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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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60회 - " 변신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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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변신은 다분히 부정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정치가의 변신을 무수히 보아왔던 터이라 입맛이 개운치 않다. 우국충정으로 포장된 그들의 변신은 카멜레온보다 고수다. 차라리 변태라고 부르고 싶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징그러운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의류회사 외판원 그레고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일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었다. 혐오스럽고, 말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다. 처음엔 가족들이 그를 보살피려 했지만, 더 이상 돈도 벌어다 주지 못하는데다가 역겨운 체액을 흘리며, 매번 소스라치게 만드는 징그러운 외모 때문에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자기 방에 갇혀서 가족의 외면을 바라보던 그레고르는 결국 죽게 된다.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죽음을 오히려 안도하며 행복하고 화목한 시간을 보낸다.
그레고르에게 일어난 악몽이 현실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신’을 읽는 독자는 왜 시종일관 가슴 죄며 전율을 느끼는 걸까. 우리가 그레고르의 운명에 대해 그처럼 긴박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상징의 힘 때문이다. 당시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한 과감한 판타지적 상징의 마력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어느 날 귀가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어떤 돌발사태로 반신불수가 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예고 없이 다가온다. 그때 우리가 맞게 될 삶의 정황은 그레고르가 처한 정황과 다를 바 없다. 실업문제, 노인문제, 장애문제 등을 은유한 섬뜩한 상징이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어느 날 갑자기 짐이 되고 원수가 된다. 벌레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사랑하는 자식이 사고를 당하거나,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가 치매에 걸리면, 그들은 벌레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카프카는 우리들 삶의 실존적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체코에서 유태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 시절 막스 브로트를 만나는데, 막스는 카프카의 문학적 후원자다. 카프카의 작품은 대부분 사후에 알려졌다.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타계 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카프카가 죽은 뒤 모든 작품을 소각해 달라는 유언과는 반대로 유고를 발표하고,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의 격동기를 겪으며 이를 지켜내 카프카의 작품을 간행하여 우리들이 카프카의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막스의 공로다. 막스가 그의 유언대로 했더라면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은 살아남지 않았을 것이다. 막스 브로트는 유언과는 반대의 길을 밟았고, 그로 인해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이 사후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식구들 중 카프카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형상은 카프카의 존재뿐만 아니라 작품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으며,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물질적 성공과 출세 외에는 관심 없는, 거칠고 실질적이며 오만한 상점주인이자 가부장인 아버지는 카프카의 상상 속에서 거인족의 일원으로, 무시무시하고 혐오스러운 폭군으로 등장한다.
1919년에 쓴〈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Brief an den Vater〉에서 카프카는 그의 내면에 무능하다는 생각을 주입시킨 위압적인 아버지 덕분에 결혼하여 아버지가 되려는 평범한 삶에 실패하여 문학으로 도피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의 의지를 꺾었다고 느꼈다. 이러한 아버지와의 갈등을 반영한 작품이 〈판결 Das Urteil〉이다.
변화와 개혁은 끊임없이 요구되고 실천되어야할 시대적 소명이다. 그러나 이기적 이익을 위한 얼굴 바꾸기, 옷 갈아입기, 차 갈이타기는 혐오스럽다. 카프카의 ‘변신’은 삶의 서늘한 성찰을 주지만 정치가, 사업가, 학자의 변태는 세상을 맑게 하는 샘물이 되지 않는다. (*)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징그러운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의류회사 외판원 그레고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일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었다. 혐오스럽고, 말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다. 처음엔 가족들이 그를 보살피려 했지만, 더 이상 돈도 벌어다 주지 못하는데다가 역겨운 체액을 흘리며, 매번 소스라치게 만드는 징그러운 외모 때문에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자기 방에 갇혀서 가족의 외면을 바라보던 그레고르는 결국 죽게 된다.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죽음을 오히려 안도하며 행복하고 화목한 시간을 보낸다.
그레고르에게 일어난 악몽이 현실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신’을 읽는 독자는 왜 시종일관 가슴 죄며 전율을 느끼는 걸까. 우리가 그레고르의 운명에 대해 그처럼 긴박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상징의 힘 때문이다. 당시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한 과감한 판타지적 상징의 마력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어느 날 귀가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어떤 돌발사태로 반신불수가 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예고 없이 다가온다. 그때 우리가 맞게 될 삶의 정황은 그레고르가 처한 정황과 다를 바 없다. 실업문제, 노인문제, 장애문제 등을 은유한 섬뜩한 상징이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어느 날 갑자기 짐이 되고 원수가 된다. 벌레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사랑하는 자식이 사고를 당하거나,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가 치매에 걸리면, 그들은 벌레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카프카는 우리들 삶의 실존적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체코에서 유태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 시절 막스 브로트를 만나는데, 막스는 카프카의 문학적 후원자다. 카프카의 작품은 대부분 사후에 알려졌다.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타계 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카프카가 죽은 뒤 모든 작품을 소각해 달라는 유언과는 반대로 유고를 발표하고,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의 격동기를 겪으며 이를 지켜내 카프카의 작품을 간행하여 우리들이 카프카의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막스의 공로다. 막스가 그의 유언대로 했더라면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은 살아남지 않았을 것이다. 막스 브로트는 유언과는 반대의 길을 밟았고, 그로 인해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이 사후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식구들 중 카프카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형상은 카프카의 존재뿐만 아니라 작품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으며,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물질적 성공과 출세 외에는 관심 없는, 거칠고 실질적이며 오만한 상점주인이자 가부장인 아버지는 카프카의 상상 속에서 거인족의 일원으로, 무시무시하고 혐오스러운 폭군으로 등장한다.
1919년에 쓴〈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Brief an den Vater〉에서 카프카는 그의 내면에 무능하다는 생각을 주입시킨 위압적인 아버지 덕분에 결혼하여 아버지가 되려는 평범한 삶에 실패하여 문학으로 도피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의 의지를 꺾었다고 느꼈다. 이러한 아버지와의 갈등을 반영한 작품이 〈판결 Das Urteil〉이다.
변화와 개혁은 끊임없이 요구되고 실천되어야할 시대적 소명이다. 그러나 이기적 이익을 위한 얼굴 바꾸기, 옷 갈아입기, 차 갈이타기는 혐오스럽다. 카프카의 ‘변신’은 삶의 서늘한 성찰을 주지만 정치가, 사업가, 학자의 변태는 세상을 맑게 하는 샘물이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