 외국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꼭 우리의 시각과 입맛만이 아니라 외국인의 그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라야 노벨 문학상을 마음 놓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40여 명에 이르는 대표작가들이 찾아가서 자신들의 문학세계를 알리는 일에 나서고 있지만 더 종요한 것은 제대로 된 번역을 세계에 내놓는 일이다. 문화계와 정부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번역을 더 많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가 고민하는 것, 그것이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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