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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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64회 - " 토지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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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펴 온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82) 선생이 지난 5월 5일 타계했다. 작가는 지난해 7월 폐에서 종양이 발견됐으나 고령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고 흥업면 매지리 자택에서 요양생활을 계속해 오다 최근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 후 일시적으로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가셨다. 대하소설 <토지>에 대해 생각한다. 여러 출판사에서 책이 발간될만큼 <토지>는 한국문학의 얼굴이다.
<토지>는 1897년부터 1917년 직후의 몇 년간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개인사와 가족사와 전체사의 대종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세계 문학의 반열에 놓아도 손색없는 한국문학의 뿌듯한 성과다.
<토지>가 보여주는 장면은 참으로 다양하고 종합적이다. 봉건적 가족 제도와 신분질서의 해체, 서구문물의 수용과 식민지 지배의 과정, 간도 생활과 민족의 이동, 독립운동의 전개와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변화 등을 초점으로 개인의 운명과 역사의 조류가 서로 침투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개항기 이래 한국 사회의 풍속에 대한 풍성한 탐구, 각양각색의 인간상의 창출, 삶의 의미와 역사의 원동력에 대한 심오한 직관은 그 격변과 진통의 시대를 살아갈 한국인의 삶을 장엄한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역사는 역사가의 의해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치밀한 조사와 상상력에 의해 쓰여지기도 한다. 박경리의 이름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될 대하소설 <토지>는 이름만 들어도 감격스럽다.
<토지>는 1969년부터 연재를 시작, 26년에 걸친, 4만 여장 분량의 작품으로 박경리 개인은 물론 한국 문학의 기념비다. 거대한 원고지 분량에 걸맞게 7백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시간적으로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라는 한국사회의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격동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동학 혁명에서 외세의 침략, 신분 질서의 와해, 개화와 수구, 국권 침탈, 민족 운동과 독립 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토지>는 경남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최씨 집안의 안주인인 윤씨부인(최치수의 모친)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후에 동학 접주가 되어 처형당하는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일명 구천이)을 잉태한다.
그후 김환은 최씨 가문으로 잠입하여 하인이 되지만, 최치수의 아내인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둘은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최씨 가문의 재산을 탐낸 귀녀와 몰락 양반 김평산의 음모로 최치수는 교살당하고 음모를 꾸민 두 사람은 윤씨부인에게 발각되어 사형당한다.
최씨 집안의 외가 쪽 먼 친척인 조준구는 윤씨부인이 마을을 휩쓴 콜레라(호열자)로 죽자 최씨 집안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한다. 그는 한편으로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치수의 외동딸 서희를 몰아내고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면서 일본인들의 힘을 빌려 모든 재산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서희와 자신의 아들 병수를 결혼시키려는 음모를 꾸미자 서희는 충직한 하인 김길상 등과 함께 만주땅 용정으로 탈출한다. 서희는 용정에서 윤씨부인이 남긴 금은괴를 자본으로 장사로 성공하여 거부(巨富)가 되고, 하인이었던 길상과 혼인한다. 여기까지가 토지 1, 2부의 개괄적인 내용인데, 국권상실, 봉건 가부장 체제와 신분 질서의 붕괴, 농업 경제로부터 화폐 경제로의 변환 등 1900년대와 1910년 한국 사회의 변화가 소설의 밑그림으로 담겨 있다.
3, 4부는 1, 2부와 연속선상에 놓이면서도 시대 배경 인물의 변화와 변천에 따라 이야기의 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3, 4부의 시간적 배경은 1920, 30년대인데, 이 시기의 한국 사회의 격변이 소설의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3 1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음이 확인되고, 일제의 총독 정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1920년대 식민지 상황의 암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소설을 누르고 있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들은 굳건히 발붙이고 살 정착지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소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소설의 무대가 확대되고 있다.
1부(1897~1908. 5)에서는 평사리, 2부에서는 용정으로 거의 국한된 소설의 무대가 3, 4부에 와서는 서울, 부산, 진주 평사리, 그리고 국외로는 간도 일대와 일본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독립 운동의 여러 노선이 제시되며,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시도된다.
이런 가운데 1, 2부의 주역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용이와 그의 아내 임이네는 병으로 죽고, 기생으로 전락한 끝에 이상현의 씨를 낳고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만 기화(봉순)는 끝내 서희의 보살핌과 정석의 애끓는 연정을 뿌리치고 투신자살한다.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던 김환(구천이)은 고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용정 공노인의 부인과 조준구의 악착같은 부인 홍씨도 세상을 뜬다. 이들의 죽음과 함께 <토지>에서는 이들의 후손들이 점차 주역을 차지한다.
서희의 두 아들 윤국과 환국, 용이의 아들 홍이, 조준구의 아들 꼽추 조병수 등이 소설의 전면으로 나온다. 이와 함께 3, 4부에 오면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인텔리 계층으로 작가는 이들을 통해 희망 없는 식민지 상황의 암울함을 드러낸다. 임역관의 딸 명빈과 명희를 비롯해 귀족층의 조용하,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가 서의돈, 극작가 권오송, 성악가 홍성숙, 조선에 대해 동정적인 일본인 오가다 지로, 유인실, 강선혜, 황태수 등과 진주 쪽의 박효영, 허정윤 등이 그러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광복의 감격까지를 다루고 있는 5부는 <토지>의 대단원의 장이다. 송관수의 죽음,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립 운동 단체의 해체, 길상의 관음 탱화 완성, 오가다와 유인실의 해후, 태평양 전쟁의 발발, 예비 검속에 의한 길상의 구속, 양현 영광 윤국의 어긋난 사랑 등이 이어지면서 대하소설 <토지>는 거대한 마침표를 향하여 달려간다.
<토지>는 한 작가가 한 작품에 올인(다걸기)한 사례로도 귀감이 된다. 이런저런 번잡한 일에 휘둘리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절대 집중이 필요한 분야가 출가자의 수행과 작가의 집필이다. 박경리 선생은 그것을 몸소 실천했다. 저자거리의 교류를 포기하고 절대 고독과 사투를 벌인 결과물이 <토지>다. 다시 한번 작가의 명복을 빈다.(*)
<토지>는 1897년부터 1917년 직후의 몇 년간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개인사와 가족사와 전체사의 대종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세계 문학의 반열에 놓아도 손색없는 한국문학의 뿌듯한 성과다.
<토지>가 보여주는 장면은 참으로 다양하고 종합적이다. 봉건적 가족 제도와 신분질서의 해체, 서구문물의 수용과 식민지 지배의 과정, 간도 생활과 민족의 이동, 독립운동의 전개와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변화 등을 초점으로 개인의 운명과 역사의 조류가 서로 침투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개항기 이래 한국 사회의 풍속에 대한 풍성한 탐구, 각양각색의 인간상의 창출, 삶의 의미와 역사의 원동력에 대한 심오한 직관은 그 격변과 진통의 시대를 살아갈 한국인의 삶을 장엄한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역사는 역사가의 의해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치밀한 조사와 상상력에 의해 쓰여지기도 한다. 박경리의 이름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될 대하소설 <토지>는 이름만 들어도 감격스럽다.
<토지>는 1969년부터 연재를 시작, 26년에 걸친, 4만 여장 분량의 작품으로 박경리 개인은 물론 한국 문학의 기념비다. 거대한 원고지 분량에 걸맞게 7백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시간적으로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라는 한국사회의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격동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동학 혁명에서 외세의 침략, 신분 질서의 와해, 개화와 수구, 국권 침탈, 민족 운동과 독립 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토지>는 경남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최씨 집안의 안주인인 윤씨부인(최치수의 모친)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후에 동학 접주가 되어 처형당하는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일명 구천이)을 잉태한다.
그후 김환은 최씨 가문으로 잠입하여 하인이 되지만, 최치수의 아내인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둘은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최씨 가문의 재산을 탐낸 귀녀와 몰락 양반 김평산의 음모로 최치수는 교살당하고 음모를 꾸민 두 사람은 윤씨부인에게 발각되어 사형당한다.
최씨 집안의 외가 쪽 먼 친척인 조준구는 윤씨부인이 마을을 휩쓴 콜레라(호열자)로 죽자 최씨 집안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한다. 그는 한편으로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치수의 외동딸 서희를 몰아내고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면서 일본인들의 힘을 빌려 모든 재산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서희와 자신의 아들 병수를 결혼시키려는 음모를 꾸미자 서희는 충직한 하인 김길상 등과 함께 만주땅 용정으로 탈출한다. 서희는 용정에서 윤씨부인이 남긴 금은괴를 자본으로 장사로 성공하여 거부(巨富)가 되고, 하인이었던 길상과 혼인한다. 여기까지가 토지 1, 2부의 개괄적인 내용인데, 국권상실, 봉건 가부장 체제와 신분 질서의 붕괴, 농업 경제로부터 화폐 경제로의 변환 등 1900년대와 1910년 한국 사회의 변화가 소설의 밑그림으로 담겨 있다.
3, 4부는 1, 2부와 연속선상에 놓이면서도 시대 배경 인물의 변화와 변천에 따라 이야기의 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3, 4부의 시간적 배경은 1920, 30년대인데, 이 시기의 한국 사회의 격변이 소설의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3 1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음이 확인되고, 일제의 총독 정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1920년대 식민지 상황의 암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소설을 누르고 있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들은 굳건히 발붙이고 살 정착지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소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소설의 무대가 확대되고 있다.
1부(1897~1908. 5)에서는 평사리, 2부에서는 용정으로 거의 국한된 소설의 무대가 3, 4부에 와서는 서울, 부산, 진주 평사리, 그리고 국외로는 간도 일대와 일본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독립 운동의 여러 노선이 제시되며,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시도된다.
이런 가운데 1, 2부의 주역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용이와 그의 아내 임이네는 병으로 죽고, 기생으로 전락한 끝에 이상현의 씨를 낳고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만 기화(봉순)는 끝내 서희의 보살핌과 정석의 애끓는 연정을 뿌리치고 투신자살한다.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던 김환(구천이)은 고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용정 공노인의 부인과 조준구의 악착같은 부인 홍씨도 세상을 뜬다. 이들의 죽음과 함께 <토지>에서는 이들의 후손들이 점차 주역을 차지한다.
서희의 두 아들 윤국과 환국, 용이의 아들 홍이, 조준구의 아들 꼽추 조병수 등이 소설의 전면으로 나온다. 이와 함께 3, 4부에 오면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인텔리 계층으로 작가는 이들을 통해 희망 없는 식민지 상황의 암울함을 드러낸다. 임역관의 딸 명빈과 명희를 비롯해 귀족층의 조용하,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가 서의돈, 극작가 권오송, 성악가 홍성숙, 조선에 대해 동정적인 일본인 오가다 지로, 유인실, 강선혜, 황태수 등과 진주 쪽의 박효영, 허정윤 등이 그러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광복의 감격까지를 다루고 있는 5부는 <토지>의 대단원의 장이다. 송관수의 죽음,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립 운동 단체의 해체, 길상의 관음 탱화 완성, 오가다와 유인실의 해후, 태평양 전쟁의 발발, 예비 검속에 의한 길상의 구속, 양현 영광 윤국의 어긋난 사랑 등이 이어지면서 대하소설 <토지>는 거대한 마침표를 향하여 달려간다.
<토지>는 한 작가가 한 작품에 올인(다걸기)한 사례로도 귀감이 된다. 이런저런 번잡한 일에 휘둘리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절대 집중이 필요한 분야가 출가자의 수행과 작가의 집필이다. 박경리 선생은 그것을 몸소 실천했다. 저자거리의 교류를 포기하고 절대 고독과 사투를 벌인 결과물이 <토지>다. 다시 한번 작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