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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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66회 - " 당신들의 천국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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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2008년 7월 31일, 이청준이라는 한국문학의 큰 별이 졌다.
“나로서는 문학사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이런 문제에 매달리기보다 '나 자신이 숲을 이루고 싶다', '작으나마 나 자신의 문학사를 갖고 싶다' 이런 욕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전에 이청준이 밝힌 자신의 문학관이다. 연일 경보가 발동되는 폭염을 뒤로하고 타계했다. 넓고 깊은 자신만의 문학사라는 숲을 만든 작가였다. 그는 1965년 당시로서는 낯설고 사변적인 '퇴원'이란 작품으로 등단한 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방대한 작품을 쏟아냈다.
단순히 수적인 넓이뿐 아니라, 어떤 작품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작가 특유의 엄밀성과 장인 정신으로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태작이나 버릴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토속적 민간신앙부터 산업화 사회의 인간소외, 언어에 대한 탐색, 책임과 용서, 시대의 아픔, 예술, 영혼과 정신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한 두 줄기로 요약될 수 없는 다양한 주제를 끌어안은 지성의 저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를 추모하며,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을 살펴보자.
'조백헌'이라는 야심 많고 정열적인 성격의 인물이 소록도라는 섬을 무대로 한 나환자 병원에 병원장으로 취임한다. 조백헌은 공원같이 잘 꾸며지고 아름다운 조경을 지닌 소록도를 돌아보며 그가 취임하기 직전에 일어난 탈출사건에 대하여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병원에서 병이 나은 환자들에게는 오히려 육지로 나갈 것을 권장하고 있는 데 반해 왜 그들은 빈번하게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것일까?
나병환자들은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섬에 나갈 용기가 없다. 하지만 그들도 가끔은 특수한 처지를 벗어 던지고 인간으로서 섬을 나가려는 생존의 충동을 발산하는 것이라고 보건과장 이상욱이 말한다.
조백헌은 나병인 몸의 병보다도 불신과 배반이라는 마음의 병이 더 심각하다는 판단을 가지고 그곳의 5천여 명의 나환자들에게 정정당당, 인화 단결, 상호협조를 부르짖으며 새로운 낙토를 만들어 나갈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의 격정적인 연설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거대한 침묵의 덩어리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축구팀을 만들어 활기를 불러일으킨 것도 잠시 뿐 득량만 건설 계획을 내세웠을 때 또다시 원생들은 또다시 배반과 배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냉랭하게 굳어버렸다.
전 원장 주정수는 섬을 나환자의 복지로 꾸밀 것을 약속하고 스스로의 복지를 꾸며간다는 자부심과 자활 의욕이 솟아나야 한다고 촉구하는 감동적인 연설에 원생들은 환호하며 낙토건설사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했지만 결국 쓰라린 배반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의 충실한 충견이었던 사또는 가죽채찍으로 환자들에게 고된 출역을 시키며 주정수의 현시욕을 하나씩 성취시켜 나간 배신의 인물이다.
문둥이라는 존재, 문둥이라는 구체적 개념보다 너무 오랜 시간 환자로서의 생존 양식과 일반의 그것을 구별짓기에 지쳐버린 자들, 섬을 나가고자 했던 소망과 노력 뒤에 위정자의 배반과 주정수를 포함한 원장들의 배반, 거짓얼굴을 한 자선가들의 배반, 심지어는 고향의 육친들과 교회 형제들의 배반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들의 원망과 한은 깊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니 그토록 많은 이들의 희망하던 바로 '그날'이 왔다. 5천 명의 시선 속에 바다에서 돌둑이 천연덕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희망의 돌둑은 무시무시한 자연의 배반으로 소록도를 덮쳤다.
문둥이들의 천국이 바깥 세상 인간의 천국과 대립될 때에 그들의 천국은 수용소에 불과하다. 조 원장이 보여주는 것은 환자들의 자유에 의해 스스로 만들어야 할 천국의 건설의 바람이 완전히 실현됨이 아니라 자신의 동상 욕구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싸우며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러한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가는 생활인의 모습이었다.
이 소설은 건강인과 나환자로서, 아니 그보다 미감아와 나환자와의 희귀하고 거룩한 결혼에 대한 축사를 조백헌이 방안에서 읽음으로 결말을 짓는다. 사랑을 당부하는 축사를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새삼 아름답게 보였다.
천국은, 우리들의 천국이 되어야 한다. ‘당신들의 천국’, ‘그들만의 잔치’는 천국도 축제도 아니다. 소록도라는 소설 속 공간을 바깥으로 끌어내 보면 우리 주변과 다름없다. 개인의 욕심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짓밟는 일들이 많다. ‘당신들의 천국’은 문학이란 도구를 통해 세상에 던진 경고장이다.
이청준의 성품처럼 온유하고 너그러우나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뜻대로 이청준이란 ‘문학의 숲’을 이루고 천년학이 되어 하늘나라로 갔다. 그곳은 ‘모두의 천국’일 것이다. 작가는 진실에 대한 암시만 주고, 진실은 독자 스스로 찾는 것, 작가는 끝까지 자기 패를 보여주지 않고,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지 않는 패를 알아내는 긴장 관계가 소설쓰기와 읽기라는 그의 문학관은 후학들에게 남긴 유산이다. (*)
“나로서는 문학사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이런 문제에 매달리기보다 '나 자신이 숲을 이루고 싶다', '작으나마 나 자신의 문학사를 갖고 싶다' 이런 욕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전에 이청준이 밝힌 자신의 문학관이다. 연일 경보가 발동되는 폭염을 뒤로하고 타계했다. 넓고 깊은 자신만의 문학사라는 숲을 만든 작가였다. 그는 1965년 당시로서는 낯설고 사변적인 '퇴원'이란 작품으로 등단한 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방대한 작품을 쏟아냈다.
단순히 수적인 넓이뿐 아니라, 어떤 작품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작가 특유의 엄밀성과 장인 정신으로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태작이나 버릴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토속적 민간신앙부터 산업화 사회의 인간소외, 언어에 대한 탐색, 책임과 용서, 시대의 아픔, 예술, 영혼과 정신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한 두 줄기로 요약될 수 없는 다양한 주제를 끌어안은 지성의 저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를 추모하며,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을 살펴보자.
'조백헌'이라는 야심 많고 정열적인 성격의 인물이 소록도라는 섬을 무대로 한 나환자 병원에 병원장으로 취임한다. 조백헌은 공원같이 잘 꾸며지고 아름다운 조경을 지닌 소록도를 돌아보며 그가 취임하기 직전에 일어난 탈출사건에 대하여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병원에서 병이 나은 환자들에게는 오히려 육지로 나갈 것을 권장하고 있는 데 반해 왜 그들은 빈번하게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것일까?
나병환자들은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섬에 나갈 용기가 없다. 하지만 그들도 가끔은 특수한 처지를 벗어 던지고 인간으로서 섬을 나가려는 생존의 충동을 발산하는 것이라고 보건과장 이상욱이 말한다.
조백헌은 나병인 몸의 병보다도 불신과 배반이라는 마음의 병이 더 심각하다는 판단을 가지고 그곳의 5천여 명의 나환자들에게 정정당당, 인화 단결, 상호협조를 부르짖으며 새로운 낙토를 만들어 나갈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의 격정적인 연설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거대한 침묵의 덩어리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축구팀을 만들어 활기를 불러일으킨 것도 잠시 뿐 득량만 건설 계획을 내세웠을 때 또다시 원생들은 또다시 배반과 배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냉랭하게 굳어버렸다.
전 원장 주정수는 섬을 나환자의 복지로 꾸밀 것을 약속하고 스스로의 복지를 꾸며간다는 자부심과 자활 의욕이 솟아나야 한다고 촉구하는 감동적인 연설에 원생들은 환호하며 낙토건설사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했지만 결국 쓰라린 배반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의 충실한 충견이었던 사또는 가죽채찍으로 환자들에게 고된 출역을 시키며 주정수의 현시욕을 하나씩 성취시켜 나간 배신의 인물이다.
문둥이라는 존재, 문둥이라는 구체적 개념보다 너무 오랜 시간 환자로서의 생존 양식과 일반의 그것을 구별짓기에 지쳐버린 자들, 섬을 나가고자 했던 소망과 노력 뒤에 위정자의 배반과 주정수를 포함한 원장들의 배반, 거짓얼굴을 한 자선가들의 배반, 심지어는 고향의 육친들과 교회 형제들의 배반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들의 원망과 한은 깊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니 그토록 많은 이들의 희망하던 바로 '그날'이 왔다. 5천 명의 시선 속에 바다에서 돌둑이 천연덕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희망의 돌둑은 무시무시한 자연의 배반으로 소록도를 덮쳤다.
문둥이들의 천국이 바깥 세상 인간의 천국과 대립될 때에 그들의 천국은 수용소에 불과하다. 조 원장이 보여주는 것은 환자들의 자유에 의해 스스로 만들어야 할 천국의 건설의 바람이 완전히 실현됨이 아니라 자신의 동상 욕구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싸우며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러한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가는 생활인의 모습이었다.
이 소설은 건강인과 나환자로서, 아니 그보다 미감아와 나환자와의 희귀하고 거룩한 결혼에 대한 축사를 조백헌이 방안에서 읽음으로 결말을 짓는다. 사랑을 당부하는 축사를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새삼 아름답게 보였다.
천국은, 우리들의 천국이 되어야 한다. ‘당신들의 천국’, ‘그들만의 잔치’는 천국도 축제도 아니다. 소록도라는 소설 속 공간을 바깥으로 끌어내 보면 우리 주변과 다름없다. 개인의 욕심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짓밟는 일들이 많다. ‘당신들의 천국’은 문학이란 도구를 통해 세상에 던진 경고장이다.
이청준의 성품처럼 온유하고 너그러우나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뜻대로 이청준이란 ‘문학의 숲’을 이루고 천년학이 되어 하늘나라로 갔다. 그곳은 ‘모두의 천국’일 것이다. 작가는 진실에 대한 암시만 주고, 진실은 독자 스스로 찾는 것, 작가는 끝까지 자기 패를 보여주지 않고,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지 않는 패를 알아내는 긴장 관계가 소설쓰기와 읽기라는 그의 문학관은 후학들에게 남긴 유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