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의 다섯 계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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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제85회 - " 이제 어떻게 할까?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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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4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올바로 키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문화가 외래의 문화의 분류 속에서도 휩쓸려가지 않고 제대로 커나갈 수 있을까? 외부의 물이 들어오는데 맑은 물은 빼놓고 흙탕물만 들어온다고 문을 닫아 버려야 할 것인가?
이제 그럴 수는 없다. 문을 다시 닫으면 우리의 문화는 자체적으로 질식해버리고 만다. 외래문화의 학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자기의 민족문화에 대한 신뢰감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기 민족 문화에 신뢰가 있다면 외래문화와의 접촉을 겁낼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다.
나는 그 첫걸음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서툰 외국 음악을 그냥 틀어 주지 말고 가급적이면 우리 음악을 만들어 우리의 소리, 우리의 마음을 틀어주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낙동강이나 한강이라는 큰 물줄기가 사실은 태백산의 동쪽과 서쪽의 조그만 계곡 아주 작은 시냇물에서부터 시작하듯 텔레비전 드라마 하나, 라디오 드라마 하나, 연극 하나, 무용 하나에서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고 들려주는 데서부터 우리 문화의 큰 강이 형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감정, 우리의 느낌, 우리의 사상이 들어간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작은 인식으로부터 우리 문화는 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어설픈 외국 노래를 그냥 들려주거나 듣거나 부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부터 시작하자.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려면 외국 노래가 아니라 우리 노래로 축하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자. 우리의 음악이 서양 음악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서로 종류와 표현방식이 다른데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부터 해보자. 라디오에서 음악을 편성할 때 클래식과 우리 음악을 함께 방송하는 ‘열린 음악회’를 만들어주어,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음악도 배울 수 있도록 하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신세대들의 신국악, 신창악 작품을 자주 연주해주고 들려주는 시간을 확대해 나가자. 우리의 음악회에서도 베토벤이나 브람스만이 아니라 우리 작곡가들의 작품을 적어도 한 곡씩은 꼭 끼워 넣어서 창작을 육성해주자. 드라마의 배경음악도 막연히 분위기만 잡는 외국음악을 들려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 삽입하는 운동을 시작하자. 외국의 음악을 들려주더라도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핵심을 들려주겠다는 태도로 노랫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먼저 잘 알아보고 나서, 그 곳을 들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취사선택하자. 청소년들이 그 노래를 듣고서 어떤 노래인지를 알 수 있도록 보다 충실하게 설명을 해주자.
그렇게 해 나가면 슈베르트의 연가곡집도 우리의 아름다운 말로 재창조돼 나올 것이다. 생일축하 노래도 우리 국민들이 보다 쉽고 간편하게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이 나올 것이다. 청소년들도 죽어라 외국의 팝송만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악마의 노래를 들으려고 기를 쓰지도 않을 것이다. 드라마 배경음악의 표절 현상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정서와 마음, 사상이 담긴 우리의 노래, 우리의 음악이 되살아날 것이다. 고상한 체하고 대충 분위기만을 팔아먹는 약장사들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국내의 문화운동이 더 활발해지고 창작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우리 한 해에 몇억 달러씩 비싼 로열티를 내고 외국의 음반이나 비디오를 수입하는 현상도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문화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또한 ‘우리 음악’을 굳이 구분하고 구별하고 구석에 몰아넣어 천시하지 말고 ‘우리 음악’과 ‘서양의 전통 음악’을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즐기도록 해주어야 한다. 우리 악기로 서양 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고, 서양 악기로 우리 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으며, 혹은 그 악기들이 서로 섞일 수도 있고 또 분리되어도 좋다. 우리가 갖고 있는 우리의 정서, 우리의 박자, 우리의 사상, 우리의 가락, 우리의 장단이 서로 작품 속에서 용해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별하지 말고 한데서 놀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의 음악을 ‘국악’이란 이름으로 가둬놓아서는 안 된다. 마치 서양 음악이 주류 음악이고 우리 음악은 변두리 음악인 양 인식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 보편화라는 말 속에 우리의 전통음악이 실종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훌륭한 음악으로 숭상하고 있는 음악은 실은 서양 음악일 뿐이다. 서양 음악이 우리의 음악과 한 마당에서 용해될 때 비로소 우리의 음악도 제대로 살고 서양의 음악도 보편적인 개념에서의 음악이 될 수 있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동안 혹시 우리가 음악에 국경을 만들고 있지 않았는가 반성해보아야 할 일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서양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그로 인한 사회적인 가치 혼란, 나아가 우리 문화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요와 클래식, 고전과 현대, 국악과 양악이 국경을 허물고 한자리에서 만나는 그 날, 우리의 문화는 한류라는 민족적인 차원을 넘어서 코리아류라는 세계 속의 새 문화로 크게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럴 수는 없다. 문을 다시 닫으면 우리의 문화는 자체적으로 질식해버리고 만다. 외래문화의 학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자기의 민족문화에 대한 신뢰감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기 민족 문화에 신뢰가 있다면 외래문화와의 접촉을 겁낼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다.
나는 그 첫걸음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서툰 외국 음악을 그냥 틀어 주지 말고 가급적이면 우리 음악을 만들어 우리의 소리, 우리의 마음을 틀어주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낙동강이나 한강이라는 큰 물줄기가 사실은 태백산의 동쪽과 서쪽의 조그만 계곡 아주 작은 시냇물에서부터 시작하듯 텔레비전 드라마 하나, 라디오 드라마 하나, 연극 하나, 무용 하나에서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고 들려주는 데서부터 우리 문화의 큰 강이 형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감정, 우리의 느낌, 우리의 사상이 들어간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작은 인식으로부터 우리 문화는 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어설픈 외국 노래를 그냥 들려주거나 듣거나 부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부터 시작하자.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려면 외국 노래가 아니라 우리 노래로 축하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자. 우리의 음악이 서양 음악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서로 종류와 표현방식이 다른데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부터 해보자. 라디오에서 음악을 편성할 때 클래식과 우리 음악을 함께 방송하는 ‘열린 음악회’를 만들어주어,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음악도 배울 수 있도록 하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신세대들의 신국악, 신창악 작품을 자주 연주해주고 들려주는 시간을 확대해 나가자. 우리의 음악회에서도 베토벤이나 브람스만이 아니라 우리 작곡가들의 작품을 적어도 한 곡씩은 꼭 끼워 넣어서 창작을 육성해주자. 드라마의 배경음악도 막연히 분위기만 잡는 외국음악을 들려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 삽입하는 운동을 시작하자. 외국의 음악을 들려주더라도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핵심을 들려주겠다는 태도로 노랫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먼저 잘 알아보고 나서, 그 곳을 들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취사선택하자. 청소년들이 그 노래를 듣고서 어떤 노래인지를 알 수 있도록 보다 충실하게 설명을 해주자.
그렇게 해 나가면 슈베르트의 연가곡집도 우리의 아름다운 말로 재창조돼 나올 것이다. 생일축하 노래도 우리 국민들이 보다 쉽고 간편하게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이 나올 것이다. 청소년들도 죽어라 외국의 팝송만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악마의 노래를 들으려고 기를 쓰지도 않을 것이다. 드라마 배경음악의 표절 현상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정서와 마음, 사상이 담긴 우리의 노래, 우리의 음악이 되살아날 것이다. 고상한 체하고 대충 분위기만을 팔아먹는 약장사들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국내의 문화운동이 더 활발해지고 창작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우리 한 해에 몇억 달러씩 비싼 로열티를 내고 외국의 음반이나 비디오를 수입하는 현상도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문화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또한 ‘우리 음악’을 굳이 구분하고 구별하고 구석에 몰아넣어 천시하지 말고 ‘우리 음악’과 ‘서양의 전통 음악’을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즐기도록 해주어야 한다. 우리 악기로 서양 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고, 서양 악기로 우리 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으며, 혹은 그 악기들이 서로 섞일 수도 있고 또 분리되어도 좋다. 우리가 갖고 있는 우리의 정서, 우리의 박자, 우리의 사상, 우리의 가락, 우리의 장단이 서로 작품 속에서 용해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별하지 말고 한데서 놀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의 음악을 ‘국악’이란 이름으로 가둬놓아서는 안 된다. 마치 서양 음악이 주류 음악이고 우리 음악은 변두리 음악인 양 인식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 보편화라는 말 속에 우리의 전통음악이 실종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훌륭한 음악으로 숭상하고 있는 음악은 실은 서양 음악일 뿐이다. 서양 음악이 우리의 음악과 한 마당에서 용해될 때 비로소 우리의 음악도 제대로 살고 서양의 음악도 보편적인 개념에서의 음악이 될 수 있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동안 혹시 우리가 음악에 국경을 만들고 있지 않았는가 반성해보아야 할 일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서양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그로 인한 사회적인 가치 혼란, 나아가 우리 문화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요와 클래식, 고전과 현대, 국악과 양악이 국경을 허물고 한자리에서 만나는 그 날, 우리의 문화는 한류라는 민족적인 차원을 넘어서 코리아류라는 세계 속의 새 문화로 크게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