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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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102회 - " 안되면 될 걸 하라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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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어려서부터 포기를 잘했다. 남보다 못한다 싶으면 금방 흥미를 잃었다. 핑계를 찾는 데는 선수였다.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가치 없는 일이야’ 근거를 붙였다. 흥미를 잃는 순간 내게는 가치 없는 일이 됐다.
그 덕에 인생이 줄줄이 포기의 연속이다. 학창 시절 시작은 체육이었다. 둔한 운동 신경을 탓하는 대신 ‘내겐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해’라고 했던 것 같다. 체육을 포기하곤 마음껏 싫어했다. 다음은 수학. ‘문학 소녀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기계적인 과목’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런 내 이야기야 도전의지 박약자의 하릴없는 회고고, 며칠 전 SNS에 올라온 ‘트위터 시인’ 하상욱의 글이 인상적이다. “필요가 없는 건데 능력이 없는 거래. 코끼리는 점프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점프할 필요가 없는 거야.”
냉큼 공유했다. ‘내 인생을 위한 변명’이란 부제를 달고서다.
얼마 전 그의 인터뷰 기사도 생각났다. ‘안되면 되게 하라’가 아니라 ‘안되면 포기하라’ ‘안되면 될 걸 하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했던 그다. “포기하지 말란 말에는 억압이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포기한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건 아니지 않나. 포기란 다른 걸 시작하는 거다.” “어려서부터 나보다 잘하는 애가 있으면 금방 포기가 됐다. 희망, 꿈, 힐링 같은 말을 싫어한다. 막 살자는 게 아니다. 지금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위해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하자는 것이다. 스스로를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뭘 잘하고 못하는지 알아야 한다.”
‘네 꿈을 좇으라’는 강박과 ‘하면 된다’는 개발시대의 잠언 이후 모두가 일등을 향해 달려온 한국 사회가 한번쯤 귀 기울일 말이다. 요즘은 ‘일등병’도 모자라 모두가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는 ‘만능병’에 걸린 한국 사회다. 공부도 일도 연애도 잘하고, 외모도 스펙도 다 갖춰야 하며, 유행하는 온갖 트렌드를 쫓아가느라 허덕이는 사회다. 말로야 ‘잘하는 게 하나만 있으면 된다’면서도 모두가 전인적 인간을 꿈꾸며 기력을 소진시킨다. 꿈을 잃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누구나 ‘일등 만능인’이 될 수 있다는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인생을 저당 잡힌 불행한 사회다.
이때 포기란 비겁한 후퇴가 아니라 제 삶을 진짜 가볍고 자유롭게 하는 인생의 기술 아닐까. 책 『강점혁명』도 비슷한 조언을 한 바 있다. “네가 못하는 것을 잘 하려고 하지 말고 네가 잘하는 것을 잘하라.”
[중앙일보 2014.7.12 분수대 -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