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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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제84회 - " 또 다른 ‘잃어버린 세월’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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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4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이문열 시가 해가 바뀐 후 한 신문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최근 우리 사회에 몰아친 이념의 광풍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몇 년간 미국에 머물던 이문열씨가 2006년 말 장편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를 발표한 이후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의 서문에서 소설가는 어떤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서는 것에 대해 자기들과 같은 입장이면 잘 하는 것이고, 다르면 역사의 죄인이라는 둥 매도하는 풍조를 정면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신문에 보내온 칼럼은 그런 것은 아니고 뿌리 없이 밀려온 우리의 문화 정책으로 인해 좌초하고 있는 우리 문화계의 현실을 부드럽게 고발하고 있다.
“연전 국산 영화의 스크린 쿼터가 축소될 때 영화인들이 거리에 나와 격렬하게 항의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영화산업 보호를 위한 그들의 진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한편으로 은근히 염려스럽기도 했다.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할 문화의 구매를 지나치게 제도적으로 보장받으려 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니 새삼 그때의 몰이해 또는 오만이 부끄러워진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문학작품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은 대개가 우리 창작품으로 채워져 있었고, 외국 번역물은 두셋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근래 발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반대의 역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창작문학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끼어 있는 것이 요즘 한국 문학시장의 현실이다. 우리 작가 보호를 위해 출판 쿼터 같은 것이라도 제안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렇다. 문학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각 예술 분야에서 이처럼 주종이 뒤바뀌는 사례가 다시 보편화되고 있다. 뮤지컬을 보면 해외의 것을 거액을 들여 유치하거나 그것을 우리 식으로 번안하는 것일 뿐, 애초 우리의 뮤지컬은 구경하기도 어렵다. 연극계도 한때는 우리의 희곡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새 무대에 올려지는 것을 보면 어느새 외국 것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결국은 여기서도 해외의 명품 브랜드를 들여다 판매하는 것 밖에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인가. 이문열 씨는 잘 나간다는 국산 영화에까지도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한국 영화끼리 극소수 대박에 대다수 쪽박이라는 자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다음부터가 중요하다. 이문열 씨의 말을 들어보는 것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원칙으로 말하자면 국내 독자 혹은 관객을 번역물이나 외국 작품에 뺏긴 책임은 신통찮은 콘텐츠를 제공한 작가나 재주 없는 연출가가 져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문화상품도 시장원리에 내맡겨졌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 시장 원리라며 억지로 자위할 수도 없게 되었다. 세계화한 문화상품의 수입 기준에는 질적인 담보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요즘 같은 문화예술의 수입 초과 책임을 반드시 상품의 내용물 빈약이나 질적 저하로만 돌리고, 작가나 연출가만 나무랄 수 없는 데가 있다. 그 책임을 나누어야 할 곳으로 가장 먼저 혐의가 가는 것은 이른바 문화정책의 편중이나 사회적 지원의 중복이다. 지난 십 년 우리 사회는 지식산업이니 문화적 상품이니 하며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었으나, 그 방향은 다분히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이른바 한류란 현상과 관계된 분야다...(중략)... 그 한류와 연관된 분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지나친 편중이나 중복이었느냐는 함부로 단언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10년 우리 문화의 중점이 그 방향으로 옮겨졌으며, 다른 분야, 특기 깊이 있고 세련된 콘텐츠 생산을 담당하는 기초적인 문화예술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를 느껴야 했던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다. 무엇이든 정치로부터 연역해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 또한 ‘잃어버린 세월’일 수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겉으로는 최근의 한류 붐에 마취가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그 마취약을 깨고 나서 보니까, 우리의 문화기반은 아직도 그대로인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더 심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서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연전 국산 영화의 스크린 쿼터가 축소될 때 영화인들이 거리에 나와 격렬하게 항의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영화산업 보호를 위한 그들의 진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한편으로 은근히 염려스럽기도 했다.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할 문화의 구매를 지나치게 제도적으로 보장받으려 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니 새삼 그때의 몰이해 또는 오만이 부끄러워진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문학작품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은 대개가 우리 창작품으로 채워져 있었고, 외국 번역물은 두셋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근래 발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반대의 역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창작문학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끼어 있는 것이 요즘 한국 문학시장의 현실이다. 우리 작가 보호를 위해 출판 쿼터 같은 것이라도 제안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렇다. 문학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각 예술 분야에서 이처럼 주종이 뒤바뀌는 사례가 다시 보편화되고 있다. 뮤지컬을 보면 해외의 것을 거액을 들여 유치하거나 그것을 우리 식으로 번안하는 것일 뿐, 애초 우리의 뮤지컬은 구경하기도 어렵다. 연극계도 한때는 우리의 희곡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새 무대에 올려지는 것을 보면 어느새 외국 것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결국은 여기서도 해외의 명품 브랜드를 들여다 판매하는 것 밖에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인가. 이문열 씨는 잘 나간다는 국산 영화에까지도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한국 영화끼리 극소수 대박에 대다수 쪽박이라는 자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다음부터가 중요하다. 이문열 씨의 말을 들어보는 것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원칙으로 말하자면 국내 독자 혹은 관객을 번역물이나 외국 작품에 뺏긴 책임은 신통찮은 콘텐츠를 제공한 작가나 재주 없는 연출가가 져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문화상품도 시장원리에 내맡겨졌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 시장 원리라며 억지로 자위할 수도 없게 되었다. 세계화한 문화상품의 수입 기준에는 질적인 담보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요즘 같은 문화예술의 수입 초과 책임을 반드시 상품의 내용물 빈약이나 질적 저하로만 돌리고, 작가나 연출가만 나무랄 수 없는 데가 있다. 그 책임을 나누어야 할 곳으로 가장 먼저 혐의가 가는 것은 이른바 문화정책의 편중이나 사회적 지원의 중복이다. 지난 십 년 우리 사회는 지식산업이니 문화적 상품이니 하며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었으나, 그 방향은 다분히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이른바 한류란 현상과 관계된 분야다...(중략)... 그 한류와 연관된 분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지나친 편중이나 중복이었느냐는 함부로 단언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10년 우리 문화의 중점이 그 방향으로 옮겨졌으며, 다른 분야, 특기 깊이 있고 세련된 콘텐츠 생산을 담당하는 기초적인 문화예술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를 느껴야 했던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다. 무엇이든 정치로부터 연역해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 또한 ‘잃어버린 세월’일 수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겉으로는 최근의 한류 붐에 마취가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그 마취약을 깨고 나서 보니까, 우리의 문화기반은 아직도 그대로인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더 심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서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