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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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78회 - " 초심을 잃지 않는 지혜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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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염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백인들의 대표적인 운동인 골프에서 인종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황제의 자리에 우뚝 서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비난과 조롱의 표적에 있습니다. 그와 내연관계를 맺은 여성이 6~7명이라는 소문이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바쁘게 하고 있습니다.
빼어난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정치가, 사업가도 정도(正道)가 아닌 것의 유혹에 빠져 몰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지요. 어렵게 성취한 성공을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서서,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앞두고 초심의 중요성을 새겨봅니다. 고승의 반열에 오른 출가수행자도 ‘초발심자경문’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훌륭한 인물이 되고,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초심, 둘째는 열심, 그리고 셋째는 뒷심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마음이 초심입니다. 그 이유는 초심 속에 열심과 뒷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초심에서 열심히 나오고,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뒷심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입니다. 처음에 다짐하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첫 사랑의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겸손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순수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배우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견습생이 품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동심입니다. 피카소는 동심을 가꾸는 데 40년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초심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삶은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그때 우리가 점검해야 할 마음이 초심입니다. 우리 인생의 위기는 초심을 상실할 때 찾아옵니다.
초심을 상실했다는 것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겸손히 배우려는 마음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초심과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 초심을 상실하지는 않았는지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초심은 사랑과 같아서 날마다 가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은 전등이 아니라 촛불과 같습니다. 전등은 가꾸지 않아도 되지만 촛불은 가꾸지 않으면 쉽게 꺼지고 맙니다.
평범한 이들의 삶이 치열한 수행자의 삶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도 닦으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찰과 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방편입니다. 종교를 믿든 안믿든 꾸준한 자기점검은 필요합니다. 신에 의탁하든 깨달은 자의 삶을 본보기로 삼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최고의 존재로 여기며 연마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거창한 기도문이나 경전보다 더 진솔하고 가치 있는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갈대와 같고 촛불과 같습니다. 수시로 흔들리고 흔들립니다. 그것을 다잡으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잘난 체도 합니다. 나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닫기도 합니다. 나는 정직하자고 다짐하면서 꾀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떠난다고 하면서 돌아와 있고 다시 떠날 생각을 합니다.
나는 참아야 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고 시원해 합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다가 우스운 일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는 외로울수록 바쁜 척합니다. 나는 같이 가자고 하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라 하면 같이 가고 싶어집니다. 나는 봄에는 봄이 좋다 하고 가을에는 가을이 좋다 합니다. 나는 남에게는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계속 일만 합니다. 나는 희망을 품으면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나는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소속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만 안정도 좋아합니다. 나는 절약하자고 하지만 낭비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약속을 하고나서 지키고 싶지 않아 핑계를 찾기도 합니다. 나는 남의 성공에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합니다.
나는 실패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실패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나는 너그러운 척하지만 까다롭습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불평도 털어놓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하지만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있습니다. 그 내일을 품고 오늘은 이렇게 청개구리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위대한 사상가, 성인, 종교인, 정치가, 사업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비록 이름 남기지 않고 초야우생으로 살다가 갈지언정 인생의 성적표, 대차대조표에 얼룩은 없어야겠지요.
법정스님이 설하신 중년의 삶은 이렇습니다.
친구여!
나이가 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 불평일랑 하지를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적당히 아는 척, 어수룩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친구여!
상대방을 꼭 이기려고 하지마소. 적당히 져 주구려. 한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친구여!
돈,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친구여!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은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 옛 친구를 만나거든 술 한 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 보면 베풀어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푼 줄 돈 있어야 늙으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
친구여!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 체 자랑일랑 하지를 마오.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나가고 있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 봐도 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으니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마음씨 좋은 이로 살으시구려.
친구여!
멍청하면 안 되오. 아프면 안 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아무쪼록 오래 오래 살으시구려. (*)
빼어난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정치가, 사업가도 정도(正道)가 아닌 것의 유혹에 빠져 몰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지요. 어렵게 성취한 성공을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서서,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앞두고 초심의 중요성을 새겨봅니다. 고승의 반열에 오른 출가수행자도 ‘초발심자경문’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훌륭한 인물이 되고,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초심, 둘째는 열심, 그리고 셋째는 뒷심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마음이 초심입니다. 그 이유는 초심 속에 열심과 뒷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초심에서 열심히 나오고,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뒷심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입니다. 처음에 다짐하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첫 사랑의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겸손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순수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배우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견습생이 품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동심입니다. 피카소는 동심을 가꾸는 데 40년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초심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삶은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그때 우리가 점검해야 할 마음이 초심입니다. 우리 인생의 위기는 초심을 상실할 때 찾아옵니다.
초심을 상실했다는 것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겸손히 배우려는 마음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초심과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 초심을 상실하지는 않았는지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초심은 사랑과 같아서 날마다 가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은 전등이 아니라 촛불과 같습니다. 전등은 가꾸지 않아도 되지만 촛불은 가꾸지 않으면 쉽게 꺼지고 맙니다.
평범한 이들의 삶이 치열한 수행자의 삶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도 닦으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찰과 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방편입니다. 종교를 믿든 안믿든 꾸준한 자기점검은 필요합니다. 신에 의탁하든 깨달은 자의 삶을 본보기로 삼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최고의 존재로 여기며 연마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거창한 기도문이나 경전보다 더 진솔하고 가치 있는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갈대와 같고 촛불과 같습니다. 수시로 흔들리고 흔들립니다. 그것을 다잡으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잘난 체도 합니다. 나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닫기도 합니다. 나는 정직하자고 다짐하면서 꾀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떠난다고 하면서 돌아와 있고 다시 떠날 생각을 합니다.
나는 참아야 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고 시원해 합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다가 우스운 일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는 외로울수록 바쁜 척합니다. 나는 같이 가자고 하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라 하면 같이 가고 싶어집니다. 나는 봄에는 봄이 좋다 하고 가을에는 가을이 좋다 합니다. 나는 남에게는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계속 일만 합니다. 나는 희망을 품으면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나는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소속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만 안정도 좋아합니다. 나는 절약하자고 하지만 낭비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약속을 하고나서 지키고 싶지 않아 핑계를 찾기도 합니다. 나는 남의 성공에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합니다.
나는 실패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실패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나는 너그러운 척하지만 까다롭습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불평도 털어놓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하지만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있습니다. 그 내일을 품고 오늘은 이렇게 청개구리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위대한 사상가, 성인, 종교인, 정치가, 사업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비록 이름 남기지 않고 초야우생으로 살다가 갈지언정 인생의 성적표, 대차대조표에 얼룩은 없어야겠지요.
법정스님이 설하신 중년의 삶은 이렇습니다.
친구여!
나이가 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 불평일랑 하지를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적당히 아는 척, 어수룩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친구여!
상대방을 꼭 이기려고 하지마소. 적당히 져 주구려. 한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친구여!
돈,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친구여!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은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 옛 친구를 만나거든 술 한 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 보면 베풀어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푼 줄 돈 있어야 늙으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
친구여!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 체 자랑일랑 하지를 마오.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나가고 있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 봐도 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으니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마음씨 좋은 이로 살으시구려.
친구여!
멍청하면 안 되오. 아프면 안 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아무쪼록 오래 오래 살으시구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