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
김윤환 |
*제25회 - " 독서열기가 산불처럼 번지는 세상 만들기 "
영광도서
0
506
2016.12.01 03:45
현실과 당위(當爲)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와 욕구, 수요와 공급 역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독서 행위 역시 그러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유익한 것이 독서라는 절대 평가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소홀해지고 있다.
최근 긍정적인 통계가 나와 희망적이다. 비록 통계가 만능이나 왕도는 아니지만 희망을 보는 구멍이다. 한국 성인들의 연간 독서율(1년간 1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은 76.3%다. 이는 유럽 15개국의 평균치(58%)나 미국(50.2%)보다 훨씬 높다.
산술적 수치로 보면 일단 으쓱해진다. 2004년, 우리나라 성인들의 연평균 독서량은 11권이다. 2002년에 비해 1권이 늘었으며 이는 최근 10년간 통계의 최고 기록이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비독서인구는 2002년 28%에서 2004년 23.7%로 줄었다. 이 역시 대견스러운 사회현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질(質)이다. 월 평균 3권 이상 읽는 다독자 인구 비율은 14.5%로 일본(17.7%)보다 낮다. 잡지 구독률은 유럽 15개국의 평균치 81.6%에 훨씬 못 미치는 47.6%다. 이번 조사는 문화관광부의 의뢰로 한국출판연구소가 했다. 대상은 전국의 성인 1000명과 초?중?고생 2700명이다.
독서는 한때의 센세이션이나 이벤트가 아니다. ‘동방신기’의 라이브 공연 같은 광적인 주술이 아니다. 한 때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몸을 던지는 행위가 아니다. 광기에 휩싸였다가 허탈하게 돌아서는 살풀이가 아니다.
산불끄기에서 가장 힘든 것이 땅속에 묻힌 불씨다. 지면에서 2~30센티미터 깊이의 땅속으로 번지는 열기가 가장 무섭다. 헬기를 동원해서 물을 뿌리고 사람들이 전쟁 치르듯이 사투를 벌이며 불을 끈다. 불길이 잡히고 이젠 됐다싶어 하산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산이 벌겋다. 땅속에 숨어 있었던 불씨 때문이다.
21세기는 물론 22세기 혹은 그 이후로도 지식정보사회가 이어질 것이다. 지식정보의 불씨와 열기는 책에 있다. 그것에 기반을 두지 않은 행위는 낙엽을 태우는 잠시의 이벤트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의 바닥에 두꺼운 독서 열기로 자욱해야 한다. 그 에너지는 세상을 옮기는 힘이 될 것이다.
서점 안의 풍경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각 코너별로 관심과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독서삼매에 빠진 어린이도 있다. 그 어떤 재주보다 대견한 모습이다. 세상의 건강이 보인다. 그러나 서점 바깥의 풍경은 혼돈이다. 생산이 아닌 소모의 냄새가 농후하다. 정돈이 아닌 산만의 혐의가 짙다. 세상의 우울이 보인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까지’. 이 말은 산림청이 부르짖고 있는 오래된 구호이다. 사연인즉, 산불이 빈번한 건조한 봄날이면 산림청은 초비상이다. 언제 어디서 펑 터질지 몰라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나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수목에 물이 오르고 봄비가 대지를 적신다. 그들의 고단한 비상이 해제된다. 몇 해 전 산림청 가족들의 애환을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 책의 제목은 ‘아카시아 꽃이 필 때까지’다.
독서의 열기는 아카시아 꽃이 피고 지는 것과 무관하게 뜨겁게 훨훨 퍼지길 열망한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허무하게 휘청거리더라도 땅 속에서는 책을 사랑하는 열기가 마그마처럼 끓어야 한다. (*)
최근 긍정적인 통계가 나와 희망적이다. 비록 통계가 만능이나 왕도는 아니지만 희망을 보는 구멍이다. 한국 성인들의 연간 독서율(1년간 1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은 76.3%다. 이는 유럽 15개국의 평균치(58%)나 미국(50.2%)보다 훨씬 높다.
산술적 수치로 보면 일단 으쓱해진다. 2004년, 우리나라 성인들의 연평균 독서량은 11권이다. 2002년에 비해 1권이 늘었으며 이는 최근 10년간 통계의 최고 기록이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비독서인구는 2002년 28%에서 2004년 23.7%로 줄었다. 이 역시 대견스러운 사회현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질(質)이다. 월 평균 3권 이상 읽는 다독자 인구 비율은 14.5%로 일본(17.7%)보다 낮다. 잡지 구독률은 유럽 15개국의 평균치 81.6%에 훨씬 못 미치는 47.6%다. 이번 조사는 문화관광부의 의뢰로 한국출판연구소가 했다. 대상은 전국의 성인 1000명과 초?중?고생 2700명이다.
독서는 한때의 센세이션이나 이벤트가 아니다. ‘동방신기’의 라이브 공연 같은 광적인 주술이 아니다. 한 때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몸을 던지는 행위가 아니다. 광기에 휩싸였다가 허탈하게 돌아서는 살풀이가 아니다.
산불끄기에서 가장 힘든 것이 땅속에 묻힌 불씨다. 지면에서 2~30센티미터 깊이의 땅속으로 번지는 열기가 가장 무섭다. 헬기를 동원해서 물을 뿌리고 사람들이 전쟁 치르듯이 사투를 벌이며 불을 끈다. 불길이 잡히고 이젠 됐다싶어 하산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산이 벌겋다. 땅속에 숨어 있었던 불씨 때문이다.
21세기는 물론 22세기 혹은 그 이후로도 지식정보사회가 이어질 것이다. 지식정보의 불씨와 열기는 책에 있다. 그것에 기반을 두지 않은 행위는 낙엽을 태우는 잠시의 이벤트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의 바닥에 두꺼운 독서 열기로 자욱해야 한다. 그 에너지는 세상을 옮기는 힘이 될 것이다.
서점 안의 풍경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각 코너별로 관심과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독서삼매에 빠진 어린이도 있다. 그 어떤 재주보다 대견한 모습이다. 세상의 건강이 보인다. 그러나 서점 바깥의 풍경은 혼돈이다. 생산이 아닌 소모의 냄새가 농후하다. 정돈이 아닌 산만의 혐의가 짙다. 세상의 우울이 보인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까지’. 이 말은 산림청이 부르짖고 있는 오래된 구호이다. 사연인즉, 산불이 빈번한 건조한 봄날이면 산림청은 초비상이다. 언제 어디서 펑 터질지 몰라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나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수목에 물이 오르고 봄비가 대지를 적신다. 그들의 고단한 비상이 해제된다. 몇 해 전 산림청 가족들의 애환을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 책의 제목은 ‘아카시아 꽃이 필 때까지’다.
독서의 열기는 아카시아 꽃이 피고 지는 것과 무관하게 뜨겁게 훨훨 퍼지길 열망한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허무하게 휘청거리더라도 땅 속에서는 책을 사랑하는 열기가 마그마처럼 끓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