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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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30회 - " 책은 위대한 스승이다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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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맹자(孟子)에 이르기를(盡心篇)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둘째,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셋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라 했다.
혹자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네 번째 즐거움이라고도 한다. 교육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매개물이다. 교육의 성공을 위해 스승과 제자는 혼신의 노력을 바친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성공이 쉽지 않다. 훌륭한 스승이 없다는 볼멘 소리가 자욱하다. 어찌 빼어난 스승이 없을까만 그 수가 많지 않아 내 곁에, 내 자식 곁에 없을 뿐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들이 스승의 설 자리를 뭉개버리고 스승을 죽여서 스승이 적다. 한편 다행스러운 것은 스승이 남긴 정신과 그들의 노력은 남아 있다.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라진 스승을 목 놓아 불러본들 어디에서 나타날 것인가. 그들이 남긴 책은 불편 없이 우리가 다가갈 수 있다. 책의 기능이 새삼 절실하게 와 닿는다.
원효는 불교 사상을 종합하고 그 실천에 생애를 바친 한국 불교 최고의 스승이다. 그는 스승을 정하여 배우지 않고 오로지 책을 스승 삼아 자학자습했다. 일정한 학설에 매달리거나 권위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통한 자유자재한 연구와 그것의 실천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지식과 실천을 겸비하여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게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650년(진덕여왕4)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는데 중도에 고구려 순찰대에 붙잡혀 실패했다. 661년 다시 의상과 유학길에 올라 당항성에 이르러 옛 무덤 근처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벌컥벌컥 마신 물이 날이 새어 보니 해골에 괸 물이었다.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으나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고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의 가르침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첫째,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값지고 훌륭한 삶인가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였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둘째, 중생은 모두 부처의 분신이므로 교화에 의해서 부처가 되도록 하겠다는 염원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실천했다.
셋째, 원효에게 있어서 종교는 곧 일상생활이요, 세속생활이 곧 종교생활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고 즐겁게 무애가를 부르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도록 했다.
넷째, 자기 자신을 위해 물질적으로 이롭고 정신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려는 욕심에서 무거운 죄가 생긴다고 했다.
다섯째, 무애도를 체험하는 것은 동굴 같은 곳에 혼자 앉아서는 불가능하며 온화한 곳에서 세상을 피해 살려고 하는 행동에는 진실성이 없다고 했다.
원효는 가고 없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책에 담겨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승기신론소』『대혜도경종요』『법화경종요』『금강삼매경론』『대승육정참회』등 20여권의 저술이 남아 있다.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만날 수 있는 스승이 책이다. 어찌 위대하지 않은가. (*)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둘째,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셋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라 했다.
혹자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네 번째 즐거움이라고도 한다. 교육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매개물이다. 교육의 성공을 위해 스승과 제자는 혼신의 노력을 바친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성공이 쉽지 않다. 훌륭한 스승이 없다는 볼멘 소리가 자욱하다. 어찌 빼어난 스승이 없을까만 그 수가 많지 않아 내 곁에, 내 자식 곁에 없을 뿐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들이 스승의 설 자리를 뭉개버리고 스승을 죽여서 스승이 적다. 한편 다행스러운 것은 스승이 남긴 정신과 그들의 노력은 남아 있다.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라진 스승을 목 놓아 불러본들 어디에서 나타날 것인가. 그들이 남긴 책은 불편 없이 우리가 다가갈 수 있다. 책의 기능이 새삼 절실하게 와 닿는다.
원효는 불교 사상을 종합하고 그 실천에 생애를 바친 한국 불교 최고의 스승이다. 그는 스승을 정하여 배우지 않고 오로지 책을 스승 삼아 자학자습했다. 일정한 학설에 매달리거나 권위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통한 자유자재한 연구와 그것의 실천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지식과 실천을 겸비하여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게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650년(진덕여왕4)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는데 중도에 고구려 순찰대에 붙잡혀 실패했다. 661년 다시 의상과 유학길에 올라 당항성에 이르러 옛 무덤 근처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벌컥벌컥 마신 물이 날이 새어 보니 해골에 괸 물이었다.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으나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고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의 가르침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첫째,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값지고 훌륭한 삶인가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였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둘째, 중생은 모두 부처의 분신이므로 교화에 의해서 부처가 되도록 하겠다는 염원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실천했다.
셋째, 원효에게 있어서 종교는 곧 일상생활이요, 세속생활이 곧 종교생활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고 즐겁게 무애가를 부르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도록 했다.
넷째, 자기 자신을 위해 물질적으로 이롭고 정신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려는 욕심에서 무거운 죄가 생긴다고 했다.
다섯째, 무애도를 체험하는 것은 동굴 같은 곳에 혼자 앉아서는 불가능하며 온화한 곳에서 세상을 피해 살려고 하는 행동에는 진실성이 없다고 했다.
원효는 가고 없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책에 담겨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승기신론소』『대혜도경종요』『법화경종요』『금강삼매경론』『대승육정참회』등 20여권의 저술이 남아 있다.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만날 수 있는 스승이 책이다. 어찌 위대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