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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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81회 - "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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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이른 봄, 싹들의 움 틔울 준비가 한창입니다. 더욱 단단하게 싹을 틔우려고 가끔 꽃샘추위가 여린 순에 매질을 합니다. 이들이 자라 가을이 되면 들판마다 황금물결이 넘실댑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한여름 햇살을 받아 푸른 잎사귀 시절에는 한없이 자랄 것처럼 하늘을 향해 팔을 흔들어댑니다. 그러나 이삭이 맺히기 시작하면 조금씩 머리를 숙입니다. 주렁주렁 알곡이 달리면 90도~180도까지 머리를 숙입니다. 간혹 세상 물정 모르는 쭉정이는 그때까지 머리를 쳐들고 팔을 흔들어댑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 낫다고 우쭐대봐야 자연 앞에서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최선을 다하고 하늘이 도와줄 때 세상은 풍요롭고 넉넉해지는 법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지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살며시 벼이삭에게 물어 봅니다. 왜 고개를 숙이냐고? 벼이삭의 대답인 즉 주인에게 입은 은혜가 하늘 땅보다 큰 데 자기가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서 주인 보기 미안해서 고개 숙이고 있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조금만 누려도 우쭐대고 과시하고 내가 최고라고 거드름 피우는데 자연은 겸손하기만 합니다. 올 가을엔 고개 숙인 사람이 되어 보세요. 그러기위해서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요. 책 읽느라 고개 숙이고, 청소하느라 고개 숙이고, 눈높이 낮추느라 고개 숙이고,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부드러운 눈 길 주느라 고개 숙여보세요. 사람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기준은 "자기성찰"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마음 즉 하심(下心)을 최고의 덕목으로 칩니다. 수행과 덕이 높을수록 하심이 더욱 빛납니다.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겸손은 미덕입니다. 오만과 교만은 삶의 디딤돌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거기에 걸려서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잘난 체 하는 것이 무기인줄 오해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무너지게 하는 부메랑입니다.
그러나, 겸손과 하심을 갖추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인간은 잘난 체, 가진 체, 센 체 하고 싶은 욕망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허물고 깃털처럼 가벼운 몸과 마음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해야하는 존재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간은 옛일을 곧잘 망각합니다. 은혜는 곧잘 잊어버리고 베푼 것에 대한 생색은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것이 본능입니다. 아래와 같은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세기 미국, 정확하게는1880년 여름.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이것저것을 파는 가난한 고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방문판매를 다녀야만했던 그는 저녁에 되었을 때에는 몸이 몹시 지치고 배가 고팠습니다. 주머니에는 10센트짜리 동전 하나밖에 없어 그것으로는 먹을 것을 사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 집에 가서는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예쁜 소녀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부끄러워서 배고프다는 말을 못하고 물 한잔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눈치 챈 소녀는 큰 컵에 우유 한 잔을 내왔습니다. 우유를 단숨에 벌컥벌컥 마신 젊은이는 새로운 힘이 나는 듯, 얼마를 주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저희 엄마가 친절을 베풀고 절대 돈을 받지 말라 (Mother has taught us never accept pay for a kindness)’고 가르쳤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젊은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후, 그 소녀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녀가 사는 작은 도시의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는 중병이었습니다. 다행히 큰 도시의 전문의를 불러오면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청된 의사가 하워드 켈리(Howard A. Kelly)박사, 그 소녀에게 우유 한 잔을 얻어 마셨던 바로 그 젊은이였습니다.
옛날 방문 판매를 했던 고학생 켈리는 산부인과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명문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창설멤버이기도 합니다. 켈리 박사는 환자를 보고 단번에 그녀임을 알아보았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치료했습니다.
산부인과 질환으로 상당히 힘든 케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치료에 성공하여 완쾌되었습니다. 켈리 박사는 치료비 청구서를 보냈습니다.
환자는 엄청나게 많이 나올 치료비를 걱정하며 떨리는 손으로 청구서를 뜯었습니다. 청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한 잔의 우유로 모두 지불되었음’ (Paid in full with one glass of milk) (*)
사람이 아무리 잘 낫다고 우쭐대봐야 자연 앞에서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최선을 다하고 하늘이 도와줄 때 세상은 풍요롭고 넉넉해지는 법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지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살며시 벼이삭에게 물어 봅니다. 왜 고개를 숙이냐고? 벼이삭의 대답인 즉 주인에게 입은 은혜가 하늘 땅보다 큰 데 자기가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서 주인 보기 미안해서 고개 숙이고 있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조금만 누려도 우쭐대고 과시하고 내가 최고라고 거드름 피우는데 자연은 겸손하기만 합니다. 올 가을엔 고개 숙인 사람이 되어 보세요. 그러기위해서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요. 책 읽느라 고개 숙이고, 청소하느라 고개 숙이고, 눈높이 낮추느라 고개 숙이고,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부드러운 눈 길 주느라 고개 숙여보세요. 사람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기준은 "자기성찰"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마음 즉 하심(下心)을 최고의 덕목으로 칩니다. 수행과 덕이 높을수록 하심이 더욱 빛납니다.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겸손은 미덕입니다. 오만과 교만은 삶의 디딤돌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거기에 걸려서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잘난 체 하는 것이 무기인줄 오해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무너지게 하는 부메랑입니다.
그러나, 겸손과 하심을 갖추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인간은 잘난 체, 가진 체, 센 체 하고 싶은 욕망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허물고 깃털처럼 가벼운 몸과 마음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해야하는 존재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간은 옛일을 곧잘 망각합니다. 은혜는 곧잘 잊어버리고 베푼 것에 대한 생색은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것이 본능입니다. 아래와 같은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세기 미국, 정확하게는1880년 여름.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이것저것을 파는 가난한 고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방문판매를 다녀야만했던 그는 저녁에 되었을 때에는 몸이 몹시 지치고 배가 고팠습니다. 주머니에는 10센트짜리 동전 하나밖에 없어 그것으로는 먹을 것을 사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 집에 가서는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예쁜 소녀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부끄러워서 배고프다는 말을 못하고 물 한잔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눈치 챈 소녀는 큰 컵에 우유 한 잔을 내왔습니다. 우유를 단숨에 벌컥벌컥 마신 젊은이는 새로운 힘이 나는 듯, 얼마를 주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저희 엄마가 친절을 베풀고 절대 돈을 받지 말라 (Mother has taught us never accept pay for a kindness)’고 가르쳤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젊은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후, 그 소녀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녀가 사는 작은 도시의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는 중병이었습니다. 다행히 큰 도시의 전문의를 불러오면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청된 의사가 하워드 켈리(Howard A. Kelly)박사, 그 소녀에게 우유 한 잔을 얻어 마셨던 바로 그 젊은이였습니다.
옛날 방문 판매를 했던 고학생 켈리는 산부인과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명문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창설멤버이기도 합니다. 켈리 박사는 환자를 보고 단번에 그녀임을 알아보았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치료했습니다.
산부인과 질환으로 상당히 힘든 케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치료에 성공하여 완쾌되었습니다. 켈리 박사는 치료비 청구서를 보냈습니다.
환자는 엄청나게 많이 나올 치료비를 걱정하며 떨리는 손으로 청구서를 뜯었습니다. 청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한 잔의 우유로 모두 지불되었음’ (Paid in full with one glass of mil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