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의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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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제84회 - " 화(怒)는 독소를 뿜고 웃음은 긍정의 에너지다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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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5
날씨가 더워지고 있다. 불쾌지수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작은 불편이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자칫 사고를 내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로 별 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는 일이 잦다. 살면서 화를 내지 않을 수는 없다. 예수도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성전을 보고 분노한 예수는 장사꾼과 환전상들을 상품이며 돈과 함께 성전 뜰 밖으로 강제로 몰아냈다. 요한에 따르면 예수는 채찍을 휘둘렀다(요한복음 2:15). 예수는 성전의 타락과 횡포를 목격하고, 분노했던 것이다.
수양, 마음공부는 화를 다스리는 방편이다. 화를 내면 그것은 당연히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또다시 화를 내면 그러한 충동에 저항하는 일이 더욱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그로부터 발산되는 진동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웃거나 즐거운 생각을 하면 엔도르핀이 나오고 면역력이 증가한다. 반면에 화를 내거나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혈압이 상승하고 혈관이 수축되며 교감신경이 흥분되고 노화가 촉진된다. 미국의 엘머 게이츠 박사의 연구결과는 정말 흥미롭다. 사람이 내쉬는 숨을 모아 냉각을 시켰더니 상태에 따라 색깔과 성분이 달랐다고 한다.
즉, 기뻐하는 사람의 것은 청색의 엔도르핀이, 슬픔과 고통에 빠져있는 사람의 것은 회색의 독소가 나왔다.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의 것은 분홍색 독소가, 화내고 있는 사람의 것은 밤색의 무서운 독소가 각각 나왔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한 사람이 계속 한 시간 동안 화를 내면 80명을 죽일 수 있는 분량의 독소가 나온다고 한다. 화를 내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내 마음의 불길을 누군가에게 옮겨 붙여 고통을 주려는 것이다. 그 불길이 상대를 태우려면 먼저 나를 불쏘시개로 삼아 강력한 불길이 돼야 한다.
그러나 그 불길은 상대를 태우기 전에 자신을 먼저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린다.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 자신부터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다.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잊어버려야 한다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쉽게 용서가 이루어질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다. 화를 내면 그만큼 자신을 해치기 때문이다.
웃는 것은 돈이 드는 것도,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생각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아령 운동을 할 때도 나는 거울을 보며 웃으면서 한다. 그러지 않으면 힘이 들어 인상을 쓰게 되지만, 웃으면 같은 무게도 별로 힘든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미소를 짓고, 강의를 하다가도 잠시 숨을 고르면서 씩 웃는다. 생각이 날 때마다 웃으려 하니 저절로 그렇게 된다.
만약 자신이 성난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상대 역시 그런 노력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아무 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 해도 이러한 자신의 행위는 타인을 도와주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노(怒)한 감정의 파동을 내보내는 것을 그대로 두게 되면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마음, 즉 그들의 아스트럴체에 똑같은 진동을 일으킨다. 이에 반해 만약 그가 노한 파동을 통제해 억제한다면, 그는 평온하고 부드러운 영향을 방출할 것이고, 그것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 모두에게 틀림없는 도움을 주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념은 필연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사념이 불순하거나 사악한 것이었을 때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때의 우리는 주위사람들에게 도덕적 부패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구석에는 악의 씨앗이 있다. 그러나 그 씨앗은 바깥에서 어떠한 힘이 가해져 활동하게 하지 않는다면 꽃이 피어 열매를 맺지 않는다.
만약 우리들이 불순하고 사악한 사념에 빠져 만들어 내는 힘의 파동은 그 씨앗을 발화시켜 길러주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그것에 의해 그의 혼의 진화는 정체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어진 충격은 뒤에 사악한 사념이나 말이나 행위로 꽃 피어 더 멀리 퍼져 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불순하거나 사악한 사념이라도 그 책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다.
다행히도 이러한 현상은 사악한 사념과 똑같이 훌륭한 사념에도 모두 해당된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온정과 평화의 사념을 끊임없이 방사함으로서 태양과 같은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은 참으로 눈부신 힘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이와 같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늘 신중해야 한다.
생각을 할 때는 가령, 어떤 사람의 일에 대해 생각할 경우 그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 힘이 작용해 차츰 그 이미지와 일치되도록 그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사념을 친구들의 장점에 맞추어 고정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어떠한 자질을 생각하든 간에 그의 파동을 강하게 하여 그러한 자질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성전을 보고 분노한 예수는 장사꾼과 환전상들을 상품이며 돈과 함께 성전 뜰 밖으로 강제로 몰아냈다. 요한에 따르면 예수는 채찍을 휘둘렀다(요한복음 2:15). 예수는 성전의 타락과 횡포를 목격하고, 분노했던 것이다.
수양, 마음공부는 화를 다스리는 방편이다. 화를 내면 그것은 당연히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또다시 화를 내면 그러한 충동에 저항하는 일이 더욱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그로부터 발산되는 진동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웃거나 즐거운 생각을 하면 엔도르핀이 나오고 면역력이 증가한다. 반면에 화를 내거나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혈압이 상승하고 혈관이 수축되며 교감신경이 흥분되고 노화가 촉진된다. 미국의 엘머 게이츠 박사의 연구결과는 정말 흥미롭다. 사람이 내쉬는 숨을 모아 냉각을 시켰더니 상태에 따라 색깔과 성분이 달랐다고 한다.
즉, 기뻐하는 사람의 것은 청색의 엔도르핀이, 슬픔과 고통에 빠져있는 사람의 것은 회색의 독소가 나왔다.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의 것은 분홍색 독소가, 화내고 있는 사람의 것은 밤색의 무서운 독소가 각각 나왔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한 사람이 계속 한 시간 동안 화를 내면 80명을 죽일 수 있는 분량의 독소가 나온다고 한다. 화를 내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내 마음의 불길을 누군가에게 옮겨 붙여 고통을 주려는 것이다. 그 불길이 상대를 태우려면 먼저 나를 불쏘시개로 삼아 강력한 불길이 돼야 한다.
그러나 그 불길은 상대를 태우기 전에 자신을 먼저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린다.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 자신부터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다.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잊어버려야 한다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쉽게 용서가 이루어질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다. 화를 내면 그만큼 자신을 해치기 때문이다.
웃는 것은 돈이 드는 것도,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생각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아령 운동을 할 때도 나는 거울을 보며 웃으면서 한다. 그러지 않으면 힘이 들어 인상을 쓰게 되지만, 웃으면 같은 무게도 별로 힘든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미소를 짓고, 강의를 하다가도 잠시 숨을 고르면서 씩 웃는다. 생각이 날 때마다 웃으려 하니 저절로 그렇게 된다.
만약 자신이 성난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상대 역시 그런 노력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아무 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 해도 이러한 자신의 행위는 타인을 도와주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노(怒)한 감정의 파동을 내보내는 것을 그대로 두게 되면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마음, 즉 그들의 아스트럴체에 똑같은 진동을 일으킨다. 이에 반해 만약 그가 노한 파동을 통제해 억제한다면, 그는 평온하고 부드러운 영향을 방출할 것이고, 그것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 모두에게 틀림없는 도움을 주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념은 필연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사념이 불순하거나 사악한 것이었을 때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때의 우리는 주위사람들에게 도덕적 부패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구석에는 악의 씨앗이 있다. 그러나 그 씨앗은 바깥에서 어떠한 힘이 가해져 활동하게 하지 않는다면 꽃이 피어 열매를 맺지 않는다.
만약 우리들이 불순하고 사악한 사념에 빠져 만들어 내는 힘의 파동은 그 씨앗을 발화시켜 길러주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그것에 의해 그의 혼의 진화는 정체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어진 충격은 뒤에 사악한 사념이나 말이나 행위로 꽃 피어 더 멀리 퍼져 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불순하거나 사악한 사념이라도 그 책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다.
다행히도 이러한 현상은 사악한 사념과 똑같이 훌륭한 사념에도 모두 해당된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온정과 평화의 사념을 끊임없이 방사함으로서 태양과 같은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은 참으로 눈부신 힘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이와 같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늘 신중해야 한다.
생각을 할 때는 가령, 어떤 사람의 일에 대해 생각할 경우 그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 힘이 작용해 차츰 그 이미지와 일치되도록 그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사념을 친구들의 장점에 맞추어 고정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어떠한 자질을 생각하든 간에 그의 파동을 강하게 하여 그러한 자질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