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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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24회 - " 환경문제를 다룬 책이 부족하다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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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환경문제는 21세기의 최대 화두다. 산업화 시대에는 막무가내로 무시되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국제기구도 있고 진지한 회의도 열린다. 이미 오래 전에 하나 뿐인 지구를 살리자는 구호가 나왔다.
국내에서도 환경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획기적으로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하천 오염, 대기오염, 건축 폐기물, 생활 폐수, 쓰레기는 자꾸만 늘어간다. 분리수거라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 ‘몰래 버린 쓰레기, 몰래 버린 양심’이라는 표어까지 동원해도 여전히 몰래는 성행하고 있다.
새만금 사업과 천성산 터널은 앓는 이(齒)다. 이가 아프면 잇몸인들 성하랴. 개발과 보존은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해야할 화두이다. 편의를 위한 개발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여린 몸으로 개발에 항거하는 지율 스님의 단식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외로운 비구니 스님에게 그 짐을 홀로 지라고 맡길 수 있겠는가.
개발지상주의로 질주해서도 안 되고 무한보존주의도 곤란하다. 인구는 늘고 편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다. 개발과 보존은 양날의 칼이다. 버릴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칼이다. 강도의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고 수술실의 칼은 사람을 살리는 칼이다. 소가 먹는 물은 우유가 되지만 뱀이 먹는 물은 독이 된다.
환경을 위한 책이 얼마나 나왔는가? 개발과 보존을 위해 이해와 양보를 위해 지혜를 제공하는 책이 얼마나 나왔는가? 숨을 고르고 생각해볼 일이다. 어느 누구에게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니다. 지구의 문제라고 멀리 생각할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닥친 문제다.
최근 환경부가 실시한 ‘우수 환경도서 공모전’에 256종의 도서가 출품되어 92종이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전체 도서 출판의 비율로 보면 미미한 수치다. 환경문제에 대한 목소리의 크기에 비하면 참으로 열악하다. 여기에 환경보전에 대한 문제가 있다. 목소리와 구호로 이루어진 운동만 있고 그것을 논리화, 생활화, 밀착화 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희박하다.
환경문제는 정치권보다는 종교계, 학계, 시민단체가 떠안아야할 숙제다. 밀고 당기는 현실에서 당기는 역할은 종교계, 학계가 해야 할 몫이다. 서두르면 주저앉히고 주저앉으면 다그치는 것이 그들의 몫이다. 빠름과 느림을 조율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책은 그들의 목소리를 정돈해서 전달하는 도구이다. 정돈된 도구가 알려지고 읽히는 분위기를 기대한다.
환경도서 공모전에서 눈길을 끄는 몇 권의 책이 있다. 천성산 고속철 관통반대를 위한 지율스님의 단식일지를 정리한 <지율, 숲에서 나오다>와 기독교계에서 펴낸 <생태주의자 예수>, <하느님 지구에 119를 보내주세요> 등이다.
운동은 운동으로서 자족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위해 유익한 활동이라는 공감이 있어야 한다. 그 공감은 인내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목소리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폭력보다, 혁명보다 힘든 것이 운동이다. 그러나 인내와 포용을 동반한 설득이라면 누구라도 따라온다.
환경문제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선동과 구호가 아닌 설득과 인내를 통한 합의가 가능한 것이 책이다. 그런 저술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한다면 세상은 너그러워질 것이다.
책은 카랑카랑한 확성기 소리보다, 치켜세운 억센 팔뚝보다 설득력 있는 존재다. 학자, 환경운동가, 시민단체, 종교계가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함께 다스릴 수 있는 책을 내길 기대한다. 아울러 개발을 지향하는 정책 입안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괜찮겠지라고 양심을 숨기는 이들에 대한 정중한 경고를 위한 책도 간행되길 기대한다. 책은 삿대질이 아니라 모자를 벗고 예의를 차리며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도구이다. (*)
국내에서도 환경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획기적으로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하천 오염, 대기오염, 건축 폐기물, 생활 폐수, 쓰레기는 자꾸만 늘어간다. 분리수거라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 ‘몰래 버린 쓰레기, 몰래 버린 양심’이라는 표어까지 동원해도 여전히 몰래는 성행하고 있다.
새만금 사업과 천성산 터널은 앓는 이(齒)다. 이가 아프면 잇몸인들 성하랴. 개발과 보존은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해야할 화두이다. 편의를 위한 개발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여린 몸으로 개발에 항거하는 지율 스님의 단식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외로운 비구니 스님에게 그 짐을 홀로 지라고 맡길 수 있겠는가.
개발지상주의로 질주해서도 안 되고 무한보존주의도 곤란하다. 인구는 늘고 편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다. 개발과 보존은 양날의 칼이다. 버릴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칼이다. 강도의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고 수술실의 칼은 사람을 살리는 칼이다. 소가 먹는 물은 우유가 되지만 뱀이 먹는 물은 독이 된다.
환경을 위한 책이 얼마나 나왔는가? 개발과 보존을 위해 이해와 양보를 위해 지혜를 제공하는 책이 얼마나 나왔는가? 숨을 고르고 생각해볼 일이다. 어느 누구에게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니다. 지구의 문제라고 멀리 생각할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닥친 문제다.
최근 환경부가 실시한 ‘우수 환경도서 공모전’에 256종의 도서가 출품되어 92종이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전체 도서 출판의 비율로 보면 미미한 수치다. 환경문제에 대한 목소리의 크기에 비하면 참으로 열악하다. 여기에 환경보전에 대한 문제가 있다. 목소리와 구호로 이루어진 운동만 있고 그것을 논리화, 생활화, 밀착화 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희박하다.
환경문제는 정치권보다는 종교계, 학계, 시민단체가 떠안아야할 숙제다. 밀고 당기는 현실에서 당기는 역할은 종교계, 학계가 해야 할 몫이다. 서두르면 주저앉히고 주저앉으면 다그치는 것이 그들의 몫이다. 빠름과 느림을 조율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책은 그들의 목소리를 정돈해서 전달하는 도구이다. 정돈된 도구가 알려지고 읽히는 분위기를 기대한다.
환경도서 공모전에서 눈길을 끄는 몇 권의 책이 있다. 천성산 고속철 관통반대를 위한 지율스님의 단식일지를 정리한 <지율, 숲에서 나오다>와 기독교계에서 펴낸 <생태주의자 예수>, <하느님 지구에 119를 보내주세요> 등이다.
운동은 운동으로서 자족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위해 유익한 활동이라는 공감이 있어야 한다. 그 공감은 인내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목소리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폭력보다, 혁명보다 힘든 것이 운동이다. 그러나 인내와 포용을 동반한 설득이라면 누구라도 따라온다.
환경문제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선동과 구호가 아닌 설득과 인내를 통한 합의가 가능한 것이 책이다. 그런 저술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한다면 세상은 너그러워질 것이다.
책은 카랑카랑한 확성기 소리보다, 치켜세운 억센 팔뚝보다 설득력 있는 존재다. 학자, 환경운동가, 시민단체, 종교계가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함께 다스릴 수 있는 책을 내길 기대한다. 아울러 개발을 지향하는 정책 입안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괜찮겠지라고 양심을 숨기는 이들에 대한 정중한 경고를 위한 책도 간행되길 기대한다. 책은 삿대질이 아니라 모자를 벗고 예의를 차리며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도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