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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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35회 - " 한국은 돈 없으면 책도 못 보는 나라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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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한국 공공도서관의 수준이 열악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무르는 공공도서관 수, 1인당 장서수도 최하위다.
해결해야할 문제가 너무 많다. 떨어지는 접근성, 낙후된 시설, 빈약한 도서관 콘텐츠, 나쁜 서비스, 부족한 인력 등 활기찬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도정일 상임대표(경희대 영문과 교수)의 지적에 정부와 시민 모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느 시민단체의 목소리보다 순수하고 고귀하게 들린다.
“한국은 돈 없으면 책도 못 보는 나라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잰 걸음을 걷는 한국이, 더 이상 경제 논리에 밀려 ‘돈 남으면 하나 지어주지’식 선심 행정으로 공공 도서관 확충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모아둔 저장고가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사회 발전의 근본이 인간의 발전이고 이런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화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중심이 되는 도서관은 중요한 부가가치의 생산기지다. 도서관은 단순히 복지시설이 아니라 창조와 생산의 중심지다.”
지역 균형 발전은 중요하다. 그것 못지않게 문화의 균형 발전도 중요하다. 가시적이고 요란한 선전물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선진국민이 될 수 있는 창조의 생산 공장인 도서관을 유효하게 설립, 운영해야 한다.
현재의 실태는 어떤가? 공공 도서관 대부분 산 밑에 있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가야한다. 국립도서관부터 접근성이 매우 나쁘다. 생활 근거의 중심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직장인은 점심시간에 혹은 출퇴근 시 수시로 들를 수 있어야 한다. 서점들의 위치와 비교하면 위치의 열악함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대학 도서관도 캠퍼스 내에서 위치에 따라 이용률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캠퍼스에서 동선의 중심에 놓인 도서관은 늘 즐거운 북새통이다. 그러나 한적한 캠퍼스 구석에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은 도서관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공공 도서관은 육아지원시설을 자임해야 한다. 출산율이 낮다고 아우성만 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낳는 것보다 키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은 훌륭한 어린이 양육 시설이 될 수 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공부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인드의 문제다.
산중에 은거하던 불교도 이제 세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도심 포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곳곳에 도심 사찰, 포교당이 건립되어 도시인의 심신을 위무하고 있다. 도서관이 왜 그런 역할을 못할까. 주민이 마치 자기 서재인 것처럼 쉽게 찾아와서 활용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각종 문화 관련 행사를 겸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예를 들면 어린이를 위한 그림 교실, 독서 교실, 성인을 위한 각종 특강, 주부를 위한 문화교실 등 넓혀나갈 수 있는 지평이 무궁하다.
조선시대 대제학은 홍문관의 책임자로서 정이품 벼슬이었다. 홍문관은 삼사의 하나로 경서와 사적의 관리,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다. 성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현재 국립도서관장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오늘날 국립 도서관장은 변방의 관리에 불과하다. 도서관의 위상과 비례한다. 시대가 바뀌고 인심의 관심사도 바뀌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국민과 국가의 건강한 활력과 에너지는 책에서 나온다. 요란스런 대중문화는 일회성 카타르시스를 제공할지는 몰라도 국력의 기반이 되지는 않는다.
도서관을 살리자. 도서관을 새로 짓자. 그곳에 우리의 건강한 미래가 있다. 도서관은 어린이에게 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중요한 공간이다. 평생교육을 실현하는 ‘시민 대학’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도서관만큼 적합한 장치가 어디 있겠는가. 각자 원하는 지식을 얻고 배움을 실현하는 장소가 도서관이다.(*)
해결해야할 문제가 너무 많다. 떨어지는 접근성, 낙후된 시설, 빈약한 도서관 콘텐츠, 나쁜 서비스, 부족한 인력 등 활기찬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도정일 상임대표(경희대 영문과 교수)의 지적에 정부와 시민 모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느 시민단체의 목소리보다 순수하고 고귀하게 들린다.
“한국은 돈 없으면 책도 못 보는 나라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잰 걸음을 걷는 한국이, 더 이상 경제 논리에 밀려 ‘돈 남으면 하나 지어주지’식 선심 행정으로 공공 도서관 확충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모아둔 저장고가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사회 발전의 근본이 인간의 발전이고 이런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화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중심이 되는 도서관은 중요한 부가가치의 생산기지다. 도서관은 단순히 복지시설이 아니라 창조와 생산의 중심지다.”
지역 균형 발전은 중요하다. 그것 못지않게 문화의 균형 발전도 중요하다. 가시적이고 요란한 선전물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선진국민이 될 수 있는 창조의 생산 공장인 도서관을 유효하게 설립, 운영해야 한다.
현재의 실태는 어떤가? 공공 도서관 대부분 산 밑에 있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가야한다. 국립도서관부터 접근성이 매우 나쁘다. 생활 근거의 중심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직장인은 점심시간에 혹은 출퇴근 시 수시로 들를 수 있어야 한다. 서점들의 위치와 비교하면 위치의 열악함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대학 도서관도 캠퍼스 내에서 위치에 따라 이용률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캠퍼스에서 동선의 중심에 놓인 도서관은 늘 즐거운 북새통이다. 그러나 한적한 캠퍼스 구석에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은 도서관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공공 도서관은 육아지원시설을 자임해야 한다. 출산율이 낮다고 아우성만 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낳는 것보다 키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은 훌륭한 어린이 양육 시설이 될 수 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공부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인드의 문제다.
산중에 은거하던 불교도 이제 세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도심 포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곳곳에 도심 사찰, 포교당이 건립되어 도시인의 심신을 위무하고 있다. 도서관이 왜 그런 역할을 못할까. 주민이 마치 자기 서재인 것처럼 쉽게 찾아와서 활용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각종 문화 관련 행사를 겸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예를 들면 어린이를 위한 그림 교실, 독서 교실, 성인을 위한 각종 특강, 주부를 위한 문화교실 등 넓혀나갈 수 있는 지평이 무궁하다.
조선시대 대제학은 홍문관의 책임자로서 정이품 벼슬이었다. 홍문관은 삼사의 하나로 경서와 사적의 관리,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다. 성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현재 국립도서관장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오늘날 국립 도서관장은 변방의 관리에 불과하다. 도서관의 위상과 비례한다. 시대가 바뀌고 인심의 관심사도 바뀌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국민과 국가의 건강한 활력과 에너지는 책에서 나온다. 요란스런 대중문화는 일회성 카타르시스를 제공할지는 몰라도 국력의 기반이 되지는 않는다.
도서관을 살리자. 도서관을 새로 짓자. 그곳에 우리의 건강한 미래가 있다. 도서관은 어린이에게 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중요한 공간이다. 평생교육을 실현하는 ‘시민 대학’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도서관만큼 적합한 장치가 어디 있겠는가. 각자 원하는 지식을 얻고 배움을 실현하는 장소가 도서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