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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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52회 - " '세계에서 가장 큰 책, 가장 작은 책'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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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책은 매사추세츠공대(MIT) 마이클 홀리 교수가 펴낸 “부탄 : 왕국 횡단 시각 기행”이다. 가로 1.5 미터, 세로 2.1미터, 탁구대 크기에 견줄 수 있다. 무게는 60 킬로그램이다. 축구장을 뒤덮을 만큼의 종이와 잉크 8리터가 사용됐다. 취재비, 원고료 빼고 순수 제작비가 권당 2000달러다.
홀리 교수가 MIT 학생들과 네 차례에 걸친 현지답사 끝에 만든 이 책에는 부탄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담겨 있다. 대형 사진집이다. 영상을 처리하고 인쇄하는 작업을 위해 휴렛팩커트,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코닥 등 세계적 기업들의 첨단 장비를 지원받았다. 이 책은 HP의 대형 프린터 홍보를 위해 제작됐다. HP 디자인젯 5500을 통해 출력, 500부 한정판으로 출판됐다. 싱가폴, 베트남의 호치민, 대만의 타이페이 등 아시아 여러 도시에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아직 한국 전시회 계획은 없으나 독자들의 요구가 있으면 성사가 어렵지 않다.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은 1996년 러시아에서 펴낸 안톤 체홉의 작품집 ‘카멜레온’이다. 가로 0.9밀리, 세로 0.9밀리 크기다. 손톱 크기보다 작다. 30쪽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쪽마다 세 개의 컬러 삽화와 본문 11줄이 들어가 있으며 100부를 발행했다. 대형 돋보기를 설치해야 볼 수 있다.
이들 책은 실용성, 가독성보다는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로 제작되었다. 기네스북에 오른 자체가 제작에 성공한 셈이다. 애초 그걸 목표로 제작했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출판 강국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만든 나라, 8만 대장경을 조성한 나라답게 출판 열기가 대단하다. 출판 시장이 위축되고 있고 독자가 줄고 있지만 출판인의 의지는 위축되지 않고 있다. 교육열만큼이나 강한 것이 출판열이다. 치열한 지사정신을 보는 것 같다.
북 디자인 또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고객의 눈과 귀, 입맛에 당기게 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고 있다. 누런 재생지에 덤덤한 표지로 만들어진 미국책과 비교하면 한국책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제목을 뽑는 기술 또한 최고다. 국내 필자의 책은 물론 번역서도 단숨에 고객의 심장을 사로잡으려고 공격적이다. 번역서의 원 제목을 보면 실소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이런 노력, 역량은 경쟁력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말초적 감성만 노리고 출판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닌지, 날마다 로또의 꿈을 꾸며 책을 시장에 던지는 것은 아닌 지 생각해볼 일이다. 출판 역시 사업이다. 사업은 돈을 버는 것이 절대 목표다. 문화사업이란 고상한 명제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서점 역시 사업이다. 돈 버는 것만 추구한다면 서점이 아닌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다.
국민의 정신문화, 인생관, 가치관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책이다. 보약이 되기도 하고 독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 책이다. 좋은 책, 가치 있는 책을 만들어 보급해야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겉만 달콤한 당의정, 시류를 왜곡한 한탕주의를 경계하고 감시하는 눈과 귀를 깨어 있게 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은 기네스북에 소개된 책이 아니다. 청소년의 가슴에 담겨 인생과 운명을 올곧게 세운 책, 우울한 문학청년의 가슴에 문학혼을 불 지핀 책, 혼미한 지식에 말끔한 길을 열어준 책,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책 등이 가장 큰 책이다. 영혼 속에, 가슴 속에 각인된 책이 가장 큰 책이다.
경허선사, 구레나룻를 시커멓게 기른 초상화가 남아있는 고승이다. 선사가 연암산 지장암에 머물 때 일화다. 엄동설한 토굴에서 홀로 정진하며 지내기로 했다. 벽에 틈이 벌어지고 문창이 뒤트린 암자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불장에 보관되어 있던 경전을 모조리 뜯어 풀을 발라 방문, 벽, 천장, 방바닥까지 남김없이 바르는 것이 아닌가. 암자에 찾아간 제자들이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스님, 성스러운 경전을 찢어 이렇게 도배해도 됩니까?”
선사는 태연히 대답했다.
“자네들도 이러한 경계에 이르면 이렇게 해보게나.”
제자들은 대꾸를 못하고 삼배를 올리고 물러나왔다. 이러한 경지는 불상을 불쏘시개로 쓴 천연 선사나, 경전을 ‘똥 닦는 휴지’라고 표현한 임제 선사의 경지와 통한다. 책은 마음공부, 지식연마, 정보습득, 인격형성의 도구다. 비록 경전이 아닐지라도 그런 경지에 오르게 하는 책이 큰 책이요 좋은 책이다.
출판 강국은 무서운 국력이다. 세계 시장으로 뻗을 수 있는 저력이다. 세계가 적이요 시장이다. 좋은 책은 시장이 외면하지 않는다.(*)
홀리 교수가 MIT 학생들과 네 차례에 걸친 현지답사 끝에 만든 이 책에는 부탄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담겨 있다. 대형 사진집이다. 영상을 처리하고 인쇄하는 작업을 위해 휴렛팩커트,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코닥 등 세계적 기업들의 첨단 장비를 지원받았다. 이 책은 HP의 대형 프린터 홍보를 위해 제작됐다. HP 디자인젯 5500을 통해 출력, 500부 한정판으로 출판됐다. 싱가폴, 베트남의 호치민, 대만의 타이페이 등 아시아 여러 도시에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아직 한국 전시회 계획은 없으나 독자들의 요구가 있으면 성사가 어렵지 않다.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은 1996년 러시아에서 펴낸 안톤 체홉의 작품집 ‘카멜레온’이다. 가로 0.9밀리, 세로 0.9밀리 크기다. 손톱 크기보다 작다. 30쪽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쪽마다 세 개의 컬러 삽화와 본문 11줄이 들어가 있으며 100부를 발행했다. 대형 돋보기를 설치해야 볼 수 있다.
이들 책은 실용성, 가독성보다는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로 제작되었다. 기네스북에 오른 자체가 제작에 성공한 셈이다. 애초 그걸 목표로 제작했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출판 강국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만든 나라, 8만 대장경을 조성한 나라답게 출판 열기가 대단하다. 출판 시장이 위축되고 있고 독자가 줄고 있지만 출판인의 의지는 위축되지 않고 있다. 교육열만큼이나 강한 것이 출판열이다. 치열한 지사정신을 보는 것 같다.
북 디자인 또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고객의 눈과 귀, 입맛에 당기게 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고 있다. 누런 재생지에 덤덤한 표지로 만들어진 미국책과 비교하면 한국책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제목을 뽑는 기술 또한 최고다. 국내 필자의 책은 물론 번역서도 단숨에 고객의 심장을 사로잡으려고 공격적이다. 번역서의 원 제목을 보면 실소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이런 노력, 역량은 경쟁력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말초적 감성만 노리고 출판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닌지, 날마다 로또의 꿈을 꾸며 책을 시장에 던지는 것은 아닌 지 생각해볼 일이다. 출판 역시 사업이다. 사업은 돈을 버는 것이 절대 목표다. 문화사업이란 고상한 명제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서점 역시 사업이다. 돈 버는 것만 추구한다면 서점이 아닌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다.
국민의 정신문화, 인생관, 가치관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책이다. 보약이 되기도 하고 독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 책이다. 좋은 책, 가치 있는 책을 만들어 보급해야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겉만 달콤한 당의정, 시류를 왜곡한 한탕주의를 경계하고 감시하는 눈과 귀를 깨어 있게 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은 기네스북에 소개된 책이 아니다. 청소년의 가슴에 담겨 인생과 운명을 올곧게 세운 책, 우울한 문학청년의 가슴에 문학혼을 불 지핀 책, 혼미한 지식에 말끔한 길을 열어준 책,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책 등이 가장 큰 책이다. 영혼 속에, 가슴 속에 각인된 책이 가장 큰 책이다.
경허선사, 구레나룻를 시커멓게 기른 초상화가 남아있는 고승이다. 선사가 연암산 지장암에 머물 때 일화다. 엄동설한 토굴에서 홀로 정진하며 지내기로 했다. 벽에 틈이 벌어지고 문창이 뒤트린 암자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불장에 보관되어 있던 경전을 모조리 뜯어 풀을 발라 방문, 벽, 천장, 방바닥까지 남김없이 바르는 것이 아닌가. 암자에 찾아간 제자들이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스님, 성스러운 경전을 찢어 이렇게 도배해도 됩니까?”
선사는 태연히 대답했다.
“자네들도 이러한 경계에 이르면 이렇게 해보게나.”
제자들은 대꾸를 못하고 삼배를 올리고 물러나왔다. 이러한 경지는 불상을 불쏘시개로 쓴 천연 선사나, 경전을 ‘똥 닦는 휴지’라고 표현한 임제 선사의 경지와 통한다. 책은 마음공부, 지식연마, 정보습득, 인격형성의 도구다. 비록 경전이 아닐지라도 그런 경지에 오르게 하는 책이 큰 책이요 좋은 책이다.
출판 강국은 무서운 국력이다. 세계 시장으로 뻗을 수 있는 저력이다. 세계가 적이요 시장이다. 좋은 책은 시장이 외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