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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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74회 - " 아버지의 마음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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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 굳센 사람들도 /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세상이 변했다. 가부장적 권위가 사라지고 아버지란 존재가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있다. 장수와 같던 아버지상은 전설이 되고, 쳐진 어깨, 고개 숙인 남자가 아버지상이 되고 있다. 특히 50대 이후의 아버지들은 가정에서마저 설자리가 마뜩치 않다. 명예퇴직, 정리해고, 실직, 부도, 질병이라는 가시면류관을 쓰면 아버지는 차츰 징그러운 존재가 된다.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게 해주는 김현승의 시다. 자식들을 위해 늘 희생하고, 가족들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기게 한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서 가족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건강하고 용맹스럽던 아버지를, 젊은 날의 아버지를 기억해야 한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 아버지는 가정의 기둥이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꿋꿋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은 아버지도 한 인간이기 때문에 한없이 외로울 수 있다. 자식들이 생각하기에 아버지에게는 슬픔도 눈물도 없는 줄 안다. 늘 당당하고 의연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친척의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는 덤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을 억눌렀을 뿐이다. 아버지마저 정신을 놓고 통곡하면 여법하게 장례를 치룰 수 없다. 그래서 슬픔을 참은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가족이 모두 잠든 후 아버지는 혼자 골방에 들어가 소리 죽여 흐느낀다. 오래 묵은 그리움을 생각하며 짐승처럼 흐느낀다.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흐느낀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인다란 말은 불변의 진리다. 자식은 바로 희망이고 삶의 에너지다. 비록 남들보다 못나도 자기 자식은 모두 천재요 미스코리아로 보인다. 아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아버지라고 불러주는 한 마디만 들어도 가슴 벅차고 힘이 솟는다.
어렵지 않은 시대가 있었을까만은, 지금은 무척 어려운 시대다. 버려야할 지난 시대 관습도 있겠지만 소중한 가치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것도 있다. ‘아버지의 권위회복’이 그것이다. 드라마, 영화 심지어 문학작품에서마저 아버지를 희롱하고 비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문학적, 반어적 풍자일 수 있지만 박수치고 싶지는 않다.
무례한 권위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각자 역할에 따른 권위는 존중되고 지켜야 한다. 아버지가 애완견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가정, 그런 사회는 균형감이 없는 사회다.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울룩불룩한 팔뚝 근육이 넘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어머니의 이름과 똑 같은 자리에, 또 같은 무게로 아버지가 놓여 있어야한다. 우린 모두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새끼들을 위해 자기 몸을 바치는 가시고기의 일생이 생각난다. (*)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 굳센 사람들도 /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세상이 변했다. 가부장적 권위가 사라지고 아버지란 존재가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있다. 장수와 같던 아버지상은 전설이 되고, 쳐진 어깨, 고개 숙인 남자가 아버지상이 되고 있다. 특히 50대 이후의 아버지들은 가정에서마저 설자리가 마뜩치 않다. 명예퇴직, 정리해고, 실직, 부도, 질병이라는 가시면류관을 쓰면 아버지는 차츰 징그러운 존재가 된다.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게 해주는 김현승의 시다. 자식들을 위해 늘 희생하고, 가족들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기게 한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서 가족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건강하고 용맹스럽던 아버지를, 젊은 날의 아버지를 기억해야 한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 아버지는 가정의 기둥이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꿋꿋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은 아버지도 한 인간이기 때문에 한없이 외로울 수 있다. 자식들이 생각하기에 아버지에게는 슬픔도 눈물도 없는 줄 안다. 늘 당당하고 의연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친척의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는 덤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을 억눌렀을 뿐이다. 아버지마저 정신을 놓고 통곡하면 여법하게 장례를 치룰 수 없다. 그래서 슬픔을 참은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가족이 모두 잠든 후 아버지는 혼자 골방에 들어가 소리 죽여 흐느낀다. 오래 묵은 그리움을 생각하며 짐승처럼 흐느낀다.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흐느낀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인다란 말은 불변의 진리다. 자식은 바로 희망이고 삶의 에너지다. 비록 남들보다 못나도 자기 자식은 모두 천재요 미스코리아로 보인다. 아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아버지라고 불러주는 한 마디만 들어도 가슴 벅차고 힘이 솟는다.
어렵지 않은 시대가 있었을까만은, 지금은 무척 어려운 시대다. 버려야할 지난 시대 관습도 있겠지만 소중한 가치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것도 있다. ‘아버지의 권위회복’이 그것이다. 드라마, 영화 심지어 문학작품에서마저 아버지를 희롱하고 비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문학적, 반어적 풍자일 수 있지만 박수치고 싶지는 않다.
무례한 권위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각자 역할에 따른 권위는 존중되고 지켜야 한다. 아버지가 애완견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가정, 그런 사회는 균형감이 없는 사회다.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울룩불룩한 팔뚝 근육이 넘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어머니의 이름과 똑 같은 자리에, 또 같은 무게로 아버지가 놓여 있어야한다. 우린 모두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새끼들을 위해 자기 몸을 바치는 가시고기의 일생이 생각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