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
김윤환 |
*제63회 - " 삼국지 "
영광도서
0
583
2016.12.01 03:45
천년 동안 사람들에게 읽히는 고전, 삼국지! 동양의 영원한 고전이다. 삼국지는 지혜의 보물창고이자, 인간사의 모든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대서사시다. 그런고로 지금까지 위대한 작가들은 삼국지를 스스로 번역하거나 편역해서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시험하기도 했다. 이것은 삼국지가 왜 사람들에게 읽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국지를 통해 인생을 알고, 문학을 알고, 성공을 알기 위해 사람들은 삼국지를 필독서로서 애지중지 아껴온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국지는 정확하게 말하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다. 이것은 중국 명대 초기의 장편소설로 나관중이 지었다. 진수의 역사서인〈삼국지〉와 배송지의 주(注), 원대의 〈삼분사략〉·〈삼국지평화〉에 근거하여 지은 소설이다. 후한말에서 삼국시대까지의 다양한 정치적·군사적 분쟁을 그렸고, 전쟁의 묘사에 주력하여 경쟁적인 생활의 경험과 책략을 제공했다.
제갈량·조조·장비 등의 전형적인 인물을 형상화했다. 제갈량은 지혜가 많고 책략에 뛰어나서 중국인들에게는 지혜의 화신으로 일컬어진다. 등장인물이 많고 구성이 웅대하며 내용이 복잡하나 맥락이 분명하고, 소재의 취사선택에 타당성이 있다. 쉬운 문어체와 거친 필법을 사용했고 묘사에 치중했다. 연의소설(演義小說)의 최고걸작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삼국지는 인간 경영, 조직 경영, 처세술의 교과서다. 숱한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 또한 삼국지는 언어의 창고이다. 삼국지에서 유래된 많은 말들이 고사성어가 되어 우리의 언어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경구를 제공한다. 삼국지에서 유래된 수천 개의 고사 성어 중 귀에 익숙한 것 몇 개를 살펴본다.
권토중래(捲土重來) : 한 번 실패하고 나서 다시 그 일에 도전한다는 뜻. 유비가 서주에서 패한 후 한동안 아우들과 흩어져 지냈으나, 여남에서 관우, 장비는 물론 조운까지 합세하게 되자 일시에 그 세력이 전의 배가 되었다.
계륵(鷄肋) :먹으려면 먹을 고기가 없고, 버리려면 아까운 것. 조조군이 한중에서 철수하기 얼마 전이었다. 그날 밤 조조가 저녁식사를 하려는데 음식이 닭갈비였다. 때마침 하후돈이 들어와, 오늘밤 군호를 무엇으로 할까요? 하고 물으니 별다른 생각 없이 방금 전에 먹었던 음식 생각이 나서 계륵이라고 했다. 하후돈이 전령하기를 오늘밤의 군호는 계륵이라 하였다. 이때 행군주부 양수가 하후돈의 군호를 듣고는 행장을 수습하여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하후돈이 깜짝 놀라 양수에게, 그대는 어찌하여 행장을 수습하는 것이오? 하니 양수가 대답하기를, 제가 군호를 듣고 위왕께서 곧 귀환하실 뜻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계륵이란 것이 뭡니까. 먹으려면 먹을 고기가 없고 버리려면 아까운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전황처럼 이제 나아가도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려 하나 남의 치소가 두렵고 여기에 있자하나 아무 이로운 점이 없는 형국과 똑같지 않습니까.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위왕께서 철수할 생각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니 아예 미리 행장을 수습한 것입니다. 하후돈은 원래 똑똑하기로 소문난 양수의 말을 듣고 ´과연 학문이 깊으면 위왕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헤아리는구나´ 하고 칭찬하며 자신도 행장을 수습하니 여러 장수들도 덩달아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밤 조조는 심신이 편치 못하여 밤바람이라도 쏘이려고 막사 밖으로 나왔는데 하후돈의 병사들이 제각기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래서 하후돈을 불러 물어보았더니 양수가 군호인 ´계륵´을 풀이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노하였다. 마치 속마음이 들킨 기분이 드는데다가 평소 똑똑한 티를 내는 양수가 얄미웠던 것이다. 그래서 군심을 어지럽혔다 하여 양수를 처형하고 머리를 영문에다 효수했다. 여기에서 계륵이 유래되었다.
내조(內助) : 아내가 집안을 탈 없이 이끌어 남편이 바깥일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위문제 조비의 황후인 곽후(187-234)는 원래 군의 장관이었던 곽영의 딸로 태어났을 때부터 남과 달라 곽영이 ´내 딸은 여자 가운데 왕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녀는 조조가 위왕이 되었을 무렵(216년) 동궁으로 들어갔다. 여성으로서 보기 드물게 조비가 황태자가 되는 데에도 책략을 썼다.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참소하여 조예를 낳은 견후에게 죽음을 내리게 했고 222년에 자신이 왕후의 자리에 앉았다. 견후는 머리칼로 얼굴을 덮고 겨로 입을 틀어막은 채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중랑(궁에서 숙직하여 시위하는 관리)인 잔잠이 곽황후를 세우는 것에 반대했다. 위제 조비에게 상소를 올려 ´예로부터 제왕의 정치에는 밖에서 정치를 돕는 자뿐만 아니라 내조도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가르침으로 알아야 할 선례나 관례, ´역경´이나 ´춘추 좌씨전´에 적혀있는 것을 들어 사람이 신분이 높은 자리를 탐하여 발생하는 많은 불상사와 집안의 불행에 대해 간언하고 설득했으나 위제 조비는 받아들이지 않고 급기야는 곽씨를 황후로 세웠다. 내궁의 법도와 황후의 인덕을 뜻하는 말로 시작된 ´내조´란 내부에서 돕는다는 의미로서 내덕의 공을 말한다. 일반 시중에서는 ´내조의 공´이라 하여 아내가 가사를 잘 돌보아 밖의 일을 하는 남편이 집안 일에 신경쓰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삼고초려(三顧草廬) :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해 융중에 있는 제갈량의 초려로 세 번 씩 찾아가는 정성을 보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유비의 인재 영입 방법의 백미로 꼽히는 삼고초려의 이야기는 끈끈한 인간관계에 호소하여 혈연 이상의 정분을 맺고 믿음을 획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비는 제갈량에 대한 소문을 듣고 눈보라치는 추운 겨울에도 두 번 씩이나 허탕을 치며 성의를 다해 찾아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자 다시 점쟁이에게 물어 길일을 잡고 사흘이나 목욕재계한 후 다시 제갈량을 찾아 융중으로 향했다. 이때 관우, 장비는 화가 났다. 칼 한 자루 휘두를 만한 힘도 없을 서생 하나를 영입하려고 벌써 두 번이나 찾아갔고 상대가 답례도 안 하는 게 더욱 괘씸했다. 그래서 유비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으나 유비는 일언지하에 묵살하고 ˝예를 다하여 모셔와야 한다.˝고 호통 친다. 결국 세 번 째 방문으로 제갈량의 영입에 성공하는데 사람의 일은 오직 정성을 다해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예로 삼고초려란 말이 쓰인다.
수어지교(水魚之交) : 물과 물고기의 관계. 유비가 제갈량을 물이라고 표현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읍참마속(揖斬馬謖) :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베다. 가정 전투에서 패한 마속을, 군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참형에 처하면서 제갈량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의를 위해 측근을 희생시킨다는 뜻으로 정치가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00계, 가신, 386, 최측근 등의 말은 읍참마속을 실천하지 못한 데서 온 부정적 표현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국지는 정확하게 말하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다. 이것은 중국 명대 초기의 장편소설로 나관중이 지었다. 진수의 역사서인〈삼국지〉와 배송지의 주(注), 원대의 〈삼분사략〉·〈삼국지평화〉에 근거하여 지은 소설이다. 후한말에서 삼국시대까지의 다양한 정치적·군사적 분쟁을 그렸고, 전쟁의 묘사에 주력하여 경쟁적인 생활의 경험과 책략을 제공했다.
제갈량·조조·장비 등의 전형적인 인물을 형상화했다. 제갈량은 지혜가 많고 책략에 뛰어나서 중국인들에게는 지혜의 화신으로 일컬어진다. 등장인물이 많고 구성이 웅대하며 내용이 복잡하나 맥락이 분명하고, 소재의 취사선택에 타당성이 있다. 쉬운 문어체와 거친 필법을 사용했고 묘사에 치중했다. 연의소설(演義小說)의 최고걸작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삼국지는 인간 경영, 조직 경영, 처세술의 교과서다. 숱한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 또한 삼국지는 언어의 창고이다. 삼국지에서 유래된 많은 말들이 고사성어가 되어 우리의 언어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경구를 제공한다. 삼국지에서 유래된 수천 개의 고사 성어 중 귀에 익숙한 것 몇 개를 살펴본다.
권토중래(捲土重來) : 한 번 실패하고 나서 다시 그 일에 도전한다는 뜻. 유비가 서주에서 패한 후 한동안 아우들과 흩어져 지냈으나, 여남에서 관우, 장비는 물론 조운까지 합세하게 되자 일시에 그 세력이 전의 배가 되었다.
계륵(鷄肋) :먹으려면 먹을 고기가 없고, 버리려면 아까운 것. 조조군이 한중에서 철수하기 얼마 전이었다. 그날 밤 조조가 저녁식사를 하려는데 음식이 닭갈비였다. 때마침 하후돈이 들어와, 오늘밤 군호를 무엇으로 할까요? 하고 물으니 별다른 생각 없이 방금 전에 먹었던 음식 생각이 나서 계륵이라고 했다. 하후돈이 전령하기를 오늘밤의 군호는 계륵이라 하였다. 이때 행군주부 양수가 하후돈의 군호를 듣고는 행장을 수습하여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하후돈이 깜짝 놀라 양수에게, 그대는 어찌하여 행장을 수습하는 것이오? 하니 양수가 대답하기를, 제가 군호를 듣고 위왕께서 곧 귀환하실 뜻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계륵이란 것이 뭡니까. 먹으려면 먹을 고기가 없고 버리려면 아까운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전황처럼 이제 나아가도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려 하나 남의 치소가 두렵고 여기에 있자하나 아무 이로운 점이 없는 형국과 똑같지 않습니까.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위왕께서 철수할 생각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니 아예 미리 행장을 수습한 것입니다. 하후돈은 원래 똑똑하기로 소문난 양수의 말을 듣고 ´과연 학문이 깊으면 위왕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헤아리는구나´ 하고 칭찬하며 자신도 행장을 수습하니 여러 장수들도 덩달아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밤 조조는 심신이 편치 못하여 밤바람이라도 쏘이려고 막사 밖으로 나왔는데 하후돈의 병사들이 제각기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래서 하후돈을 불러 물어보았더니 양수가 군호인 ´계륵´을 풀이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노하였다. 마치 속마음이 들킨 기분이 드는데다가 평소 똑똑한 티를 내는 양수가 얄미웠던 것이다. 그래서 군심을 어지럽혔다 하여 양수를 처형하고 머리를 영문에다 효수했다. 여기에서 계륵이 유래되었다.
내조(內助) : 아내가 집안을 탈 없이 이끌어 남편이 바깥일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위문제 조비의 황후인 곽후(187-234)는 원래 군의 장관이었던 곽영의 딸로 태어났을 때부터 남과 달라 곽영이 ´내 딸은 여자 가운데 왕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녀는 조조가 위왕이 되었을 무렵(216년) 동궁으로 들어갔다. 여성으로서 보기 드물게 조비가 황태자가 되는 데에도 책략을 썼다.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참소하여 조예를 낳은 견후에게 죽음을 내리게 했고 222년에 자신이 왕후의 자리에 앉았다. 견후는 머리칼로 얼굴을 덮고 겨로 입을 틀어막은 채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중랑(궁에서 숙직하여 시위하는 관리)인 잔잠이 곽황후를 세우는 것에 반대했다. 위제 조비에게 상소를 올려 ´예로부터 제왕의 정치에는 밖에서 정치를 돕는 자뿐만 아니라 내조도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가르침으로 알아야 할 선례나 관례, ´역경´이나 ´춘추 좌씨전´에 적혀있는 것을 들어 사람이 신분이 높은 자리를 탐하여 발생하는 많은 불상사와 집안의 불행에 대해 간언하고 설득했으나 위제 조비는 받아들이지 않고 급기야는 곽씨를 황후로 세웠다. 내궁의 법도와 황후의 인덕을 뜻하는 말로 시작된 ´내조´란 내부에서 돕는다는 의미로서 내덕의 공을 말한다. 일반 시중에서는 ´내조의 공´이라 하여 아내가 가사를 잘 돌보아 밖의 일을 하는 남편이 집안 일에 신경쓰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삼고초려(三顧草廬) :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해 융중에 있는 제갈량의 초려로 세 번 씩 찾아가는 정성을 보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유비의 인재 영입 방법의 백미로 꼽히는 삼고초려의 이야기는 끈끈한 인간관계에 호소하여 혈연 이상의 정분을 맺고 믿음을 획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비는 제갈량에 대한 소문을 듣고 눈보라치는 추운 겨울에도 두 번 씩이나 허탕을 치며 성의를 다해 찾아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자 다시 점쟁이에게 물어 길일을 잡고 사흘이나 목욕재계한 후 다시 제갈량을 찾아 융중으로 향했다. 이때 관우, 장비는 화가 났다. 칼 한 자루 휘두를 만한 힘도 없을 서생 하나를 영입하려고 벌써 두 번이나 찾아갔고 상대가 답례도 안 하는 게 더욱 괘씸했다. 그래서 유비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으나 유비는 일언지하에 묵살하고 ˝예를 다하여 모셔와야 한다.˝고 호통 친다. 결국 세 번 째 방문으로 제갈량의 영입에 성공하는데 사람의 일은 오직 정성을 다해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예로 삼고초려란 말이 쓰인다.
수어지교(水魚之交) : 물과 물고기의 관계. 유비가 제갈량을 물이라고 표현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읍참마속(揖斬馬謖) :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베다. 가정 전투에서 패한 마속을, 군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참형에 처하면서 제갈량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의를 위해 측근을 희생시킨다는 뜻으로 정치가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00계, 가신, 386, 최측근 등의 말은 읍참마속을 실천하지 못한 데서 온 부정적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