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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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69회 -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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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 춘 수 <꽃>
꽃집엔 꽃이 가득하다. 계절에 관계없이 풍성한 꽃들이 만발하는 시대이다. 크고작은 잔치에는 화분, 꽃다발이 수북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듯이 꽃을 받으면 얼굴이 밝아진다. 어떤 보석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꽃이다. 그리고 우리는 꽃이 되고 싶어한다.
김춘수의 <꽃>은 한 때 청소년들 애송시의 선두 자리를 다투던 작품이다. 그들은 대체로 이 시를 하나의 연가(戀歌)쯤으로 받아들였다. 이성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제3연과 4연은 가히 절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 그런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 인식'이라는 다분히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경향의 작품이다. 물론 연가로 읽는다고 해서 오독(誤讀)은 아니다.
'이름을 불러 주기'는 명명 행위(命名行爲)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에는 그는 무(無)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몸짓'은 장미꽃이나 민들레꽃과 같은 구체적인 꽃이 아닌, 어떤 낯설고 정체불명인 관념이다. '몸짓'의 상징 의미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우리 삶도 이와 같다. 무수히 스치는,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무의미한 존재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책을 읽고자 하는 정보를 얻고 읽고자 하는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것이 비로소 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더기로 쌓인 종이더미에 불과하다.
제2연에서 시적 화자가 대상을 인식하고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그는 정체를 드러내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은 존재의 집이다."라고 하면서 만물은 본질에 따라 이름 지으며, 시인의 사명은 성(聖)스러운 것을 이름짓는 데 있다고 한 말을 상기시켜 준다.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 존재는 참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꽃'은 '의미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정보화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책 출판의 홍수시대다. 통계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하루에도 수백, 수천 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서점은 물론 도서관에도 책을 보관, 비치하는 일이 고민거리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새손님은 꾸역꾸역 밀려들어온다. 여기에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작용한다. 가치있는 책, 독자로부터 사랑받는 책은 사랑방, 안방을 차지하고 노력이 덜 들어간 책은 뒷방으로 밀려난다.
제3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 시적 화자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갈망이 표출되어 있다. 주체인 '나'도 대상인 '너'에게로 가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상 없는 주체도, 주체 없는 대상도 무의미하며,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을 연상해 보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빛깔과 향기'는 '존재의 본질'을 뜻한다.
누군들 별이 되고 싶지 않으랴. 누군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가 되고 싶지 않으랴.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고 싶다. 좋은 독자, 많은 독자에게 안기는 책이 되고 싶고, 인기 있고 존경받는 인재가 되고 싶다.
제4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 시적 화자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이 '우리'의 것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꽃'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임이 확인된다. '눈짓'은 '꽃'과 동격의 이미지로서 '의미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꽃이 사랑받는 이유는 아름다움과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종이 속에 재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역경을 인내한 진한 향기가 있다. 저절로 툭 떨어진 성공은 어디에도 없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절제와 노력이 있다. 훌륭한 운동선수의 뒤에는 피나는 연습이 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꽃이 되고 싶고 별이 되고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루아침에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비추어지지 않은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 춘 수 <꽃>
꽃집엔 꽃이 가득하다. 계절에 관계없이 풍성한 꽃들이 만발하는 시대이다. 크고작은 잔치에는 화분, 꽃다발이 수북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듯이 꽃을 받으면 얼굴이 밝아진다. 어떤 보석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꽃이다. 그리고 우리는 꽃이 되고 싶어한다.
김춘수의 <꽃>은 한 때 청소년들 애송시의 선두 자리를 다투던 작품이다. 그들은 대체로 이 시를 하나의 연가(戀歌)쯤으로 받아들였다. 이성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제3연과 4연은 가히 절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 그런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 인식'이라는 다분히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경향의 작품이다. 물론 연가로 읽는다고 해서 오독(誤讀)은 아니다.
'이름을 불러 주기'는 명명 행위(命名行爲)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에는 그는 무(無)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몸짓'은 장미꽃이나 민들레꽃과 같은 구체적인 꽃이 아닌, 어떤 낯설고 정체불명인 관념이다. '몸짓'의 상징 의미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우리 삶도 이와 같다. 무수히 스치는,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무의미한 존재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책을 읽고자 하는 정보를 얻고 읽고자 하는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것이 비로소 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더기로 쌓인 종이더미에 불과하다.
제2연에서 시적 화자가 대상을 인식하고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그는 정체를 드러내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은 존재의 집이다."라고 하면서 만물은 본질에 따라 이름 지으며, 시인의 사명은 성(聖)스러운 것을 이름짓는 데 있다고 한 말을 상기시켜 준다.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 존재는 참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꽃'은 '의미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정보화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책 출판의 홍수시대다. 통계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하루에도 수백, 수천 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서점은 물론 도서관에도 책을 보관, 비치하는 일이 고민거리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새손님은 꾸역꾸역 밀려들어온다. 여기에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작용한다. 가치있는 책, 독자로부터 사랑받는 책은 사랑방, 안방을 차지하고 노력이 덜 들어간 책은 뒷방으로 밀려난다.
제3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 시적 화자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갈망이 표출되어 있다. 주체인 '나'도 대상인 '너'에게로 가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상 없는 주체도, 주체 없는 대상도 무의미하며,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을 연상해 보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빛깔과 향기'는 '존재의 본질'을 뜻한다.
누군들 별이 되고 싶지 않으랴. 누군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가 되고 싶지 않으랴.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고 싶다. 좋은 독자, 많은 독자에게 안기는 책이 되고 싶고, 인기 있고 존경받는 인재가 되고 싶다.
제4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 시적 화자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이 '우리'의 것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꽃'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임이 확인된다. '눈짓'은 '꽃'과 동격의 이미지로서 '의미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꽃이 사랑받는 이유는 아름다움과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종이 속에 재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역경을 인내한 진한 향기가 있다. 저절로 툭 떨어진 성공은 어디에도 없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절제와 노력이 있다. 훌륭한 운동선수의 뒤에는 피나는 연습이 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꽃이 되고 싶고 별이 되고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루아침에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비추어지지 않은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